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중국 산둥박물관의 《청인의 임서》와 함께 국립한글박물관이 기획한 《명필을 꿈꾸다》를 소개하는 교류특별전입니다.
《명필을 꿈꾸다》는 김정희를 전후로 한 조선 후기 서예가들의 주요 임서작품과 왕실의 한글 임서 그리고 20세기 초 한글 따라쓰기 교본 등을 소개합니다.
《청인의 임서》는 청나라가 법첩法帖으로 명필의 글씨를 연마하고 연구하는 첩학帖學의 전성기에서 다시 고증학을 기반으로 비석 글씨를 연구하는 비학碑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았으며, 청나라 주요 서예가인 왕탁이 쓴 임서 작품 등 1급 유물에 해당하는 2점을 포함한 산둥박물관의 임서 작품 23건 30점이 전시됩니다.
청인의 임서

▲ 왕헌지의 「경조첩」을 왕탁이 따라 쓴 글씨, 226.0×48.5㎝

▲ 왕희지의 「상우첩」을 강여장이 따라 쓴 글씨, 168.0x56.0㎝

▲ 미불의 「기위태시첩」을 공계속이 따라 쓴 글씨, 64.0×58.5㎝

▲ 임칙서(林则徐)가 임모한 미불의 천마부(天馬賦)행서 4 병(四屏), 중국 산둥박물관 소장
명필을 꿈꾸다
1부. 17~18세기 서예가들의 임서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전란 이전의 문화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중국의 새로운 서법 문화를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조선 전기에 유행한 조맹부의 송설체松雪體와 그 근원이 되는 왕희지王羲之 서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 조맹부의 「완화유수첩」을 김우형이 따라 쓴 글씨, 1687년, 53.5×36.4㎝,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93호, 수원박물관

▲ 회소의 「자서첩」 일부를 박태유가 따라 쓴 글씨, 17세기, 29.0×18.0㎝, 보물 제1675호, 수원박물관
2부. 19~20세기 서예가들의 임서
17세기 이래 조선은 청나라의 금석학 성과를 받아들였다. 법첩法帖을중심으로 명필의 글씨를 연마하고 연구하는 첩학帖學과 함께 비석의 글씨를 연마하고 연구하는 비학碑學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김정희는 금석학 연구를 통해 전서나 예서 등 옛 서체를 수용하여 조선에 유행시켰다. 추사체秋史體를 창안하여 당대의 서단을 주도하였다. 20세기 초의 서예는 전통 서풍과 함께 청대 서예가, 해외 유학파들에 의해 청나라와 일본의 서풍이 유입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 전서를 생각하며 한나라의 예서를 쓴 김정희 글씨(篆意漢隷), 1853년, 102.0×30.5㎝, 간송미술관

▲ 한나라 전서를 모아 쓴 김정희 글씨(漢篆殘字), 1853년, 129.0×25.0㎝, 간송미술관

▲ 「곽유도비」를 김정희가 따라 쓴 글씨, 1853년, 각 205.0×48.0㎝, 영남대학교 박물관
3부. 조선 왕실의 임서 문화와 근현대 한글 서예 교육
조선후기 왕실 여성들은 이미 한글을 통한 문자 생활이 보편화 되었다. 왕실 여성들을 위해 비빈의 글씨 쓰기를 전문적으로 돕는 서사상궁書寫尙宮이 존재하였다. 근현대 교육과정이 수립되면서 교과서에는 궁체를 중심으로 한글 서예를 다루었다.

▲ 서사 궁인의 글씨 연습 자료, 19~20세기, 77.5×47.7㎝

▲ 미군정기 어린이 글씨 연습 교본, 1946년, 24.3×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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