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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이야기

홈 > 열린 마당 > 박물관 이야기

제목
[언론공개회] 덕온공주 집안 3대의 한글 유물이 한자리에
작성자
  • 자료관리팀
  • 박준호
  • 02-2124-6371
작성일
2019-01-17
조회수
1320
파일첨부
  • 첨부 파일이 없습니다.

2019년 1월 16일(수) 국외에 거주하는 개인으로부터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수집한 조선 왕실 한글 유물을 이관 받는 언론공개회가 있었습니다.

이관 되는 왕실 유물은 윤씨 집안으로 하가(下嫁, 공주가 시집감)하였던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와 아들 윤용구, 손녀 윤백영이 작성한 문서와 서적 등 68점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은 2016년부터 덕온공주 집안의 왕실 한글 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덕온공주의 친필을 포함 현재 400여 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이관 되는 유물까지 더하면, 국립한글박물관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왕실 한글 유물을 소장한 기관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개관 5주년을 맞이하는 국립한글박물관은 올해 4월 25일(목)부터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자료를 공개하는 기획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덕온공주가 쓴 자경전기 사진
▲ 「덕온공주가 쓴 자경전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국립한글박물관으로 이관되는 덕온공주 집안의 왕실 유물 중에 압권은 단연코 「자경전기(慈慶殿記)」입니다.

자경전(慈慶殿)은 1777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위해 창경궁의 양화당(養和堂) 옆 작은 언덕에 지은 전각입니다. 후에 효의왕후(정조 비)가 거처하였던 곳이기도 하였고, 한때는 왕실 도서관이었던 장서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습니다. 한문으로 된 「자경전기」는 순조가 어머니 효의왕후의 명을 받들어 1808년에 지었습니다. 이 글을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딸 덕온공주에게 명하여 원문에 토를 달아서 한글로 쓰고, 이어서 우리말 번역문을 적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단아한 한글 글씨는 덕온공주의 친필입니다.

자경(慈慶)은 자전(慈殿, 임금의 어머니)의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효심이 지극하였던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봉양하고자 자경전을 지었습니다. 이 뜻을 이어 받기 위해 효의왕후는 아들 순조에게 자경전의 유래 등을 밝힌 「자경전기」를 짓게 하였고, 그 효심을 딸이 전해 받을 수 있도록 순원왕후는 덕온공주에게 한글로 번역해서 직접 쓰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자경전기」는 혜경궁홍씨로부터 정조, 효의왕후, 순조, 순원왕후를 거쳐 덕온공주까지 대를 이어 효로써 봉양하고자 하였던 왕실의 깊은 효성을 상징하는 유물입니다.



덕온공주가 쓴 규훈 사진
▲ 「덕온공주가 쓴 규훈」


덕온공주(德溫公主, 1822~1844)가 규훈(閨訓) 외편(外篇) 독륜(篤倫)의 봉선장(奉先章)과 교자손장(敎子孫章)의 우리말 번역문을 단아한 궁체로 적은 것입니다. 부녀자가 지켜야할 덕목이나 예절 등을 기록하였습니다.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 사진
▲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 비, 1789~1857)가 사위 윤의선(尹宜善. 1823~1887)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윤의선이 감기와 기침을 심하게 앓아 걱정하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있어 든든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윤의선은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의 셋째 딸인 덕온공주와 1837년에 혼인하여 남녕위(南寧尉)에 봉해졌습니다. 그러나 덕온공주와의 사이에 자녀가 없어 윤용구(尹用求, 1853~1939)를 양자로 들였습니다.



윤용구가 쓴 여사초략 사진
▲ 「윤용구가 쓴 여사초략」


윤용구가 중국 역사에서 모범적인 여인 30명의 행적을 사람별로 나눠서 한문으로 먼저 적고 행간에 붉은색으로 토를 달았으며, 이어서 한글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표지에 윤용구가 친필로 ‘己亥十月石村退士書示女兒(기해년(1899) 10월에 석촌퇴사가 딸 아이에게 써서 보여준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따라서 1899년 윤용구가 12살 되는 딸 윤백영에게 써 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윤백영이 쓴 환소군전 사진
▲ 「윤백영이 쓴 환소군전」


윤백영(1888~1986)이 47세 되던 1934년에 환소군(桓少君)의 전기를 궁체로 쓴 작품입니다. 환소군은 서한(西漢) 포선(鮑宣)의 처로, 검소하고 어질며 사리에 밝았다고 전합니다.
윤백영은 한글 궁체로는 처음으로 조선미술전람회(1929년, 1931년)에 입선하였으며, 전통적인 한글 궁체가 현대의 예술 작품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에 가교 역할을 하였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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