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4. 제 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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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세상을 번역하는 남자’ 영상·영화 번역가 황석희

영화 <데드풀>, <웜 바디스>, 최근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등
다양한 장르의 외화로 관객을 만나며 영화 자막 계의 유명인사가 된 인물이 있다.
오늘의 ‘반갑습니다’가 초대한 황석희 번역가가 그 주인공이다.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영화의 매력을 극대화 시켜주며
문화와 문화, 언어와 글, 스크린과 관객을 잇는 번역가 황석희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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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인터뷰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예방 차원에서 서면으로 진행하였음을 안내드립니다.

Q.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영화 번역하는 황석희입니다. 얼마 전 <한글의 큰 스승> 특별전 때 영상으로 인사드리고 처음이네요. 반갑습니다.

하얀 상의를 입은 황석희 번역가가 화면을 응시하며 무언가 말하고 있다.
▲ 황석희 번역가가 조선시대의 통역가이자 번역가였던 최세진 역관을 소개하는 영상
Q.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책과 뮤지컬, 뮤직비디오의 가사도 번역하고 있지만 주로 하는 일은 영화 번역인데요. 영화 번역은 극장에서 관객들이 읽을 자막을 쓰는 일입니다. 외국 배우들의 대사를 한글로 번역해서 자막으로 쓰는 거죠. 영화 번역가는 영화 뒤에 있어서 잘 안 보이는 존재입니다. 요즘은 번역 이슈들이 있어서 영화 번역가의 존재가 전보다 부각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보통은 공기와 같은 존재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 문화 사이에 다리를 놓는 역할이라고 보시면 될 거예요.

제가 번역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부터 “옮김 황석희”라고 적힌 책이 한 권 갖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 게 시작이었습니다. 온갖 문서들을 다 번역하다가 우연히 영상 번역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게 직업이 돼 버린 거죠.

Q.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영화를 번역해오셨습니다. 번역 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연출자의 의도예요. 연출자와 마주 앉아 모든 장면의 설명을 듣는다거나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점쟁이가 아니라면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확한 의도라기보다 최선의 추리로 짐작한 연출자의 의도가 되겠죠. 이 대사에서 굳이 왜 뻔한 단어를 쓰지 않고 특이한 단어나 문장 구조를 택했나, 왜 대사와 제스처가 일치하지 않나, 이 연출자는 평소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어떤 작품들을 만들었고 어떤 주제를 중시하나. 이런 것들을 참고하고 고민해서 번역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민 없이 문장만 번역해서는 온전한 관람 경험을 제공할 수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Q. 황 번역가님이 번역하신 영화 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영화 <와일드>의 스크린샷. 중년의 여성이 갈색 말 위에 올라타 있으며, 다른 젊은 여성은 말의 고삐를 잡아 이끌고 있다.

한 여성이 침낭까지 둘러맨 여행용 배낭을 짊어지고 등산 스틱을 손에 쥔 채 강물을 건너고 있다.

▲ 출처: 영화 <와일드>(2015 개봉)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 <와일드> 엔딩을 보면 “흘러가도록 둔 인생은 얼마나 야생적이었던가”가 라는 문구가 나오는데요. 이 작품은 절망의 끝에서 커다란 배낭 하나 짊어지고 무작정 길을 떠난 여인이 이야기로, 인생이 너무 고단해서 떠난 길에서 그런 깨달음을 얻는데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가장 처음 작업한 ‘21세기 폭스’ 타이틀이기도 하고 마음이 지칠 때 가장 힘이 되는 문구이기도 해요. 당시 이제 막 개봉관 번역가로 커리어를 하나둘 간신히 쌓던 시기라 많이 초조하고 지쳤었는데 이 문구가 그때마다 위안이 됐어요. 이 글을 보는 여러분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때인데, 함께 힘을 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