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3. 제 79호

지난호보기 메뉴열기

반갑습니다 “한글은 바로 나 자신이죠” 대중음악사학자이자 노래하는 교수 장유정을 만나다

국경, 인종, 문화를 초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노래 아닐까.
여기, 우리나라 대중가요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직접 음반을 내고 노래를 부르며
구성진 멜로디에 한글문화를 실어서 널리 알리는 인물이 있다.
이번 호에서 첫 선을 보이는 한글 관련 인터뷰 코너 ‘반갑습니다’의
첫 번 째 주인공 장유정 교수를 만나보았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URL복사
Q. 교수님께서는 국내에서는 드문 대중가요 역사 연구자이십니다. 연구를 시작한 계기와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대중음악 역사를 연구하는 대중음악사학자, 노래하는 교수, 단국대학교 교양학부의 장유정입니다. 전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간 이유도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서라 할 수 있어요.(웃음) 대학교에 들어가서 대학교 3년 동안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기타, 판소리, 재즈 댄스, 피아노를 배우며 준비한 뒤 지원했는데 예선에서 ‘똑’ 떨어졌어요. 그 후 나 스스로와 친구에게 “세상에는 열정과 애정만으로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며 가수로서의 꿈을 접었어요. 그런데 대중가요 없는 저의 삶은 상상을 못 하겠더라고요. 노래를 못하면 노래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죠.

당시에는 생활 음악과나 실용 음악과 등이 없던 시절이에요. 이른바 ‘서양물’을 먹고 오신 분들이 대중음악에 대해 이런저런 평론을 하던 시절이었고요. 저는 대중음악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우리나라 음악부터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민들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민요 등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죠. 석사학위는 민요로 받았고, 박사학위를 대중음악 연구로 받았어요. 석사학위 논문도 대중음악으로 받고 싶었지만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분위기가 보수적이라 대중음악으로 석사학위를 받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쩌면 전략적으로 석사학위 논문은 민요로 썼던 거죠. 이어서 박사학위 논문은 제 뜻대로 대중가요 연구로 썼어요. 당시 국내 국문과에서 처음으로 나온 대중음악 박사학위 논문이었죠.

Q. 교수님의 연구 중 근대 대중가요 노랫말의 흐름을 문학사적으로 풀이하신 점이 특히 눈길을 끕니다.

노래에서 노랫말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해요. 장르에 따라서 어떤 노래는 음악보다 노랫말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 할 수 있죠. 게다가 대중음악 초기에는 문인 출신의 작사가들이 많았어요. 대중가요 가사를 ‘가요 시’라고 일컫기도 할 정도로 문학성이 뛰어난 가사들이 많았죠. 저는 기본적으로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랫말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어요. 실제로 노래에서 가사는 선율보다 상대적으로 당대의 사회와 문화를 직접적으로 반영해요. 따라서 가사를 연구하면 노래를 통해 당대를 읽을 수 있고 그 변천도 알 수 있죠.

Q. 2006년부터는 공연에 강연을 접목한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를 하며 전국을 누비셨습니다. 어떤 콘서트인가요?

렉쳐 콘서트의 모습.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악보대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여성 싱어의 뒤로 피아노, 첼로, 드럼 연주자가 각자의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무대는 한 건물의 옥상이며, 무대 뒤로 도시의 빌딩들이 솟아있다. ▲ 렉처 콘서트 모습

음반 ‘경성 야행’의 표지. 한자 京城夜行이 세로로 크게 적혀있고, ‘<Midnight in kyungsung> 장유정 X 주화준 트리오’가 적혀있다. 표지는 경성의 밤거리에 건물 아래로 주황불빛이 번지는 모습을 그려냈다. ▲ 음반 ‘경성 야행’

렉처 콘서트는 말 그대로 강연(Lecture)과 공연(Concert)이 접목된 형태예요. 대중음악 강연을 말로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강연하면서 특정 노래가 나오면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들어봐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단순히 과거의 노래가 아니라 지금의 노래로 소환하려면 공연 형태를 띨 수밖에 없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노래하고 싶은 제 열망과 열정을 강연에 녹였다고 보면 될 듯해요. 그래서 2012년부터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지털 싱글을 냈어요. 그 노래들을 모아서 2013년에 자비로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 음반을 냈고요. 2017년부터는 아예 라이브 밴드와 만나서 공연 형태를 좀 더 강조하게 되었고요. 결국 렉처 콘서트는 과거의 것을 현대에 되살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죠. 재미와 교양을 동시에 지향하는 거라 볼 수 있고요.

Q. 2013년에는 ‘장유정이 부르는 모던 조선: 1930년대 재즈송’을, 올 초에는 ‘경성 야행’과 같은 음반을 발표하셨습니다.

대중음악 역사를 연구하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중요하고도 다양한 노래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번에 발매한 ‘경성야행’은 그 결과물의 일부를 모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특히 잊힐 뻔한 노래들을 집어넣었는데요, 예를 들어, 악보로만 남아있던 나혜석 작사의 <노라>1과 <노라>2를 들 수 있어요. 번호는 임의로 붙인 건데요, 각각 1921년과 1922년에 악보 형태로 공개되었던 노래죠. 게다가 그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김영환과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군악대의 군악장이자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백우용이 작곡해서 의미가 있어요. 또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가 죽기 전에 녹음한 노래가 꽤 있거든요. 그중에서 ‘추억’이란 노래의 음반은 경주에 있는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만 유일하게 있어요. 박물관 관장님께 부탁드려 그 음원을 얻었고, 그 노래를 처음으로 재현했죠.

매일신보에 실린 <노라> 악보의 모습. 빛바랜 신문 용지 위에 지금은 알아보기 어려울 음표들이 잔뜩 그려진 악보가 실려 있다.
▲ 매일신보에 실린 <노라> 악보(1921.04.23.)

이번 음반은 숨은 노래의 발굴과 더불어 저항과 여성이라는 핵심어로 설명할 수 있어요. 첫 곡 <세기말의 노래>에서부터 <타향(살이)>, <엉터리 대학생> 등이 ‘저항’에 해당한다면, <노라>1, <노라>2, <사의 찬미> 등은 ‘여성’이라는 핵심어로 설명할 수 있죠. 제가 대중음악 역사를 연구하는 여성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중음악’과 ‘여성’ 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결국 이 일은 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해요. 수많은 여성 가수들의 노래를 현대에 재현하면서 나름대로 그들을 위한 씻김굿을 한다는 심정으로 강연하고 노래하기도 하고요. 특히 ‘경성야행’ 음반은 노래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참여한 많은 분들 덕분에 세상 빛을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음반이 되었죠.


<카프리의 섬> 원곡 포스터. ‘ISLE OF CAFRI’라 적힌 포스터에 30~4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어깨를 드러낸 채 매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카프리의 섬> 원곡 포스터

<사의 찬미> 음반의 모습. 원형 레코드 가운데 부분에 ‘NITTO RECORD’라 적혀있다. ▲ <사의 찬미> 음반 (한국대중음악박물관 제공)

Q. 올해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개최 예정인 대중가요와 관련된 기획전시의 자문위원으로 활약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아주 흥미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 동참하게 됐습니다. 5월에 개최 예정인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에서 현대까지 노랫말을 중심으로 음반, 노래책, 재생기기 등을 전시하고 관람객이 직접 자신만의 노랫말을 지어볼 수 있는 체험도 기획하고 있어요. 이제까지 제 연구가 대중가요 노랫말이나 작사가론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시 자문위원으로 불러주시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작게나마 기여할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한글’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한글은 제겐 모국의 문자잖아요. 나랏말과 글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따라서 한글은 바로 제 자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제 생각을 표현하고 노래할 수 있는 소중한 도구라 할 수 있죠. 그래서 계속 지키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