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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기증

홈 > 소장 자료 > 기증/구입 > 자료 기증

기증자
이봉원
기증일자
2011-03-07
수량(점)
45
대표자료
한글 전용 표어
파일첨부

 


자료 설명

1967년 서울대학교 국어운동학생회가 한글날 521돌 기념 한글전용과 국어정화를 주제로 모집한 표어 당선작.
한글 전용을 강조하는 표어가 글자색만 다르게 3장의 내용으로 구성.
1967년 10월 9일 서울시민회관(現세종문화회관)에서 시상식을 갖고 표어 57,000장을 전국에 배포하였고 주로 시내버스에 부착.

전문 정보

 이봉원 기증 자료 중에서 국어운동 학생회의 활동과 관련되는 자료는 요람 1부를 비롯하여 회보 2권, 「고운 이름 자랑하기 심사보고서」 3부 등 모두 23건이다. 또 한말글 활동과 관련하여 ‘한말글 이름의 날 선포식’과 관련된 자료집과 사진이 담긴 CD 1개, 《한말글》 잡지 3권 등 모두 6건이다. 그밖에 한글학회 창립 100돌 기념으로 제작된 CD 1개, 한글 기록 영화 CD 1개, 한글날 기념 비디오테이프 2개가 있다. 이들 자료는 1960년대 이후부터 있었던 한글 전용 운동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국어운동 학생회는 1967년 3월 16일에 서울대학교 문리대학에서 국어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학생 15명이 모여 창립되었다. 국어운동 학생회는 우리말을 바르고 쉽고 깨끗하게 그리고 풍부하고 너르게 펴는 국어운동을 위해 한글 전용 운동을 펼쳤다. 이봉원이 기증한 대부분의 자료는 당시 국어운동 학생회가 활동한 결과물이다. (경북대학교 교수 백두현)

기증 배경

기증자 이봉원은 1966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배우던 학술용어들이 대학에 오자 한자어로 바뀐 것에 의구심을 느낀 것이 계기가 되어 국어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다. 한자가 아닌 한글말, 즉 한 글과 우리말을 주로 사용하자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조직한 국어운동모임은 전국 적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한말글로 지은 이름을 선별하여 시상하는 것이 크게 관심을 얻어 한말글 이름을 짓는 것이 대국민 유행으로 번져 나갈 정도였으니, 당시의 영향력은 꽤 지대하였다.
(이봉원)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나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지만,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되어 있었고 학술용어도 우리말 언어와 한자 언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예를 들면 ‘백혈구’와 ‘적혈구’를 ‘흰 핏돌’과 ‘붉은 핏돌’이라고 우리말로도 배웠어요. ‘삼각형’을 ‘세모꼴’이라고 배우기도 하고요. ‘엽록소’를 ‘잎파랑이’라고도 배우고요. 그렇게 좋은 우리말로도 배웠는데 대학교에 들어오니까 그때 갑자기 문교부에서 한자용어로 통일해 버렸어요. 쉬운 우리말 용어가 있었는데 갑자기 한자용어로 통일된 거예요. ‘세모꼴’은 ‘삼각형’, ‘잎파랑이’는 ‘엽록소’, ‘흰 핏돌’은 ‘백혈구’, 이렇게 어려운 말로 통일된 거예요. 어린 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광복 이후에 한글교육을 받은 한글세대인데, 그런 한자용어가 좋게 들리지 않잖아요. 그래서 우리말 용어를 쓰고 우리말을 쓰고 한글을 사랑하자는 운동을 학생들 상대로 학교 안에서 펼쳐보자고 생각했어요. 나아가서 국민을 상대로 운동을 해 보자고 해서 ‘국어운동 학생회’라는 교내 동아리를 1967년 3월에 만들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 학생도 아닌 그가 국어운동을 하기 위해 도움을 받고자 무작정 찾아간 곳은 외솔 최현배가 회장으로 있던 한글학회였다. 다짜고짜 찾아온 그에게 최현배는 그의 학교 교수인 허웅을 추천해 주었고, 이렇게 그와 허웅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허웅은 ‘국어 운동 학생회’를 조직함에 있어 지도교수로 역할을 다하며 한글전용론자로서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지도교수로 허웅을 모시고 나니, 학생을 모으는 것이 관건이었다. 1학년 겨울방학부터 책을 읽고 연구하여 선언문을 만들어 낸 그는 가장 먼저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기 시작 하였다. 그리고 1967년 3월 16일, 서울대 문리대에서 창립대회를 열어 ‘국어운동 학생회’ 를 발족하였고, 문리대 외 주변 단과대학이 합류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마침 고려대에 다니던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 앞장서서 동참의사를 보이면서 고려대뿐 아니라 연세대와 동국대 등 총 17개 대학이 연합한 대규모 학생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후략)

- 기증자료집 『한글, 함께 걷다』(국립한글박물관, 2017) p.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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