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증자 | 이상억 |
|---|---|
| 기증일자 | 2011-03-07 |
| 수량 | 11점 |
| 대표자료 | 김동훈식 5벌식 타자기 |
| 내용 |
김동훈이 개발한 5벌식 자판을 쓰는 한글 타자기. 타자 속도는 느리지만, 활자로 박은 네모꼴 글자에 가깝게 출력. 김동훈식 타자기는 1949년 7월에 열린 조선발명장려회의 한글 타자기 현상공모전에서 3등 수상. 김동훈의 5벌식 한글 자판은 이원익의 방식을 개량한 것으로 자음 2벌, 모음 2벌, 받침 1 벌의 타자기 글자판이다. 1949년 조선 발명 장려회의 타자기 현상 공모에서 3위로 입상한 이래 타자기를 상업적으로 양산하는 데에 성공했다. 글자가 정사각형의 네모처럼 찍혀 모양이 아름다워 사용자들의 평이 좋았다. 1959년부터 실용화되어 일반 무역회사나 개인 회사 사무실에서 이 타자기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로 인해 앞서 개발되었던 공병우의 3벌식 한글 자판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더 가지런한 모양의 글씨를 찍을 수 있는 이른바 ‘체재(體裁) 타자기’ 시장이 형성되었다. 김동훈의 5벌식 한글 자판을 가진 타자기는 체재 타자기 중에서 가장 널리 시장에 퍼졌고,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는 공병우의 3벌식 한글 자판을 가진 타자기 간의 경쟁이 과열되었다. 결국 과학기술처에서는 1969년 4벌식 한글 자판을 가진 타자기를 국가 표준으로 공표하였고, 이로써 김동훈의 5벌식 한글 자판을 비롯한 대부분의 자판이 한글 기계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국가기술표준원 컴퓨터글자판전문위원회 위원장 조석환) 이 타자기는 기증자 이상억의 아버지가 1950년대에 무역회사를 운영할 때 쓰던 것이다. 1960년경 그의 아버지는 운영하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은행으로 이직하였는데, 이 후로 집 안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보관하고 있다가 기증하였다. (이상억) 우리 아버지 회사에서 쓰시던 건데, 그 당시에도 5벌식 타자기는 굉장히 드물었어요. 왜냐면 자음과 모음이 있는 2벌이 기본이고 공병우식이 3벌식인데, 이게 뭐가 다르냐 하면 같은 기역이래도 글자마다 모양이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벌이 다 달라야 해요. ‘가’ 하면 길어지고 ‘각’ 할 때는 짧아지고요. 초성 밑에 받침이 있을 때는 작아져야 하고, 모음 길이도 짧아져야 하죠. 밑에 받침이 있기 때문에 그걸 아름답게 조합하기 위해 5벌의 세트로 자판을 만든 것이 5벌식입니다. 아버님께서 본래 은행에 계셨었다고 해요. 은행으로 다시 가시느라 회사를 접으셔서 이 물건이 필요 없어졌죠. 우리집에 뒹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얼른 챘지요. 내가 쭉 보관하다가 마침 한글박물관에서 자료를 수집한다고 해서 ‘내가 이거를 집에서 가지고 있어 봐야 고물밖에 더 되겠나’ 하는 마음으로 여기에 좋은 일 했죠. 실제로 타자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문자생활의 기계화로의 길」*이란 논문을 통해 타자기 자판에 대해 전문적 검토를 하기도 하였다. 거기서 공병우 타자기의 3벌식이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인연으로, 공병우가 당시 미국에서 막 개발되었던 ‘Televideo PC’ 를 보내 주었다. 덕분에 그는 한국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개인용 탁상 컴퓨터를 써 본 경험을 하였다 한다. - 기증자료집 『한글, 함께 걷다』(국립한글박물관, 2017) p.272 - * 이기문 외, 『한국어문의 제 문제』, 일지사(1983), pp. 255~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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