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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2019. 8. 제 73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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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품 이야기 / 한글 편지로 만나는 서사 상궁의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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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장품 이야기

    한글 편지로 만나는 서사 상궁의 글씨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여러 시대의 한글 편지 중에는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 임금의 셋째 딸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편지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덕온공주의 양아들인 윤용구와 그 부인 연안 김씨가 왕가의 친척으로서 왕실과 많은 한글 편지를 주고받은 것인데, 특히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편지에는 종이의 남은 공간에 덕온공주의 손녀 윤백영이 적어 넣은 기록이 있어 편지의 정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기록에는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이나 기록된 때뿐 아니라, 편지를 대신 적은 서사 상궁이 누구인지도 밝혀져 있다.

    당대 최고의 한글 명필, 서기 이씨

    서사 상궁은 왕실 여성들 곁에서 일한 전문 필사자이다. 이들은 언문 교지와 같은 공문서뿐 아니라, 왕족들의 편지도 대필하는 서기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 편지에서는 한글 명필로 이름난 두 사람의 궁인, ‘서기 이씨’와 ‘서희순 상궁’이 눈에 띈다.

    윤백영은 서기 이씨가 대필한 편지의 여백에 적은 기록에서 서기 이씨를 가리켜 “국문이 시작된 후 제일 가는 명필”, “오백년의 제일 가는 국문 명필”이라 하였다.

    신정왕후 조씨가 윤용구에게 보낸 편지의 첫 장이 우측에 가로로 펼쳐져 있으며, 좌측에는 두 번째 장이 가로로 펼쳐져 있다.▲ 신정왕후 조씨가 윤용구에게 보낸 편지

    공손히 그리워하던 중 하서 받아 그동안 기후 지극히 편안하시다는 안부 알고 매우 기쁩니다. 여기는 문안과 침수며 기거하는 것이 편안하고 잡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탕제는 그동안 이것저것 조제하여 많이 드시다가 이전에 드시던 이중탕은 수일째 저녁에 드시고 공심탕제도 이전과 같이 드십니다.

    편지의 여백에 적힌 윤백영의 기록에 “서기 이씨의 글씨”라는 기록과 “국문이 시작된 후 제일 가는 명필”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 편지에 종이를 붙여 적어 넣은 설명에는 서기 이씨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신정황후의 지밀내인 이씨가 글씨의 필력이 강하고 글자 모양이 절묘하였다. 이씨가 궁에서 나와 시집을 갔으나 살지 못하고 친정에 있으니 국문(한글)이 생긴 후 제일 가는 명필이라 아까워서 다시 궁으로 들였다. 시집 갔던 사람을 다시 내인이라 할 수 없어 이름을 ‘서기’라 하고 황후의 봉서와 큰방상궁 대서를 하게 하며 내인과 같이 월급을 주고 처우하였다.

    출궁한 궁인이 다시 궁으로 돌아와 ‘서기’로서 대접을 받았다는 독특한 이력으로, 그의 글씨가 대신 할 수 있는 자가 없을 만큼 매우 빼어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편지의 유려한 진흘림은 특히 손꼽히는 명필로 남아 지금도 후학들의 입문 자료가 되고 있다.

    신정왕후 조씨가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보낸 답서 편지가 가로로 펼쳐져 있고, 우측에는 당시 사용된 봉투가 놓여 있다.▲ 신정왕후 조씨가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보낸 답서 편지

    봉서 보고 맑은 가을에 잘 지내시는 바 알고 든든하고 기쁘다.
    임금께서는 주무시는 것과 모든 것이 편안하시고, 오늘은 생신이시니 매우 기쁘고 즐겁다. 동궁에서도 편안하고 조용하니 몹시 다행이며, 나도 잘 지낸다.

    두 번째 사진의 편지 역시 서기 이씨가 대필한 편지이다. 여백에 적힌 바에 따르면 신정왕후가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답장으로 보낸 편지이다. 첫 번째 편지와는 사뭇 다른 인상을 주는 이 편지는, 율동감이 느껴지면서도 비교적 단정한 반흘림으로 쓰였다.

    사대부 고관과 글월로 교제하던 글솜씨, 서희순 상궁

    또 한 명의 상궁으로 서희순 상궁이 있다. 윤백영은 편지 여백의 기록에 서희순 상궁을 ‘고종황제 덕수궁 큰방 제주상궁’이라 소개했다. ‘큰방상궁’, ‘제조상궁’은 상궁 가운데 가장 지체가 높은 상궁으로서, 내전의 일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였다.

    서희순 상궁이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가로로 펼쳐져 있고, 우측에는 당시 사용된 봉투가 놓여 있다.▲ 서희순 상궁이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보낸 편지

    세 번째 사진의 편지는 서희순 상궁이 윤용구의 부인 연안 김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왕족의 편지를 상궁이 대신 쓴 것이 아니고 상궁이 발신자가 되어 직접 쓴 편지인 점이 재미있다. 이 편지는 지금 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편지의 실물과 현대어 풀이를 만나볼 수 있다.

    서희순 상궁이 윤용구에게 보낸 편지가 가로로 펼쳐져 있다.▲ 서희순 상궁이 윤용구에게 보낸 편지

    문안 여쭙니다. 어제 보내신 편지 받아보고 기후 편안하신 문안 알고 든든하여 못내 반갑지 그지없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 요사이 드시고 주무시는 모든 일 편안하신지 대감 댁 모든 일 안녕하시고 영감께서도 편안하신지 멀리서 정성껏 그리는 마음 놓지 못합니다. (후략)

    네 번째 사진의 편지는 서희순 상궁이 윤용구에게 보낸 답서 편지이다. 이 역시 대필이 아닌 직접 보낸 편지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 서희순 상궁은 영의정까지 지낸 고관인 윤용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의남매까지 맺어 친밀한 사이였다 한다. 왕족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지밀 나인의 학식과 글솜씨가 사대부 고관과 글월로 교제를 통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엄격한 훈련과 연습 통해 완성한 아름다운 글씨

    당시 상궁들이 글씨 연습을 위해 사용한 연습 자료. 넓은 종이 위에 글자들이 빈 곳을 찾지 못할 만큼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연습 자료 서사 상궁들의 이처럼 아름답고 정제된 글씨는 엄격한 훈련과 쉼없는 연습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궁중여관, 즉 궁녀는 위계가 높은 부서일수록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교육을 받았는데, 왕족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지밀이 바로 그 최상급 부서였다. 이러한 지밀 나인들 중에서 문서를 관리하는 궁녀들은 어릴 때부터 엄격하고 철저하게 법도에 맞는 글씨를 쓰도록 교육받았다. 한글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궁녀들의 글씨 연습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줄 사이 간격을 띄어서 한글로 교본을 쓰고, 줄 사이 공간에 한 줄씩 똑같이 따라 쓰면서 연습한 것으로 보인다. 법도에 맞는 글씨를 정성껏 쓰는 엄격한 훈련을 통하여 계승해온 ‘궁체’에 깃든 궁녀들의 인내심을 엿볼 수 있다.

    서사 상궁들이 적은 이 한글 편지들은 조선 후기 왕실 한켠의 일상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한글로 적은 우리말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또한 한글 서예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궁인들의 아름다운 글씨체는 지금까지도 서예를 연마하는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참고 문헌>
    조용선, 1997, 『봉서』, 도서출판 다운샘.
    박정숙, 2017, 『조선의 한글편지: 편지로 꽃 피운 사랑과 예술』, 도서출판 다운샘.

    원고 : 글꼴교류협력팀 강연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