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13호 2023.01.

전체메뉴 닫기
꽃무늬가 그려진 남색 원피스를 입은 레르미트 쥬디트가 손에 책을 펼쳐 든 채 자리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어깨까지 오는 금발이며, 살짝 미소 짓고 있다. 그녀 뒤로 책이 꽂힌 책꽂이들이 보인다.

반갑습니다 한글을 만나
한국 문학과 사랑에 빠지다
번역가 레르미트 쥬디트

한국 드라마에서 한글을 만난 순간, 레르미트 쥬디트는 한글의 매력에 이끌렸다.
그 이끌림은 그녀를 한국 문학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한글 덕분에 사랑하는 이와 만나게 됐다고 말하는 레르미트 쥬디트.
한글로부터 시작된 그녀의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프랑스에서 온 26살 레르미트 쥬디트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문학번역원 아카데미에서 불어권 정규 과정을 밟고 있고요. 지금까지 웹툰, 영상 자막을 번역했습니다. 번역원을 통해 문학 번역도 배우고 있어요.

Q

한국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한국 문학 작품은 무엇인가요?

A
꽃무늬가 그려진 남색 원피스를 입은 레르미트 쥬디트가 손에 책을 펼쳐 든 채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그녀 뒤로 책이 꽂힌 책꽂이들이 보인다.

프랑스에 있을 때 문헌정보학과에 다녔어요. 그래서 원래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었죠. 그런데 마침 한국에 관한 관심이 생겼고, 도서관에 가서 일단 한국 소설을 빌렸어요. 처음에 읽은 책은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 였어요. 조금 독특한 이야기라서 처음엔 놀랐다가 재밌어서 계속 읽었죠.

요즘은 장류진 작가님의 작품을 매우 좋아해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면서 재미도 있거든요. 최근에는 장르 문학도 읽었는데, 조예은 작가님의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Q

지금까지 어떤 작품을 번역하셨나요?

A

유튜브 영상 자막을 번역했어요.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 와서 1년 정도 지냈고 프랑스로 돌아가 한국학과를 다시 다니게 됐는데, 때마침 자막 번역과 관련한 메일을 받았어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자막 번역가를 찾고 있더라고요. 그땐 한국어 실력이 매우 부족한 것 같아서 지원하면서도 꽤 떨렸는데요. 다행히도 합격해서 1년 이상 자막 번역을 한 것 같아요. 주로 한국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자막을 입히는 작업을 했고 가끔은 한국어를 영어로, 프랑스어를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어요.

레르미트 쥬디트가 도서관 책꽂이 사이에 서 있다. 그녀는 검은 마스크를 착용했다. 그녀 양옆으로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보인다.



다음 번역일을 찾다가 미디어 번역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와 한 달 정도 일하게 됐는데, 그때 작업한 것이 교양 프로그램 <백반기행>이었어요. 이후에는 <나눠 먹는 로맨스> 등의 웹툰작품을 번역했어요.

지금은 번역원만 다니고 있는데요. 이곳에서는 보통 단편소설을 번역해요. 어떤 수업에서는 조별로 하고, 어떤 수업에서는 또 혼자 번역하기도 하죠. 제가 원하는 소설을 번역할 때도 있고요. 현대 문학뿐만 아니라 근대 문학도 번역해요.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처음 번역한 이서수 작가님의 「미조의 시대」이고요. 최근 수업에서 번역한 작품은 최은영 작가님의 『애쓰지 않아도』이고 제가 골라서 번역한 작품으로는 장류진 작가님의 『새벽의 방문자들』이 있어요.

Q

웹툰과 일반 줄글 번역의 차이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야 하고 문체에 집중해야 해요. 길이도 상관없죠. 하지만 웹툰은 짧게 써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한글로는 짧아도, 프랑스어로 적으면 매우 길어질 때가 많죠. 그럴 땐 비슷하지만 조금 더 짧은 말로 번역하거나, 그게 안 될 때는 문장에 들어있는 정보를 조금 생략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가 다양한데 프랑스어는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어서 곤란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땐 한국어의 의성어 혹은 의태어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저희가 직접 만들거나, 영어에서 빌려오기도 하죠.

Q

번역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해요. 그래서 근대 문학을 번역할 때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확인하려고 남편에게 물어보는데 남편은 IT 계열 쪽이라 문학과 거리가 좀 멀어서인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게 남편을 괴롭히는 느낌이었죠. (웃음) 결국 학교에 가서 확인해 보면 가끔은 제가 맞고 남편이 틀릴 때가 있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레르미트 쥬디트가 손에 책을 펼쳐 든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 뒤로는 책상과 책꽂이가 보인다.

Q

한국어와 한글을 끊임없이 접하실 텐데요. 한국어와 한글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한국어의 매력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라는 점이에요. 프랑스어와 비교해보면 한국어가 단어가 훨씬 더 많고 다양해요. 예를 들면 ‘서운하다’와 ‘섭섭하다’, ‘슬프다’와 ‘서글프다’ 이런 단어들은 비슷한 것 같아도 담긴 뜻이나 분위기가 묘하게 다르죠. 또 계속 변화하는 점도 매력적이에요. 신조어나 줄임말도 생기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한글은 표음문자잖아요. 그래서 친구들끼리 어떤 단어의 발음을 적어야 하면 한글로 써요. 바로 읽고 이해할 수 있어서 그게 정말 편하거든요. 그게 매력이에요.

Q

한글 및 한국어와 관련해 향후 활동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등록해 출판사들에 출판 제안서를 보내볼 예정이에요. 제가 원하는 작품을 번역해서요. 방송 자막 일도 재미있지만, 문학 번역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번역가님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한글을 처음 접하게 된 건 드라마에서였어요. 그때 당시 일본, 대만 드라마도 봤는데요. 한글이 한자나 가타카나보다 더 쉬워 보였죠. 모양도 매우 독특했고요. 자음, 모음을 붙여서 글자 만드는 것도 신기했어요. 이런 한글을 알아가다 보니 한국어에 관한 관심도 늘어났죠. 저는 한글을 만나서 한국어를 배우게 됐고, 한국에 왔고, 남편을 만나게 됐어요. 한글은 제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가교 같아요.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