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許筠, 1569~1618)은 조선 중기의 인물로, 현실의 부조리와 사회의 불평등을 비판하면서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아갔던 개혁가이다. 허균은 조정에서 자주 탄핵을 당했으며 역적모의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을 당해 죽는 등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소설 《홍길동전》은 조선 후기에 한글 소설로 널리 읽히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글 소설 《홍길동전》은 적서 차별, 정치 관료들의 부정 등 사회 부조리에 맞서 투쟁하는 주인공 홍길동의 영웅적인 모습을 다루었다. 허균은 엄청난 독서가로 고전부터 동시대에 나온 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그가 책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는 힘이었다.
최세진(崔世珍, 1468~1542)은 역관의 집안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중국어를 공부하고 이문(吏文, 중국과의 외교문서 작성에 사용된 특수문체 서식)을 익혔다. 그는 중인 신분임에도 뛰어난 능력으로 문과에 합격하여 문신의 길에 들어섰으며, 통번역가로서 중국과의 외교에도 이바지하여 양반들도 오르기 힘든 종2품의 벼슬까지 올랐다. 최세진은 어린이들을 위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편찬했는데, ‘기역, 니은, 디귿’ 등의 오늘날 한글 자음과 모음의 이름이나 순서가 이 책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또한 중국어 회화 학습 교재인 ≪노걸대≫, ≪박통사≫ 등을 한글로 번역하여 편찬했다. 그는 당시 지식사회의 근본을 이루었던 한자나 중국어의 학습을 위한 교재를 한글로 펴내 한글의 대중화와 보편화에 기여했다.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평생을 바친 한글학자이다. 1896년 최초의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만드는 일을 도와 대중들을 깨우치게 하고, 1908년 국어연구학회를 조직하여 한글 연구의 기초를 마련했다. 1911년부터는 첫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 집필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 글자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어 퍼뜨리며 한글 보급에 힘썼다. 1914년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윤동주(尹東柱, 1917~1945)는 문학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꾼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자,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 중 한 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쓴 ‘시’ 때문이다. 윤동주의 시는 일상에 많이 쓰이는 시어로 우리말과 글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섬세한 내면의 감정과 솔직한 고백을 담아냈다. 그는 열망하던 시집 발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1945년 2월 16일 일본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2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48년에야 지인들의 도움으로 단 하나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발간되어 세상에 공개되었고, 윤동주와 그의 시는 세대를 거쳐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은 오늘날과 달리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시절에 아동의 권리를 세우고 그들을 교육하는 데 앞장선 아동 운동가이자 문학가다. 1923년 방정환의 주도하에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 《어린이》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어린이》는 당시 십만 명이 넘는 독자를 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가 발행되었던 때는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시기였지만, 그는 한글의 역사와 맞춤법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와 <성냥팔이 소녀>, <백설공주> 등과 같은 외국 동화를 쉽고 재미있게 한글로 번안한 작품들을 실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아동 운동에 평생을 바친 방정환은 1931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어린이날’은 지금까지도 아동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헐버트(H.B. Hulbert, 1863~1949)는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된 미국 출신의 외국인이었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했다. 1886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한국에 와서 학생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쳤으며, 고종황제의 특사로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그는 한국의 훌륭한 문화와 역사,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편 1889년 한글로 쓴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하며 한국인들에게 세계의 지리 지식과 문화를 알렸다. 1907년 그는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광복 이후 1949년 그는 국빈으로 초청되어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한국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큰 감명을 주고 있다.
박두성(朴斗星, 1888~1963)은 평생 시각장애인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해 헌신한 교육자이다. 1913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기관인 조선총독부 내 제생원 맹아부에 부임한 이후 시각장애인 교육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이 일본어 점자책으로 공부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1926년 시각장애인들이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한글로 된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그는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훈민정음’을 만든 것처럼, 시각장애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훈맹정음’을 만든 장애인 교육의 선각자로서 권학 정신, 생활 자립을 위한 교육 강화 등을 강조하여 우리나라 시각장애 교육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병우(公炳禹, 1906~1995)는 타자기와 컴퓨터 등에서 한글을 빠르고 간편하게 입·출력할 수 있는 세벌식 체계를 구현하기 위해 매진한 한글 기계화의 선구자이다. 공병우의 원래 직업은 안과 의사였으나 한글학자 이극로를 만난 후로 한글의 중요성에 눈을 떠 한글을 초성자, 모음자, 받침자로 분류한 세벌식 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타자기 등의 기기에 적용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49년 그는 한글을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세벌식 타자기를 발명하여 우리나라와 미국의 특허를 받았다. 1980년에는 최초로 세벌식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했으며, 1988년 한글문화원을 설립하여 젊은 프로그래머의 활동을 지원하고 남북한 자판 통일 문제도 연구했다. 그는 한글 기계화를 뿌리내리고, 한글의 과학성과 실용성을 컴퓨터에서 구현하는 데에도 앞장선 선각자였다.
최정호(崔正浩, 1916~1988)는 1세대 한글 글꼴 디자이너로 한평생 한글 글꼴 연구에 몰두한 장인이다. 그는 오늘날 쓰이는 디지털 한글 글꼴에 큰 영향을 끼친 분으로, 명조체, 고딕체 등 30여 종의 한글 글꼴의 원형을 만들었다. 1957년 그가 만든 첫 원도인 동아출판사체를 시작으로 일본에서 도입된 사진식자 방식의 한글 원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글 글꼴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가 제작한 글꼴은 높은 가독성과 뛰어난 완성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88년 그는 마지막 원도인 최정호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평생 애쓰고 노력한 결과물들은 한글 글꼴 디자인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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