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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2019. 12. 제 77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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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의 인쇄출판문화 – 자치통감과 종이

    명칭: 자치통감 권153~156 (資治通鑑 卷153~156)
    만든이: 사마광 원저, 조선시대 사정전 훈의
    시대: 1436년
    크기: 24.4㎝×36.6㎝

    세종대왕께서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숭상하는 아름다움이 높고 뛰어나 뜻을 서적에 두고 찍어내어 중외에 널리 펴지 아니하는 책이 없었다

    -『문종실록』 문종 원년(1450) 10월10일의 기사

    위의 내용은 조선시대 세종대의 활발한 인쇄출판문화에 대한 기록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는 역사, 농업, 천문, 지리, 수학, 의약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종류의 서적들이 간행되었다.
    이러한 서적들 중 하나인 『자치통감』은 중국 북송대 사마광이 편찬한 역사서로 잘 알려져 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본은 1436년 세종의 명으로 ‘초주갑인자’본으로 출간된 것이다.

    서적의 간행 사업에는 비용과 물자가 많이 든다. 그 중에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이 바로 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종이를 어떻게 조달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강목속편(綱目續編)』을 인쇄하고자 하니, 경상도에서 책에 사용할 종이 1천5백권을 준비하게 하고, 전라도에서 2천5백권을 준비하게 하되, 국고(國庫)의 쌀로써 민간(民間)의 닥나무(楮)와 교환하여 종이를 만들어 바치게 하라

    -『세종실록』 세종5년(1423) 2월5일 기사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인쇄하여 반포하고자 하니, 그 책을 인쇄할 종이를 공물(公物)로 닥나무(楮)를 사서 제조하여 올려 보내도록 하라

    -『세종실록』 세종7년(1423) 1월24일 기사

    책을 인쇄하는데 쓰이는 종이를 경상도, 전라도 등의 여러 지역에 할당하여 거두어 들이고, 종이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를 사들이기 위하여 비축해 놓았던 공물을 사용하면서까지 종이의 조달과 수급에 공을 들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희미한 한문이 빼곡이 적혀있는 네 장의 『자치통감』 책지. ▲ 『자치통감』 한 책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책지

    편찬사업이 많아질수록 사용되는 종이를 닥나무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한 방안으로 종이를 뜰 때 주변의 여러 재료를 섞어서 제작하였으며, 특히 『자치통감』의 편찬에도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종이가 사용되었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인쇄할 종이를 각처에 나누어 만들게 하되, 5만권은 조지소(造紙所)에서 만들고, 10만5천권은 경상도에서, 7만8천권은 전라도에서, 3만3천5백 권은 충청도에서, 3만3천5백권은 강원도에서, 모두 합하여 30만권을 만들라

    닥[楮]은 국고의 쌀로써 바꾸고, 경내의 중들을 시켜 종이 뜨는 일을 하게 하되, 의복과 음식을 주고, 쑥대[篙節]와 밀·보릿짚[麰麥節], 대껍질[竹皮]·삼대[麻骨] 등은 준비하기가 쉬운 물건이므로, 이를 5분(分)마다에 닥 1분을 섞어서 만들면, 종이의 힘이 조금 강할 뿐만 아니라 책을 인쇄하기에 적합하고, 닥을 쓰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세종실록』 세종16년(1434) 7월17일 기사

    실제 『자치통감』의 종이를 조사해보면 일반적인 닥나무만으로 만든 종이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자치통감 한 책에서 4종류 이상의 다른 종이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각 지방에서 거두어들인 종이를 합하여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각 지방의 장인에 따라, 또 그 장인이 사용하는 종이를 뜨는 발에 따라,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얼마나 썼는가에 따라 각양각색의 종이가 나올 수 있다.

    『자치통감』 의 표면 50배 확대한 다양한 종이들의 모습을 촬영한 네 장의 사진. 알아보기 어려운 섬유가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자치통감』 의 표면 50배 확대한 다양한 종이들의 모습을 촬영한 네 장의 사진. 알아보기 어려운 섬유가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자치통감』 의 표면 50배 확대한 다양한 종이들의 모습을 촬영한 네 장의 사진. 알아보기 어려운 섬유가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자치통감』 의 표면 50배 확대한 다양한 종이들의 모습을 촬영한 네 장의 사진. 알아보기 어려운 섬유가 무늬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 『자치통감』 의 다양한 종이(표면 50배 확대)
    위의 두 종이는 닥나무 인피섬유(흰색의 섬유)가 많은 반면 아래 두 종이는 초본류 섬유(황갈색 굵은 섬유)들이 섞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적은 물자와 비용으로 많은 양의 서적을 편찬하기 위한 방편으로 바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섞은 ‘인쇄용 종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볏짚, 귀리짚 등을 섞어 만든 종이를 ‘고정지(藁精紙)’라고 하는데, 실제 『자치통감』의 종이를 조사해보면 4종류 이상의 고정지가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지소 이외에 경상도, 전라도 등 여러 지역에서 거두어들인 고정지들을 섞어서 사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닌바 문양에 차이를 보이는 『자치통감』의 종이 두 장. 좌측의 종이는 길죽한 선들이 아로새겨져 있고, 우측의 종이는 사람의 점과 같은 검은 반점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지닌바 문양에 차이를 보이는 『자치통감』의 종이 두 장. 좌측의 종이는 길죽한 선들이 아로새겨져 있고, 우측의 종이는 사람의 점과 같은 검은 반점들이 곳곳에 박혀 있다.

    ▲ 『자치통감』의 종이: 같은 고정지도 재료와 가공법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닥섬유, 짚과 같은 초본류, 마섬유, 대나무섬유 등의 종이를 200배 확대해 촬영한 사진. 규칙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이어진다.

    닥섬유, 짚과 같은 초본류, 마섬유, 대나무섬유 등의 종이를 200배 확대해 촬영한 사진. 규칙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이어진다.

    닥섬유, 짚과 같은 초본류, 마섬유, 대나무섬유 등의 종이를 200배 확대해 촬영한 사진. 규칙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이어진다.

    닥섬유, 짚과 같은 초본류, 마섬유, 대나무섬유 등의 종이를 200배 확대해 촬영한 사진. 규칙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들이 이어진다.

    ▲▲ 『자치통감』 종이의 재료 (200배 확대, C염색 정색반응):
    ① 닥섬유(두꺼운 섬유, 적갈색) / ② 짚과 같은 초본류(노란색, 남보라색)
    ③ 마섬유(섬유표면 거칠고, 두껍고 길다. 적갈색) / ④ 대나무섬유(둥근유세포, 진한남색)

    『자치통감』과 종이에 대한 정보는 세종대 인쇄출판문화의 실체적 일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원고 : 자료관리팀 이진희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