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과 한글 이야기
해설사가 들려주는
독립운동과 한글 이야기
오늘날 우리말과 글의 기반을 마련한 한글학자 주시경
한힌샘, 주보따리, 이런 이름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이 이름들은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과 글을 뿌리내리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입니다.
주시경은 어릴 적 한문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말과 글을 쓴다면 쉽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그는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공부하며 서재필을 만났고, 이 인연으로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의 교보원(교정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독립신문』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순한글에 띄어쓰기를 사용한 신문이었습니다. 신문에 쓰는 한글의 규칙을 더 합리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주시경은 ‘국문동식회(國文同式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국어 연구를 해나갔습니다.
주시경은 국어 연구만이 아니라 교육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주보따리’는 교육에 필요한 자료를 보따리에 가득 싸서 분주하게 다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간호원 양성학교, 이화학당, 공옥학교, 서우학교, 오성학교, 명신여학교, 숙명여학교, 흥화학교, 기화학교, 중앙학교, 휘문의숙, 보성중학교, 융희학교, 배재학당 등 수많은 신식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국어강습소를 개설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1911년부터 주시경은 제자들과 함께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 『말모이』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정신이 담긴 말과 글을 바로 잡아 지키고, 더 나아가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모이’라는 제목에는 ‘말을 모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의미대로 주시경과 제자들은 전국의 우리말을 조사하고 그동안 연구한 문법 규칙에 따라 정리하여 원고를 집필하였습니다. 그러나 1914년 주시경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제자들도 흩어지며 『말모이 원고』는 출간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사전 편찬사업으로 이어져,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 『조선말 큰 사전』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비록 그는 떠났으나 그가 다듬은 한글은 그 이름과 함께 우리에게로 전해진 것입니다.
3·1운동에 직접 뛰어든 한글학자 이윤재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한뫼(한메) 이윤재(1888~1943)는 주시경과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주시경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기 위해 힘썼습니다.
이윤재는 대구 계성학교와 북경대 사학과에서 공부했으며, 마산 창신학교, 서울 경신학교,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배재고등보통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는 데 참여했고, 이를 보급하기 위해 한글 잡지를 만드는 곳마다 달려가서 교정을 도왔습니다.
조선어학회의 기관지 『한글』의 편집을 맡았고, 『조선말 큰 사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이윤재는 실제로 3.1운동에 직접 뛰어든 한글학자이기도 합니다.
평안북도 영변의 숭덕여학교 교사로 일하던 1919년 3월, 영변 읍내시장에서 독립선언서 40여 부를 배포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1년 6개월 동안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이윤재가 쓴 『한글공부』는 1933년 동아일보사에서 출간된 한글 교재입니다.
한글 자모뿐 아니라 단어, 속담, 시조, 생활 용어, 노래가 실려 있어 재밌게 한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일제강점기, 신문사를 중심으로 한글 보급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 교재로 『한글공부』가 사용되었습니다.
『한글공부』는 1932년 30여만 부 발행되어 전국 각지에 배부되었다고 합니다. 이윤재는 전국을 돌며 한글 강습회를 열고 직접 한글 맞춤법을 알렸습니다.
한글 운동에 헌신하던 선생은 안타깝게도, 일제의 탄압과 고문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2년,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일제가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들고 있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탄압 과정에서 가장 먼저 체포된 사람 중 한 명이 이윤재였습니다.
삼일운동의 이력 탓인지 일제의 고문은 그에게 한층 더 혹독했고, 결국 1943년 12월 8일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윤재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으며, 1998년에는 ‘12월의 독립운동가’(국가보훈처)로 선정되었고, 2013년에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독립운동가와 한글학자들이 우리 민족과 언어 독립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삼일절을 맞아 주시경, 이윤재 선생과 같은 인물들에게 감사하며, 우리 글자 한글의 소중함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