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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이야기 사진. 내방가사 ‘잊지 못할 내 딸이라’ 사진이다. 두루마리에 빼곡하게 한글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소장품 이야기
통곡을 대신하여 쓴 글,
『잊지 못할 내 딸이라』
소장품 이야기

통곡을 대신하여 쓴 글,
『잊지 못할 내 딸이라』

슬프고 애달프다 나의 심경
왜 이토록 쓰라린가 아아 원통 가련하다

고이고이 키워 17살에 시집보낸 첫딸이 38살에 요절했다. 딸을 잃은 어미는 이미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고, 첫딸 앞에는 이미 두 명의 자식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 어미에게 무탈하게 자라 시집까지 간 첫딸이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그런 딸이 추운 겨울 남편 회갑제사를 다녀간 것을 마지막으로 어미의 곁을 떠났다.

새벽 서리 찬바람에 벌벌 떨고 떠날 때
목석같은 어미 불러 봄날 따뜻해지거든
부디 한번 오란 부탁 그 말이 마지막이며
그길로 영결될 줄 내 어찌 알았으며
백년살까 믿은 마음 요지경이 되었으니

어미가 기억하는 딸의 마지막 모습이다. 남편의 회갑제사 준비로 바쁜 어미는 친정에 온 딸을 살갑게 맞아줄 겨를이 없었다. 홑몸도 아닌 딸이 새벽 추위로 벌벌 떨며 떠날 때 무뚝뚝한 어미는 따스한 말도,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한 채 딸을 그대로 떠나보냈다. 그것이 딸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래서 어미는 딸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에 박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었다.

<잊지 못할 내 딸이라>는 경북 영덕 출신의 이동(李東, 1892~1982) 여사가 1955년 딸의 삼년상을 치른 겨울에 지은 내방가사*이다. 작품에는 ‘애고답답’, ‘기막혀라’, ‘분하다’, ‘슬프다’, ‘애통’ 등등 딸을 잃은 어미의 심경을 대신하는 모든 말들이 동원되고 있다. 슬픔보다는 고통에 가깝고, 울음보다는 통곡에 가까운 이 작품은 사별의 슬픔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도 해소될 수 없는 슬픔인지를 보여준다.

*내방가사: 가사의 한 종류로 주로 여성들이 창작한 우리나라 전통문학 장르

뛰노는 어미 심경 두 눈에는 눈물 나고
틈 없이 막힌 가슴 붓대는 요동하니
무슨 수로 쓴단 말인가

가슴이 꽉 막히고, 멈춰지지 않는 울음으로 붓대가 제 맘대로 움직인다. 딸을 잃은 고통은 자신이 죽어 다시 딸과 상봉해야만 해소될 수 있는 아픔이다. 딸을 잃은 어미의 고통은 살아서는 해결될 수 없다.

이 두루마리 내방가사는 한 여성의 죽음에 대해 세 명의 추모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시작 부분에는 딸을 잃은 어미의 가사인 <잊지 못할 내 딸이라>, 그 뒤에는 누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남동생의 가사 <매시>,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의 가사 <고분가>가 이어져 있다. 한 여성의 죽음은 어머니에게는 자식의 상실이며, 남동생에게는 누이의 상실, 남편에게는 아내의 상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자식들에게는 어머니의 상실로 이어지기에 참혹하다.

누이를 애도하는 남동생의 가사 ‘매시’이다. 누런색 종이에 한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매시 妹氏> 누이를 애도하는 남동생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가사 ‘고분가’이다. 누런색 종이에 한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고분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어머니의 내방가사가 통곡에 가까운 절규였다면, 남동생은 누이를 추모하며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편안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었다. 남편은 자신을 성장시킨 아내에게 고마워하며 남은 세 아들이 무사히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늘에서도 지켜봐 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은 망자에 대해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가사를 지어 한 장의 두루마리로 모아 적었다. 가사를 매개로 망자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사별의 슬픔을 가족애로 극복하려 했던 옛사람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는 소장품이다. 사별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경험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비슷한 경험이 닥쳐왔을 때 옛사람이 남긴 내방가사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서주연(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