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제60호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박물관에서 배우다

한글, 나무 이름을 담다

초록초록한 7월입니다. 이번 책사람은 <한글, 나무 이름을 담다>라는 주제로 나무와 한글 이야기를 전해주실 계명대학교 사학과 강판권 교수님입니다. 사학과 교수님이 나무에 대해 강의한다는 것이 생소하시다구요? 강판권 교수님은 쥐똥나무라는 별칭이 있으실 정도로 나무를 사랑하는 생태사학자입니다. 나무와 인문학적 지식을 더해 많은 책을 집필하셨고 그중에서도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은 한글도서관에서 매우 인기가 많은데요. 이번 책사람에서는 나무 이름과 한글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입니다.
강연 듣기에 앞서 우리말 이름을 가진 배롱나무를 소개합니다.

배롱나무는 한자 백일홍을 우리말로 바꾼 것입니다. 백일홍은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꽃인데요. 여름내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라는 의미를 담아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앞으로는 예쁜 우리말 이름인 배롱나무로 불러주세요~!

2명의 아이들이 간지럼 태우는 그림 A: 근데, 나무도 간지럼 타는 나무가 있는 거 알아? 
B: 정말? 어떤 나무인데? A: 배롱나무. 두 아이 마주보며 대화하는 그림(신기해하는 아이와 말하는 아이), 한 아이가 나뭇가지를 간질이는 그림 B: 진짜네~!  신기하다. 나무가 간지럼 타듯이 흔들리는 그림


 

배롱나무는 별명이 있는데요. 손톱으로 나무를 긁으면 모든 가지가 움직여 그 모습이 마치 간지럼을 타는 듯하다 해서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린답니다. 제주도에서 이 나무를 ‘저금 타는 낭’이라 부르는데 이 또한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사루스베리さるすべり’라 합니다.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는 뜻으로 나무껍질이 워낙 매끈해서 원숭이조차도 미끄러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배롱나무에 핀 배롱나무 꽃 ▲ 배롱나무 꽃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는 부산 부산진에 있는 팔백 살 정도 된 배롱나무(천연기념물 제168호)입니다. 대구시 동구 신숭겸 장군 유적지의 배롱나무는 그 다음으로 오래된 나무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을 위해 목숨 바친 신숭겸 장군 유적지 안에 사백 살쯤 된 배롱나무가 다섯 그루나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배롱나무는 충심을 뜻하여 무덤가나 사당 근처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합니다.

예부터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너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당나라 현종은 배롱나무를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유명한데요. 중국에서는 배롱나무를 붉은 배롱나무를 뜻하는 ‘자미화紫微花’로 즐겨 부릅니다. 현종은 자신이 업무를 보던 중서성에 배롱나무를 심고 황제에 오른 개원 원년(713년)에 중서성을 붉은 배롱나무 성을 뜻하는 ‘자미성’으로 고쳤을 정도로 배롱나무를 좋아했습니다.

배롱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나 시로 남긴 사람도 많은데요. 도종환 시인이 배롱나무에 대해 쓴 시 <배롱나무>를 소개하겠습니다.

 

배롱나무

도종환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 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참고 자료>

강판권, 『나무예찬』(지식프레임, 2017)
강판권, 『역사와 문화로 읽는 나무사전』(글항아리, 2010)

강판권 교수님과의 짧은 인터뷰

계명대학교 사학과 강판권 교수 ▲ 계명대학교 사학과 강판권 교수

Q 강판권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수님 별칭이 쥐똥나무라고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별칭이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데 공개적으로 별칭을 알리고 계신 점도 재미있습니다. 여러 나무 중에서 왜 쥐똥나무를 별칭으로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나무를 공부하는 초창기에 특별한 나무 별명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한 게 쥐똥나무였어요. 쥐똥나무는 크지 않기에 울타리로 많이 쓰이는 나무거든요. 향도 좋고요. 작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이 저의 모습이었으면 하는 생각에 별칭으로 정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개적으로 저의 나무 별칭을 알리는 이유는 일종의 캠페인 같은 거예요. 나무 이름을 하나씩 정해서 갖는 건 나무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Q 그럼 강연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도 별칭 하나씩 생각해 오라고 전달할까요?


A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무 이름을 하나씩 별칭으로 사용하면 그 나무에 대해서 자세히 관찰하게 되고 그 나무처럼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니 전 좋았어요. 혹시 당장 정하기 어렵다면 다양한 나무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기만의 나무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나무를 더 사랑하게 돼요.


Q 강연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실 예정인가요?


A 한반도에는 1,000종 이상의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나무의 이름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삶이 고스란히 숨어 있고요. ‘나무’라는 이름부터 한글입니다. 나무를 구성하는 뿌리,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등도 모두 한글이지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소나무도 한글 이름입니다. 식물 이름의 한글화 작업은 한글의 발달에 아주 중요합니다. 나무도감에 소개한 나무 중에서 한글 나무 이름이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식물 이름 한글화 작업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어요. 나무 이름의 한글화 작업이 왜 중요한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나무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고요? 18번째 책사람 강연 <한글, 나무 이름을 담다>를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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