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9. 제 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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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저장소 한글이름 운동에 일생을 바치다, 배우리

‘기록’의 역사적 가치와 범주가 확장되면서 구술 자료의 가치와 역할도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한글의 역사적인 시대를 함께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구술 기록으로 남기고,
다면적 구술 기록의 수집을 통해 사건을 총체적으로 보존하는 일은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 2015년도부터 한글문화인물 구술기록사업을 통해 구술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한박웃음은 디지털한글박물관에 보관된 구술 아카이브 자료를 요약해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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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리
  • 한국땅이름학회 회장
  •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원 부원장
  • 김슬옹
  • 2018.07.13.
  • 이름사랑 사무실(서울시 용산구)
  • 03:09:00
  • 김슬옹, 밝한샘, 이우형
  • 고대국어, 국어사, 국어연구회, 음운론, 전시연합대학, 중앙중학교, 한글, 향가, 향가 해독, 향가해독법연구, 후다, 훈민정음

#01 전쟁의 소용돌이 속 두려움을 문학으로 풀어내다

인터뷰에 응하는 배우리 회장. 체크무늬 베레모를 쓰고 큰 안경을 쓴 채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 포진지에서 그냥 ‘삐니지구’라고 하죠. 삐(B)이십구(29)라고 그래요. 그게. 그러니까 미군 비행기에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러면 그걸 쏘면 공포포, 포를 쏘는”

배우리(1938년 출생) 한국땅이름학회 회장은 한글이름 운동에 일생을 공헌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어수선했던 시기 유년기를 보냈는데,
문학 소년이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했다.
“그러니까 그 포진지에서 그냥 ‘삐니지구’라고 하죠. 삐(B)이십구(29)라고 그래요. 그게. 그러니까 미군 비행기에요.
지금 생각하니까. 그러면 그걸 쏘면 공포포, 포를 쏘는 그 포 소리를 들으면서 내가 산 그런 사람이란 말이에요.…(중략)…
내 이 어려운 이야기를 글로 써야 되겠다. 이게 몸에 베어버린 거예요.
외로우니까 글밖에 안 나와. 근데 그런 때에 나오는 글이야말로 진짜 글이에요.”

#02 이름운동의 바탕이 되어준 문학의 힘

회색 블라우저를 차려입은 인터뷰이가 배우리 회장을 바라보고, 배우리 회장은 손을 마주한 채 허공을 보며 말하고 있다. 
“그렇죠. 문학 분야이죠. 그러니깐 나는 아동문학가로 문학 중에서도 문학 중에서도 아동문학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글을 많이 냈죠. 그래서 <학원>이니 <새벗>이니,”

그는 글을 투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학의 거장들과 함께 한글문학에 대한 관심을 키우다가
첫 직장으로 출판사에 들어가게 됐고, 아동문학 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나는 아동문학가로 문학 중에서도 아동문학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니깐 나는 아동문학가로 문학 중에서도 문학 중에서도 아동문학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글을 많이 냈죠.
그래서 <학원>이니 <새벗>이니, 저 <소년세계>같은 이런 옛날 잡지에 내 글이 많이 들어가 있단 말이에요.…(중략)…
문학을 했기 때문에 한글이 좋은 거예요.”

#03 천 개가 넘는 한글이름 중 기억에 남는 이름

인터뷰이가 배우리 회장을 바라보고, 배우리 회장은 허공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다. 
“거기다가 ‘루’자를 전부 달면 ‘나루’, ‘두루’, ‘고루’예요. 그래 ‘강나루’, ‘강두루’, ‘강고루’ 얘들 이름을 지었는데 그 집이 굉장히 가난했어요. 그런데 가난했는데 이 엄마, 아버지가 그래도”

이후 학원의 국어선생 생활과 출판사 생활을 함께하던 배 회장은 ‘서울대학교 고운이름자랑하기대회’에
아들 배힘찬 씨가 당선된 것을 계기로 방송과 강연 활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한글이름펴기모임의 으뜸빛(회장)직을 수행하며 한글이름펴기운동에 매진했는데,
자신이 지어준 인상 깊은 한글이름을 소개했다.
“그래 또 지은 이름을 생각하면 엄청 많은데 그래도 그중에 ‘이것만큼은 내가 잊질 못하겠다.’…(중략)…
그 집은 강 씬데 ‘나루’, ‘두루’, ‘고루’ 요렇게 돼 있어요. 거기다가 ‘루’자를 전부 달면 ‘나루’, ‘두루’, ‘고루’예요.
그래 ‘강나루’, ‘강두루’, ‘강고루’ 얘들 이름을 지었는데 그 집이 굉장히 가난했어요.
그런데 가난했는데 이 엄마, 아버지가 그래도 열심히 키워가지고
하나는 신부가 되고 하나는 교수가 되고 하나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전부 출세를 했어요.”

#04 좋은 한글이름 짓는 방법은?

인터뷰이가 배우리 회장을 바라보고, 배우리 회장은 오른팔을 펼쳐보이며 말하고 있다. 
“어디에서 뽑는 게 아녜요. 사전에는 보람이라는 말이 딱 들어가 있어요. 그걸 뽑는 거지 그건 짓는 게 아니지. 시내라는 말이 있고, 아름이 아람이라는 말이 있어요.”

한글이름펴기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단순히 한글로 이름을 지어보자는 인식을 넘어서
독창적인 한글이름 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배 회장은 한글이름을 다양하게 짓는 좋은 방법에 대해 ‘말 만들기’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름이라는 것은 따는 게 아녜요. 그렇지요? 짓는 겁니다. 짓는 게 뭡니까? 만들어 낸다는 얘기죠.
어디에서 뽑는 게 아녜요. 사전에는 보람이라는 말이 딱 들어가 있어요. 그걸 뽑는 거지 그건 짓는 게 아니지.
시내라는 말이 있고, 아름이 아람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걸 갖다 이름에 붙이면 그건 이름이라기보다
그냥 취한 거죠. 이러지 말고 조금 우리가 국어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조어(造語)
이걸 많이 활용하라 이런 얘기지. 조금 바꿔라.”

#05 이름에 대한 관심이 지명으로, 한국땅이름학회 설립

인터뷰이가 배우리 회장을 바라보고, 배우리 회장은 양 주먹을 쥔 채 말하고 있다. 
“뭐 신문에 잡지에 또는 방송에 이런 사람들을 갖다가 전부 찾아낸 거예요.
근데 그걸 많이 찾아낸 사람이 누구냐 하며는 한글학회의 유중달 선생하고 정재도 선생님이에요.””

한글이름에 대한 관심은 땅이름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한국땅이름학회가 설립된 배경을 회고하였다.
“…그니까 1984년 11월이 우리 ‘땅이름학회’가 태동이 된 건데. 그것도 연락한 사람들도요.
그냥 각자각자 운동을 하다보면 살짝살짝 (얼굴을) 비추는 데가 있을 거 아녜요.
뭐 신문에 잡지에 또는 방송에 이런 사람들을 갖다가 전부 찾아낸 거예요.
근데 그걸 많이 찾아낸 사람이 누구냐 하며는 한글학회의 유중달 선생하고 정재도 선생님이에요.…(중략)…
그래서 찾다보니까 내 이름이 자연히 들어갔겠죠. 왜냐하면 방송에서 자꾸 이 땅이름 얘기를 하고 하니까 알아봤겠죠?
그래서 내 이름이 들어가서 그런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열 몇 명이 처음에 모인 거예요.”

#06 긴 세월 풀어온 한글운동, 보람과 아쉬움

인터뷰이가 배우리 회장을 바라보고, 배우리 회장은 바닥을 바라보고 오른팔을 뻗은 채 말하고 있다. 
“어떤 자료, 옛날 자료, 문헌을 토대로 해서 연구한 바탕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하는 데 불구하고 상대방이 그걸 ‘아닙니다.’ 해서 다른 걸로 이렇게 할 때 아주 그냥 안 좋은 거지요.”

이어 한글운동을 위해 보낸 긴 세월을 회고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기억과 아쉬웠던 기억을 손꼽아보았다.
“뭐 통틀어서 얘기를 하며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는 거지요. 그런 게 좋고요. 우선 어디 가서 강의를 딱 하잖아요.
그러면 강의가 딱 끝나면 누구든지 하나 다가오고 그래요. 그러면 그 분은 나를 좋애해서 오는 건 틀림없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막 강의 열심히 들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이러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하지요.…(중략)…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얘기는 나는 근거 없이 얘기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어떤 자료, 옛날 자료, 문헌을 토대로 해서 연구한 바탕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를 하는 데 불구하고
상대방이 그걸 ‘아닙니다.’ 해서 다른 걸로 이렇게 할 때 아주 그냥 안 좋은 거지요.”

#07 한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져주길

인터뷰이가 배우리 회장을 바라보고, 배우리 회장은 바닥을 바라보고 양 팔을 모으며 말하고 있다. 
“나는 너무 고마운 일이고요. 앞으로 이러한 내 자료를 통해서라도 그래도 내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우리 후세 사람들이 한글에 대한 그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가졌으면 하는 거. 그게 저의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배우리 회장은 마지막으로 한글이름의 가치에 대해 정리하고,
한글에 대한 그만의 소박한 바람을 정리하며 구술을 마무리했다.
“저는 이제요 앞으로는 한글이름이 언제고 다시 부활할 거라고 봐요. 네, 이게 이대로는 아닐 거거든요.
이게 좀. 한자가 사실 우리말에 딱 맞는 게 아니잖아요. 사실은 우리말에 맞는 글로 이름을 짖는 게 맞는 거죠.…(중략)…
그래도 내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우리 후세 사람들이 한글에 대한 그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가졌으면 하는 거.
그게 저의 바람입니다.”

한글상호, 한글이름, 한글지명 등 한글이름 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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