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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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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힘, 한글
전시기간
2019-02-25~2019-06-30
전시장소
상설전시실
삼일절 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상설전시실 테마전. 독립운동의 힘, 한글. 2019년 2월 25일 월요일부터 6월 30일 일요일까지. 한글이 목숨 포스터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상설 테마전
    독립운동의 힘, 한글
  • 전시 기간
    2019년 2월 25일 월요일 ~
    2019년 6월 30일 일요일
  • 전시 장소
    상설전시실
  • 전시 구성
    1부
    한글, 나랏글이 되다
    2부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3부
    한글, 독립운동의 힘이 되다
전시 내용

이번 전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원동력이 된 한글, 그리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다양한 노력을 소개한다.

전시 구성
1부  한글, 나랏글이 되다
1894년 한글은 나라의 공식 문자가 되었다. 당시에는 우리말글의 규범이 없었기 때문에 한글 표기에 혼란이 있었다. 1907년 학부 내에 한글 연구 기관인 국문연구소가 설치되고 주시경周時經, 1876~1914 등 연구위원들은 1909년 한글 표기법 통일안인 ‘국문연구의정안國文硏究議定案’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1910년 나라를 빼앗기면서 표기법 통일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국문연구의정안 사진▲ 국문연구의정안 國文硏究議定案 국가가 주도하여 만든 최초의 한글 표기법 통일안 / 1909년 도쿄대 오구라문고 소장/복제, 28x20.0
국문연구소에서 정리한 한글 표기 통일안이다. 모든 초성을 종성에 쓸 수 있게 규정하였다. 오늘날 맞춤법 규정의 원형이 되었다.
2부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1919년 3.1운동 이후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주시경의 제자들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자 1921년 ‘조선어연 구회’를 창립하였다.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우리말글의 규범을 제정하고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의 체계를 세우고 보급하여 한글 의 중요성을 알렸다.
한글날 축하회 사진▲ 한글날 축하회  1927. 10. 26. 매일신보

한글맞춤법통일안 사진▲ 한글맞춤법통일안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제정한 한글 표기법 통일안 / 1933년 / 20.0×13.8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조선어학회에서 우리말글 통일의 일환으로 회의를 거쳐 완성하였다. 새 표기법을 발표하자 사회주의 ·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문학계 등 각계각층이 지지 선언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널리 확산되었다.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사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外來語表記法統一案한글 사용 금지 이후 발간된, 외래어의 한글 표기 규정 / 1941년 /18.8×12.8
1938년 이후 일제가 한글 교육을 금지하면서 조선어학회는 종로 경찰서의 주요 감시 대상이 되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조선어학회는 한글로 외래어를 표기하는 방법을 체계화하였다.

한글공부 사진▲ 한글공부문맹퇴치운동에 사용된 한글 보급 교재 / 1933년 / 18.7×13.1
이윤재(李允宰, 1888~1943)가 집필한 한글 교재로 ‘동아일보사’의 학생계몽대가 한글 강습에 사용하였다.
3부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노력
일제강점기 우리말글의 규범 제정은 한글을 보존 · 확산시켜 나라를 찾으려는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일제는 1938년부터 우리말 교육을 금지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였다. 1942년에는 치안 유지의 명목으로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온갖 고초와 수난 속에서 한글을 지키려는 노력은 나라를 찾으려는 원동력이자 구심점이었다.
고투사십년 사진
고투사십년 사진▲ 고투사십년 苦鬪四十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우리말글을 지키고자 한 이극로의 자서전 / 1947년 / 18.0×13.0
이극로(李克魯, 1893~1978)는 우리말글을 통일하여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이극로의 자서전에는 김두봉金枓奉,1889~1960으로부터 “우리말글을 통일하여 민중에 보급하면 나라의 독립을 위한 실력을 기를 수 있으니 진행하라.” 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우리말글 통일에 몸을 바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금서집 사진
▲ 금서집 錦書集1930년대 / 외솔기념관 소장
한글학자 최현배(崔鉉培, 1894~1970)가 1930년대 한 음식점 방명록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로 강력하게 우리 문자의 소중함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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