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4호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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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빛이 감도는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엄지인 아나운서가 서 있다. 엄 아나운서는 검은색 원피스에 하얀색 정장 재킷을 입고 있으며,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보라색 빛이 감도는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엄지인 아나운서가 서 있다. 엄 아나운서는 검은색 원피스에 하얀색 정장 재킷을 입고 있으며, 팔짱을 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반갑습니다 “한글은 내 삶을
바꿔놓은 인생의 동반자”
아나운서 엄지인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우리말 실력을 겨루는
KBS 1TV <우리말 겨루기>의 최장수 진행자로서 활약해온 엄지인 아나운서.
바른말 사용하기의 선두주자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그가
약 12년간 함께 해온 프로그램을 떠나게 되었다.
쉴 틈 없이 달려온 방송 생활을 뒤로 한 채 잠시 쉬어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지만,
한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변함없이 굳건하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노란빛이 도는 풀숲을 배경으로 엄지인 아나운서가 서 있다. 그녀는 하얀색 원피스에 하늘색 정장 재킷을 입고 있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나운서 엄지인입니다. 저는 한글박물관과 인연이 굉장히 깊어요. 박물관 개관식을 할 때, 제가 사회를 봤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새로 개편한 상설전시장의 해설도 제가 녹음했어요. 그래서인지 항상 가족 같은 기분이 드네요.

KBS 1TV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에서 오랜 기간 사회자로 활약하셨습니다. 긴 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해오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15년째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고, 그중 12년 동안 <우리말 겨루기> 를 진행해왔는데요.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프로그램이었어요. 초반 6개월 동안은 방송 녹화 전날 잠도 못 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왜냐하면, 저는 아나운서이고, 프로그램은 ‘우리말’ 실력을 겨루는 내용에 상금까지 걸려있어서 말실수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늘 신경이 곤두서있었고 힘들었죠.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제가 성장한 것 같아요. 결혼 전부터 시작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제 인생의 3분의 1을 우리말 겨루기와 함께했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하는 것도 한결 익숙해지고 출연자를 대하는 것도 더 편해졌어요.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어느샌가 ‘오늘은 이런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됐죠. 그래서 <우리말 겨루기>는 저한테 의미가 커요.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됐으니깐요.

주방처럼 꾸며진 스튜디오에 엄지인 아나운서가 서 있다. 그녀는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었으며 남색의 줄무늬 반팔 블라우스를 착용하고 있다. 엄 아나운서 뒤로는 각종 식재료들이 놓인 선반이 보인다.

방송하는 동안 참 많은 분을 만났어요. 최근에 출연한 한 참가자는 중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이 될 때마다 도전했어요. 제가 그 친구의 성장을 지켜본 셈인데 대견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더라고요.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한 번 도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길게 갖고 도전하세요. 십 년 전에 도전했다가 다시 도전하는 분도 있고요. 어떤 분들은 저더러 몇 년 뒤에 다시 보자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방송에서 하차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도전자분들께 말씀을 못 드린 게 죄송했죠.

지난 900회 방송을 마지막으로 <우리말 겨루기>에서 하차하셨습니다. 하차 소감이 궁금합니다.

엄지인 아나운서가 <우리말 겨루기>에서 받은 감사패이다. 감사패는 우리말 겨루기 제목과 함께 지난 12년 동안 우리말 겨루기의 얼굴이 되어 진행을 맡아온 엄지인 아나운서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 적혀있다.

▲ 엄지인 아나운서가 받은 <우리말 겨루기> 감사패
(출처: 엄지인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약 12년 동안 <우리말 겨루기>를 진행해온지라 저에게 아나운서는 곧 방송이고 방송은 곧 <우리말 겨루기>였어요. 그걸 내려놓으려고 하니 생각이 매우 많아졌죠. 저는 애가 둘인데, 12년 동안 육아 휴직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우리말 겨루기> 때문에요. 그만큼 제게 의미가 컸던 방송이어서 놓기 쉽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점점 커가다 보니 ‘언젠간 엄마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작년부터 고민하다가 큰 결심을 하고 이렇게 내려놓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 꿈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했으니, 제 꿈 때문에 아이에게 소홀했던 부분을 열심히 채워주자 하는 마음이었네요.

나날이 변화하는 대중문화 속에서 우리말글 문화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방송하시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에는 부모님 세대 어르신들이 많이 출연하셨어요. 특히 어머니들, 주부들이 많았죠. 그런데 최근에는 젊은 친구들의 굉장히 많이 출연하고 있어요. 어떤 날은 출연진이 모두 20대인 날도 있었죠. 이렇게 젊은 친구들이 우리말에 관심을 두게 된 원인으로는 누리소통망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누리소통망에 글을 많이 쓰잖아요. 그러다 보니 글쓰기나 맞춤법에 대해 고민을 해보는 것 같아요. 물론 누리소통망에서 더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그래서 누리소통망을 통해 발전하는 대중문화는 우리말에 대해서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방송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는데요. 최근 국외에 있는 친구들이 자꾸 저에게 전화해 우리말의 어감에 대해 질문을 해요.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국외에서 우리 말글을 배우는 분들이 매우 많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말의 위상이 달라진 거죠. ‘K-문화’ 혹은 ‘한류’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그 문화의 핵심은 한글이잖아요. 다 우리말과 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니까요. 한글 역시 이제는 외국인이 관심을 두고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가 됐는데, 국내에서는 K-팝(Pop)이나 K-드라마(Drama) 등에 비해 관심이 아직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2017년 우리말과 관련된 도서 <안녕? 나의 한글 맞춤법>을 출판하셨습니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서 <안녕? 나의 한글 맞춤법> 표지이다. 흰색 배경에 하단에는 원고지가 그려져 있다. 원고지 위에는 화분, 머그컵, 종이배 등이 놓여있다. 책 왼편에는 책 제목 ‘안녕? 나의 한글 맞춤법’이 적혀있다. 제목 위에는 전등이 그려져 있다.

▲ 도서 <안녕? 나의 한글 맞춤법>
(출처: 엄지인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우리말 겨루기>를 진행하는 동안 맞춤법 관련해서 책을 한번 꼭 써보고 싶었어요.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고, 편하게 보는 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고요. 또 누리소통망 같은 곳에서 무분별하게 한글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맞춤법을 정리할 수 있는 책을 내보고 싶었죠.

책을 쓰는 동안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사실 저는 매번 <우리말 겨루기> 방송을 녹화하기 전에 그 회차에 나오는 문제를 한 번씩 풀어보는데요. 책을 쓰기 전에는 달인 문제의 답을 못 맞힌 적이 꽤 있었는데, 책을 쓰고 나서는 웬만하면 달인 문제는 다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웃음)

우리말과 한글문화 전파에 힘쓰신 것을 인정받아 ‘한글사랑도시 세종 홍보대사’로 위촉되셨습니다. 이외에도 한글과 관련해 앞으로의 활동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년 세종시에서 진행한 한글날 행사에 참여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세종시를 직접 방문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너무나 한글 친화적인 곳이었거든요. 마을 이름이 순우리말로 이뤄져 있는 데다가 세종대왕 및 한글에 관련된 이름이 무척 많았거든요. 한글부서도 따로 있고요. 이런 부분을 더 많은 분이 아셨으면 해요.

그리고 작년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사 과정을 마쳤어요. 자격증까지 취득하고 나면 국외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경험도 하고 싶어요.

올바른 한글문화를 대중들 사이에서 더욱 널리 확산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한글을 아끼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글을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나라도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써야겠다’라고 생각했으면 해요. 그런 마음가짐만 있어도 한글을 사용하는 태도가 굉장히 달라지더라고요.

한글문화 전파를 위해 이처럼 꾸준히 다채롭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엄지인 아나운서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엄지인 아나운서가 2019년 한글날 경축식 행사 진행 대본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 그녀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으며 한 손에 대본을 든 채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

▲ 2019년 한글날 경축식 행사 진행을 맡은
엄지인 아나운서
(출처: 엄지인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그냥 하고 싶었어요. 제가 한글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 (웃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사실 방송은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처음부터 제가 <우리말 겨루기> 진행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우연히 다가온 이 인연이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한글도 마찬가지죠. 한글은 제 삶을 바꿔놓은 친구랍니다.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