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3. 제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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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이야기 개화기 한글로 기록한 여성의 모습
- 윤용구의『동사기람』,『비문만록』
연구교육과 안솔잎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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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기람의 양면이 펼쳐진 내지의 모습. 갈색을 띄는 고서 내지위로 세로쓰기로 적은 줄글이 가득 채워져 있다.
▲ 명칭: 동사기람 / 수량: 10권 10책 / 판종: 필사본 / 크기: 28.5×19.2cm

전근대에는 여성 교육을 목적으로 여성 교화서를 읽는 풍조가 있었다. 성리학이 수입되는 여말선초부터 ‘정절’과 ‘열녀’ 등의 여성 윤리를 지키는 인물 형상이 그려진 『열녀전(列女傳)』, 『여계(女戒)』 등의 여성 교화서가 전파된 것에서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에는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된 『고열녀전(古列女傳)』 등과 같이 대부분 관청의 주도로 편찬되어 여성 교화서가 보급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17세기 이후 『우암선생계녀서(尤菴宋先生戒女書)󰡕, 『훈부록(訓婦錄)』과 같이 딸이나 며느리에게 주기 위해 민간에서 여성 윤리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양상이 나타난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 『우암선생계녀서』 등의 서적이 20세기 초에도 재인쇄된 점을 미루어 개화기에도 여성 교훈서가 널리 읽혔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이 주인공인 역사서
『동사기람(彤史紀覽)』
동사기람의 양면이 펼쳐진 내지의 모습. 우측면은 비어있으며, 좌측면에는 세로쓰기로 검은 글귀가 적혀져 있는 가운데, 글귀 우측에 붉은 글씨로 한자어가 적혀있다. ▲ 동사기람 내지

개화기 서화가로 유명한 윤용구(尹用求, 1853~1939) 또한 『동사기람(彤史紀覽)』, 『여사초략(女史抄略)』 등의 여성 교훈서를 편찬했으며, 여성이 주체가 되는 일화를 중심으로 여성인물지 『비문만록(飛聞漫錄)』을 저술했다. 윤용구는 덕온공주의 양자(養子)이며 명문거족으로, 일제강점기가 되고 여러 번 고위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사양하고 장위산(현재 일산 부근)에 은거하면서 많은 서예, 서화 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동사기람(彤史紀覽)』은 중국의 역대 여성 전기에서 경계가 될 만한 인물고사를 10권 분량의 방대한 분량으로 수록한 책이다. ‘동사(彤史)’는 궁중의 여성 사관에 의해 붉은 붓으로 기록된 역사를 뜻한다. 『여사초략(女史抄略)』은 『동사기람』의 내용 중에 윤용구의 딸 윤백영에게 귀감이 될 만한 30가지 내용만을 뽑아서 만든 요약집이다.

특히 『동사기람』은 여성에 관한 일화를 가장 많이 수록하면서도, 다양한 여성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 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구성면에서 한글로 평균 400자 내외의 짧막한 일화가 권당 80편 내외의 방대한 양으로 이루어져있다. 체계면에서 중국의 상고시대부터 명나라 시대까지 시대 순으로 나열했다. 형태면에서 모란을 비롯한 갖가지 꽃을 흰 염료로 칠한 표지에 붉은 색실로 묶은 모습을 갖추어 필자를 모르더라도 왕실이나 귀족이 편찬할 수 있을만한 서책임을 알 수 있다. 내용면에서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일화를 전기 형식으로 그리되, 묘사체·대화체 등을 통해 생생하게 인물상을 형상화하였다.

내용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조선 전기부터 전해온 ‘정절’과 ‘열녀’ 등 여성 윤리 사상이 지배적이지만, 조선 시대에 널리 알려진 유교적 여성 교화서와 결을 달리 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궁중의 여인에서부터 항간의 가난한 여성까지, 정절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여인에서부터 나라를 멸망하게 한 여성까지 제시하여 다양한 여성 인물 군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여성 교훈서와는 다른 의의가 있다. 유교적인 여성 윤리를 말하는 한편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에서,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필자가 일차적으로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이차적으로 다양한 여성상을 인정하고자 󰡔동사기람󰡕을 찬술했을 것이다.

다양한 여성의 삶을 담아낸
『비문만록(飛聞漫錄)』

비문만록의 표지. 붉은 빛을 띠는 표지가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래있다. 좌상단 부분 표지가 찢겨져 나가 □부분의 글귀를 알아볼 수 없다.▲ 문만록 표지

비문만록의 양면을 펼쳐놓은 내지. 갈색을 띄는 고서 내지위로 세로쓰기로 적은 줄글이 가득 채워져 있다.▲ 명칭: 비문만록 / 수량: 1책 / 판종: 필사본/ 크기: 25.6×16.6cm

또한 『비문만록(飛聞漫錄)』에서도 본 받아야할 인물에서부터 모범적이지 않은 인물들까지 다양한 형상을 제시하고 있다. 『비문만록』은 13쪽 분량으로, 모두 15편의 여성과 관련한 일화를 수록하고 있다. 대개 사대부가의 여성 일화를 다루고 있으며 그 뒤에는 절메주, 원소병(보름떡), 석난젓(황석어젓) 등 음식 조리법이 기재되어 있다. 윤용구가 ‘약과법’까지만 써놓은 부분부터 그의 장녀 윤백영이 뒷부분을 보충해서 ‘약과법’ 내용과 ‘강졍법’의 음식 조리법을 추가로 써놓았다.

통상 제목을 쓰는 곳인 권수면에서 본문 내용이 바로 시작되고, 표지 앞머리에 제목이 적혀있으나 앞 글자 부분이 결락되어 이 책의 제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 글자의 남은 부분을 살피면 ‘비문만록(飛聞漫錄)’으로 제목을 유추할 수 있는데, 이는 ‘세상에 난 뜬 소문과 마음대로 쓴 글’이라는 뜻이다. 항간의 소문이나 세상에 있을 법한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는 제목처럼 언니를 죽게 하는 막내딸, 며느리를 학대하는 시어머니, 무당의 말을 맹신하는 대신 부인, 몸을 치장하는 여인, 많은 남자에게 연애 편지를 보내는 고관 부인 등 여러 가지 여성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아래에서 고관 부인에 관한 이야기 일부를 살펴서 윤용구의 여성관을 알아보고자 한다.

어느 고관의 부인이 과부로 지내면서 아들 형제가 다 결혼했는데도,
그 부인이 조정의 고관과 여항에 근근이 살아가는 신분 낮은 사람에게
대낮에 모르는 터에 편지를 하여 종에게 (편지를 전하라고) 보냈다.
편지를 받은 그 남자들이 어이없어 하기도 하고 혹은 종을 크게 꾸짖어 쫓아 보내는 이도 있고
혹은 앞뒤로 정황을 생각하고 일차로 받기는 하되 편지는 내쳐 밖으로 보내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인이 예절을 생각하지 않고 쫓겨 오는 대로 며칠을 걸러
종을 (편지를 전하라고) 보내나 점점 욕만 되니,
(고관 부인이 모르는 남자에게 연애 편지를 쓴다는 소문이) 세상이 파다하더라.
그 집인 즉 3~40 간에 노복도 있고 내외로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아들들도 행세하여
출입하더라 하니 인간 같지 않은 수치 없는 부인은 다시 둘도 없을 듯하더라.
- 윤용구, 『비문만록』

위의 글에서는 과부가 된 고관 부인이 모르는 남자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보내는 일화를 그리고 있다. 이 일이 항간에 소문이 나자, 글 말미에서는 고관 부인을 ‘인간 같지 않은 수치 없는 부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로 미루어 볼 때 필자가 고관 부인을 부정적으로 보고있다는 점을 알 수 있지만, 한편 필자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인물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필자의 의도 여부를 떠나서 근대전환기에 자유롭고 개인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덕온공주가의 한글1》의 표지를 입체적 모습. 붉은색 표지 가운데 흰 부분에 제목이 적혀있는 책을 세워놓았다.
▲ 입체표지

윤용구가 기록한 한글 여성인물지 『동사기람』, 『여사초략』, 『비문만록』은 국립한글박물관 소장자료 총서7 『덕온공주가의 한글 2』에서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덕온공주가의 한글 2』는 『덕온공주가의 한글 1』의 후속 발간물로, 덕온공주와 후손인 윤용구, 윤백영이 기록한 한글 유물을 선집한 자료집이다. 이 자료집을 통해 개화기에 그려진 여성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서예가 윤용구의 아름다운 한글 서체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