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제 93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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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한글 서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죠”

서체 디자이너 김동관

사진, 영상, 책, 포스터 등 다양한 시각 매체가 발전하면서
이에 발맞춰 가독성은 물론, 개성까지 갖춘 한글 서체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한글 서체 중에서도 유독 광고계에서 돋보이는 서체가 있다.
바로 ‘HG꼬딕씨’다.
누구나 광고에서 한 번쯤은 봤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HG꼬딕씨’는 김동관 디자이너의 손에서 탄생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한글 서체를 디자인한 김동관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한박웃음>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독립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 ‘한글씨’ 작업실 사진. 한쪽 벽면에 두 개의 책상이 나란히 놓여있다. 두 책상 가운데에는 작은 서랍장과 그 위에 프린터기가 놓여있다. 왼쪽 책상에는 두 개의 모니터가 나란히 놓여있으며 다양한 서체가 적혀있는 화면이 켜져 있다. 그 위 벽에는 ‘한글씨’라고 적힌 네온사인이 켜져 있다. 오른쪽 책상의 모니터는 화면이 꺼져있으며 책상 오른쪽에 은색 스탠드 조명이 서 있다. 벽 위에는 엽서와 종이가 붙어 있다.▲ 한글씨 작업실 사진 한글씨에서 제작한 서체 전 종류. 각 해당 서체로 서체 이름들이 나란히 적혀있다. 맨 윗줄에는 ‘씨앗’, ‘꼬딕씨’, ‘백야’, ‘키큰꼬딕씨’, ‘인문고딕’이 적혀있다. 두 번째 줄에는 ‘굴린꼬딕씨’, ‘해돋움’, ‘인문명조’, 가 적혀있다. 세 번째 줄에는 ‘코스모스’, ‘아몬드’가 적혀있다.▲ 한글씨에서 제작한 서체

안녕하세요. 저는 한글씨라는 독립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한글 서체를 만들고 있는 김동관이라고 합니다. 서체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총 10개의 서체 패밀리, 49종의 서체 스타일을 제작했어요.

모든 언어는 각자 자기만의 역사적 흐름이 있으며 한 언어의 서체는 그 언어를 직접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제일 잘 만든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평소 한글을 사용하는 한국의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한글 서체를 만듭니다.

Q. ‘서체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길거리 혹은 집, 휴대폰 속 영상, 광고, 간판, 패키지 등 주변을 둘러보면 어디에나 글자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체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디자인 작업물의 ‘재료’를 공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디자이너들은 종종 직접 글자를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감 때문에 글자를 일일이 그릴 시간이 부족해요. 서체 디자이너는 그런 디자이너들이 좋은 디자인 혹은 타이포그래피를 만들도록 양질의 서체를 개발해 제공합니다. 더 나아가 사회의 디자인적 아름다움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한다고 생각해요.

Q.HG꼬딕씨, HG해돋움, HG백야 등 다채로운 한글 서체를 제작했는데요.
서체 디자이너가 된 이유와 처음으로 제작한 한글 서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서체 디자인 수업은커녕 타이포그래피 강의조차 찾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 역시 서체 디자인 분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서 폰트 회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는데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의 베지어 곡선을 이용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 의외로 ‘반복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지구력’과 ‘잘 질리지 않는 성격’ 등 서체 디자이너로서 적합한 성향이 저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서체 ‘HG씨앗’으로 적은 글씨들. 글자는 붓글씨로 흘린듯한 모양이며 옛 글씨 느낌이 난다. 각 줄마다 ‘안앗았앙 앤앳앴앵’, ‘완왓왔왕 원웟웠웡’, ‘인잇있잉 오온옷옹’, ‘요욘욧용 우운웃웅’, ‘유윤윳융 으은읏응’이 차례대로 적혀있다.

▲ 서체 ‘HG씨앗’ 흘림의 표현

회사 업무로 제작한 서체를 제외하고, 제가 처음 제작한 서체는 ‘HG씨앗’이에요. 요즘에는 ‘흘림’이라는 표현이 현대적으로 많이 재해석됐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HG씨앗을 제작하려던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도전해봤죠. HG씨앗은 흘림체를 현대적인 가로쓰기용으로 재해석하다 보니 지금 보면 아쉬운 부분들이 조금 있어요. 하지만 제목용으로서 의미 있는 서체 같아요.

Q.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 뮤직비디오, 자동차 상업 광고는 물론 <비긴 어게인>, <아메리칸 셰프>와 같은 영화 포스터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HG꼬딕씨’가 사용됐습니다. 이 서체의 탄생 일화가 궁금합니다.

서체 ‘HG꼬딕씨’로 적은 문장. 하얀색 배경에 검은색 글씨로 문장이 적혀있다. 글자는 각지고 깔끔한 모양이다. 줄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가 차례대로 적혀있다. 각 줄마다 글씨의 굵기가 다르다. ▲ 서체 ‘HG꼬딕씨’ 서체 ‘HG키큰꼬딕씨’로 적은 문장. 검은색 배경에 하얀색 글씨로 문장이 적혀있다. 글자는 각지고 세로로 긴 모양이다. 각 줄마다 ‘서둘지 말고’, ‘쉬지도 말고’라고 적혀있다.▲ 서체 ‘HG키큰꼬딕씨’

‘HG꼬딕씨’는 2010년대 초반에 누리소통망 속 여러 디자이너의 작업물을 보면서 복고적인 네모꼴 구조의 제목용 고딕 서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개발한 서체입니다. 다만 복고적 느낌을 넘어, 보다 현대적이고 잘 정돈된 서체로 발전시키는 데 집중했어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6가지 굵기의 서체로 개발했고, 제작하는 데 반년 이상 걸린 것 같아요. 다른 네모꼴 고딕 서체와 다르게 HG꼬딕씨만이 가지는 특징은 단단한 구조와 현대적인 이응, 인간적인 시옷의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꼬딕씨라는 이름을 정할 때는 형용사와 명사를 붙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요. ‘상냥한’ ‘냉정한’ 등의 형용사를 붙이니 서체가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쓰이는 호칭 중 하나인 ‘씨’를 붙여봤죠. 이 초기의 아이디어가 발전해서 ‘키큰꼬딕씨’, ‘굴린꼬딕씨’ 등 관련 서체 패밀리 이름으로까지 확장됐어요.

Q. 한글 서체 디자인의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체를 제작할 때 먼저 일정 기간 시안 작업을 해요. 아이디어가 좋더라도 실행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빨리 접고, 다른 시안을 찾죠. 하나의 서체로 완성될 때까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어지는 시안이 나오면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심정으로 완성될 때까지 작업해요.

서체의 특징에 따라 과정은 다르지만, 대부분은 처음에 10자 내외의 씨글자를 섬세하게 그려보고, 이후 여러 문장을 만들며 50자, 100자, 200자로 확대해 나가요.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장들을 통해 다양한 모임의 글자 구조를 정하고 체계를 만들죠. 어색한 형태나 문제점도 찾아 수정합니다. 이때 많은 문장을 확인할수록 이후의 작업이 순조로워요. 이를 토대로 적게는 2,350자, 많게는 11,172자의 글자를 완성하고 이와 어울리는 영문자와 특수문자를 제작해요. 마지막으로 자간과 행간을 살피는 조판 테스트를 통해서 검수하고 정리하죠.

Q. 한글 서체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많이 고민하는 점은 ‘널리 쓰일 수 있는 서체인가’입니다. 서체는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양하고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요.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서체도 분명히 있죠. 저는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저는 하나의 서체를 제작할 때 온전히 그 서체에만 집중하는 편이며 여러 가지 작업을 함께 진행하지 않아요. 한 벌의 서체를 완성하는 동안 공통된 미적 감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죠.

Q. 대중들에게 널리 쓰이는 한글 서체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욕심을 줄여야 해요. 한 가지의 단순한 특징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서체 디자인은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특징 몇 가지를 모든 글자에 녹여내야 자연스러워지는데요. 결국 서체 디자인은 정교함의 마법이에요. 잘 정돈된 글자들이 하나의 서체로 모였을 때 놀랍게도 대중들은 좋은 서체라는 것을 알아내죠.

Q. 각종 매체에서 자신이 제작한 서체를 활용하는 것을 볼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합니다.

서체 ‘HG백야’가 사용된 방송 <백상예술대상> 화면 캡처가 사분할로 놓여있다. 왼쪽 위 사진은 붉은 땅 뒤에 타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 인기상’이 한가운데 적혀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전도연 주연의 영화 장면 캡처가 사용됐다. 남자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배우 전도연은 머리를 위로 올리고 빨간색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있다. 왼쪽 아래에는 뷰티인사이드 영화 한 장면이 캡처되어 있다. 그 옆엔 “‘최고의 사랑’ 부문” ‘두 번째 후보 뷰티인사이드’가 적혀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백상예술대상> 무대 장면이 캡처되어 있다. 뒤에 놓인 스크린에는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이 적혀있고 앞에는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은 이선균, 조진웅과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염정아 세 명의 배우가 서 있다. ▲ <백상예술대상>에서 사용된 ‘HG백야’
 
서체 ‘HG꼬딕씨’가 사용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포스터. 남색 배경에 모눈종이처럼 네모 칸이 나뉘어있다. 칸 안에 한 글자씩 쓰여 있으며 각 줄마다 하얀 글씨로 ‘내사랑에노련한사람이어딨나요’, ‘사랑해주신여러분고맙습니다저’, ‘랑멤버들이가을투어시작하기전’, ‘에조그만규모로나마사집의모든’, ‘노래를들려드리는단독공연을마’, ‘련하기로결심했어요갑자기결정’, ‘한거라날짜가이번주말이에요만’, ‘사제쳐두고광클하세요왜냐면사’, ‘람이많이안들어가는작은공연장’, ‘이거든요이렇게갑자깅ㄹ려주면’, ‘어떡하냐그날일있는데이런게’, ‘어딨냐하시는분들께는죄송해요그’, ‘나저나사집첫단공이네요기대돼’, ‘요공연날뵙겠습니다장기하드림’이라고 적혀있다. 이 중 ‘단독공연’과 ‘갑자기’만 굵게 처리되어 있다. 그 밑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적혀있고 ‘2016년 7월30일18시’, ‘홍대 스테이라운지’, ‘에매: 인터파크’가 적혀있다. ▲ ‘장기하와 얼굴들’
공연 포스터에 사용된 ‘HG꼬딕씨’

방안에서 만들어진 제 서체들이 실제로 바깥에 나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해요. <백상예술대상>에서는 HG백야가,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포스터에는 HG꼬딕씨가 사용됐는데요. 이처럼 제가 좋아하거나 관심 있게 보던 매체에서 제 서체가 사용된 것을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특히 HG꼬딕씨는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다채롭게 사용됐는데요. 요즘에는 영상 광고나 유튜브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 같아요. 같은 서체라도 업계마다 유행한 시기, 사용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서 재미있었어요. 각 미디어 성향에 맞게 사용하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고민 덕분이겠죠.

Q. 한글 서체를 디자인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두운 공간에 작은 틈으로 희미하게 빛이 들어온다. 그 위 천장에 ‘향기롭다’가 다국어 활자 숲 ‘인문명조’체로 뚫려있다. 그 틈으로 역시 빛이 들어와 벽면으로 희미하게 글자가 비친다.▲ 2019 타이포잔치-
다국어 활자 숲 ‘인문명조’
배리어블 폰트 ‘버섯’으로 적은 글자 버섯. 버섯 모양처럼 동그랗고 옆으로 약간 기운 형태로 적힌 글자 버섯이 나란히 적혀있다.▲ 2019 타이포잔치-
배리어블 폰트 ‘버섯’
서체 ‘산티아고’로 산티아고가 나란히 세 개 적혀있다. 그 뒤 배경으로 여러 유적지의 사진이 나란히 배열된 화면이 어둡게 처리되어 있다. 가운데 산티아고는 노란색과 연두색을 이용한 입체적인 모양이며, 뒤쪽 산티아고는 주황색으로 적혀있다. 맨 앞쪽의 산티아고는 파란색 테두리로만 적혀있다.▲ 2020 세계한국어대회-
50인 50꼴 ‘산티아고’

저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제 일상은 단순하게 아침에 일어나 방에 앉아 글씨를 그리는 것뿐이거든요.

다만 그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에 좋은 분들의 도움으로 규모 있는 전시회에 여러 번 제 작품을 보여드린 경험이 있어요. 특히 <타이포잔치> 같은 전시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행사인데요. 그곳에 제 이름이 들어간 적이 있어요. 그때 디자이너로서의 목표를 하나 이룬 느낌이었죠.

Q. 한글 서체와 영문 서체의 차이점과 한글 서체만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글 서체는 영문 서체보다 필요한 글자 수가 많은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업량의 차이가 있어서 덕분에 너무 힘듭니다. (웃음) 그래도 한자를 그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위안 삼아요.

디자인적인 차이라면 영문은 비교적 곡선적인 요소가 많고 한글은 직선적인 요소가 많아요. 펜글씨에서 발전한 영문과 붓글씨에서 발전한 한글은 유전자 자체가 달라서 영문 서체의 표현을 한글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색한 경우가 매우 많아요.

Q.현재 독립 서체 스튜디오 ‘한글씨’를 운영 중이십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기존 폰트 회사에서 약 5년을 근무한 뒤, 2013년에 독립해 1인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인 한글씨를 만들게 됐어요. 제 작업 성향을 판단했을 때, 혼자서 하나의 폰트를 제작하는 편이 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1인 서체 디자인 스튜디오의 길을 꿋꿋하게 가려고 해요. 물론 인생은 모르는 일이라 생각이 바뀔 수도 있지만요.

한글씨에서 제작중인 ‘HG시선’체. 서체를 만드는 프로그램 화면에 시선체로 ‘시선들’이 적혀있다. ‘시’는 테두리만 만들어져 있으며 ‘선들’은 검은색으로 채워져 있다. 그 옆에는 역시 서체를 만드는 프로그램 화면으로 수많은 글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 현재 제작 중인 ‘HG시선’ (2021년 출시 예정)

현재 저는 ‘시선들’이라는 서체 패밀리를 제작하고 있어요. 손글씨를 기반으로 한 산세리프 서체인데요. 한 개의 굵기가 마무리된 상태이고 5종의 서체로 구성된 패밀리로 제작할 계획이에요. 더불어 앞으로 계속 제가 만들고 싶은 서체를 만들면서 삶을 지키고 지속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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