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 2.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 존 로스 선교사로부터 시작되다, 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해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경누가복음젼셔(1882)를 만든 존 로스를 만나봅니다.

‘큰집’과 ‘큰 집’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듯 ‘띄어쓰기’는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한 어문규정이다.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단어를 붙이거나 띄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글의 띄어쓰기를 만든 사람이 외국인 선교사라는 점이다. 19세기 말 한국을 방문해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를 만든 존 로스(John Ross)가 그 주인공이다.

존 로스, 한글 성경을 만들기 위해 고려문을 찾다

▲ 조선어첫걸음 존 로스 선교사의 한국 이름은 ‘라요한’이다. 그는 1842년 스코틀랜드 동북지역에 위치한 이스터 마치 지역에서 태어나 연합장로교회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872년부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뜻을 이루기기 위해 선교에 나섰지만, 첫 선교지는 중국 만주였다. 그가 몸담고 있던 스코틀랜드성서공회(NBSS)에서 파송된 곳이 중국 만주 영구였기 때문이다. 로스는 영구에서 첫 겨울을 보내며 중국어와 사서삼경 공부에 매진했고, 이듬해인 5월에는 중국어 설교에 성공했다.

하지만 결혼 후 1년 만에 아내와 사별하게 된 로스는 1974년 ‘고려문’으로 향한다. 고려문은 당시 만주에서 국제무역이 가장 성행했던 곳인데 음력 3~6월, 8월, 9~10월, 12월에만 통행이 허락돼 개방 시기에는 수많은 상인들이 몰리던 곳이었다. 당시 존 로스는 성경을 조선말로 번역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고려문에 모인 조선 상인들은 한문이나 만주어에 능통한 경우가 많아 종교 전파에 좋은 기회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때 그와 연이 닿은 사람은 함경남도 의주 출신의 이응찬이었다. 이응찬은 당시 압록강을 건너다니며 한약재를 팔던 장사꾼인데, 단동으로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고려문까지 떠밀려온 상황이었다.

자모만 배우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우수한 한글

이응찬은 로스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한글 교사 겸 번역가로 활동하게 됐다. 로스는 그의 도움을 받아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가 도입된 한국어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 1877)’을 만들었다. 이는 로스가 자신과 같은 선교사나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든 책으로, 한글 아래 발음기호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기록됐다. 여기에 최초의 한글 띄어쓰기가 도입된 것은 로스가 사용하던 영어의 띄어쓰기가 자연스레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책에는 “한글은 소리글자로 이루어져 자모만 배우면 누구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자”라며 한글의 우수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간행물로는 <독립신문>이 1896년 최초의 한글판 신문 발행과 함께 띄어쓰기를 도입했으며, 1906년 대한국민교육회가 발간한 <초등소학>에는 단어와 조사들을 모두 띄어 쓰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면서 띄어쓰기의 어문규정이 하나씩 정립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성경 번역에는 로스 선교사를 중심으로 이응찬, 이성하, 백홍준, 김진기 등이 참여했다. 한국인 번역자들이 한문 성경을 읽고 그것을 한글로 옮기면, 로스가 다시 한글과 헬라어를 대조해가며 원문에 가깝게 다듬는 방식이었다. 이에 1878년 이들이 공역한 ‘누가복음’ 초역이 완성됐으며, 이 초역본은 다시 로스의 선배였던 맥킨타이어 선교사가 다른 한인 번역자들과 함께 수정 과정을 거쳐 최종본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번역본들은 1878년 ‘요한복음’과 ‘마가복음’, 1877년 《한문문리성경》, 1879년 ‘마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등이다.

최초의 한글성경《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

▲ 예수셩교젼셔(1887)신약 성경의 한글 번역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즈음 로스는 한글 성경의 인쇄비를 마련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성서공회에 130파운드를 요청했다. 그리고 1881년 중국 심양(랴오닝성에 있는 도시로 한국 교민이 많은 곳)에 인쇄소를 설치해 우리나라 첫 한글 성경인 《예수셩교문답》과 《예수셩교요령》을 인쇄했다. 당시 수천 권이 인쇄된 두 책은 부산과 국내 일부 지역, 만주 한인촌, 일본 등으로 발송됐다. 《예수셩교문답》은 현재 런던 캠브리지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고 있다. 이듬해인 1882년에는 한국 개신교사상 최초의 성경으로 알려진 51페이지짜리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가 3,000부 간행됐으며, 이후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발행한《개역 그리스어 성서》를 기준으로 《예수셩교젼셔》를 다시 검토, 교정하며 더욱 정확한 성경을 완성해갔다.

낯선 타지에서 한국어 성경을 완성해간 존 로스. 그는 한글 최초로 띄어쓰기를 도입한 것은 물론 “한글이 한문보다 훨씬 정확한 번역본을 만들 수 있는 글자”라고 확신하며 우리 한글을 더욱 우수한 문자로 만들어준 고마운 인물이다.

<사진자료 : 대한성서공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