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8. 제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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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이야기 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의 여름 나기
방정환의 한글 잡지 『어린이』
전시운영과 김미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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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아의 「시베리아」 추운 곳에서는 겨울에 얼음이 얼ᄯᅢ에 생선들도 얼어부텃다가
얼음이 녹을 ᄯᅢ에 다시 살아난다 함니다 사람들도 그랫스면 조흘 것 갓지요

- 1926년, 『어린이』 4권 8호(녀름특별호), 39쪽

1926년, 그 해 여름에도 더위가 얼마나 혹독하였으면 시베리아 물고기들처럼 얼어붙었다가 녹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요?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이 생각은 ‘어린이날’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의 잡지 『어린이』에 소개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아버지,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

『어린이』 6권 3호. 등 뒤로 하얀 날개를 달고 벌거벗은 금발 어린아이가 꽃이 가득 핀 꽃밫에서 꽃다발을 왼손에 든 채 오른손으로 나비를 잡고 있다. ▲ 『어린이』 6권 3호

『어린이』 7권 3호. 머리를 바싹 깎은 세 명의 어린이가 나란히 선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어린이』 7권 3호

『어린이』 11권 1호. 초승달이 뜬 밤의 풍경은 빨간 하늘로 표현돼 있다. 달빛아래 노란상의와 초록바지, 초록색 스트라이프 모자를 쓴 남성이 왼손에 강아지 목죽을 쥔 채 좌측을 바라보고 있다. 온통 검은 빛의 늘씬한 대형견도 늠름히 주인의 왼편에 서서 좌측을 바라본다. ▲ 『어린이』 11권 1호

『어린이』 11권 12호. 세로스트라이프 모자, 녹색 스트라이프 스웨터를 입은 남성이 목도리를 메고 스케이트를 신은 채 활강하고 있다. 뒤로는 파란 스커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스케이트를 타고 한껏 양팔을 벌린 채 활강하고 있다. ▲ 『어린이』 11권 12호

1923년 3월, 잡지 『어린이』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을 계몽하기 위해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라는 정다운 표어를 걸고 만들어졌습니다. 방정환이 조직한 아동 문화 운동 단체인 ‘색동회’ 회원들을 비롯하여 이광수, 피천득, 박태원, 윤극영, 마해송, 주요섭, 이태준, 심훈, 홍난파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나 문인들이 『어린이』에 다양한 문학(동화, 동요, 동시, 소설), 교양, 소화, 편지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어린이』는 1923년부터 1935년까지 약 12년 동안 총 122호가 발행되고 해방 후 1948년 5월 복간되어 총 137호까지 발행되었는데, 이는 어린이 잡지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어린이』 잡지에 글 써 주시는 선생님들. 흑백 증명사진 36장이 좌우측 페이지에 빼곡이 들어서 있다.▲ 우리 『어린이』 잡지에 글 써 주시는 선생님들

계절의 변화에 맞춘 특집호 구성,
그 시절 여름에도 수박은 무등산 수박!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에 맞는 표지 삽화와 글을 싣고, 어린이 독자들에게 투고받은 동시나 동요를 소개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름이 되면 국립한글박물관에 소장된 『어린이』 10권 8호(1932년)처럼 뜨거운 여름과 씨름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특집호를 발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이』 10권 8호(성하고투호). 밀짚모자를 쓰고 삼베 반팔 옷을 입은 어린이가 맑은 하늘 아래서 우측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 『어린이』 10권 8호(성하고투호)


                           여름과 싸우는 동무들에게
                           
                           우리와 가치 가난한 만흔 동무들은 날이 더웁다고 
                           산과 바다를 차저서 더위를 피할 처지가 못된다. 
                           산과 들의 논과 밭에서 공장에서 배ㅅ장에서 
                           더위를 피하기보다도 더위와 맛닥드리어 싸우여 
                           일을 하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다. … 

나의 녀름 자미(김려수)

어린 동모 여러분! 녀름이란 참으로 자미잇는 시절임니다 … 아 그럿치 안슴닛가? 한울은 보기 조케 샛파랏쿠요 거긔다가 힌 구름은 뭉게뭉게 피여 올으구요 산에 초목은 욱어지고 들에 시내ㅅ물은 시원하게 흘으지 안슴닛가

저녁 산보(이익상)

나는 사철중에 녀름을 뎨일 실혀함니다. … 온종일 ᄯᅡᆷ에 저즌 몸을 ᄭᅢᄭᅳᆺ이 씻고 가벼운 옷을 걸치고 단장을 잇ᄭᅳᆯ고 친한 친구와 엇개를 마추어 밝은 등불이 ᄭᅡᆷ벅거리는 거리로 ᄯᅩ는 사람의 자최가 고요한 공원이나 산 가튼 곳을 건일ᄯᅢ는 그날의 더위를 아조 이저버리고 맘니다

참외와 수박(이태준)

녀름 한철에야 무엇이 조흐니 무엇이 반가우니 하여도 참외와 수박처럼 반가운 게 어데 잇겟슴닛가 … 참외는 안즌자리에서 보통 7~8개는 집어치고 수박은 광주 무등산 수박이 제일이란 말을 듯고 작년 녀름에는 전라도 광주ᄭᅡ지 갓드렛다면 고만이지요

- 1929년, 『어린이』 7권 6호(하기방학호), 28~29쪽

위 글은 여름이라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재미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소개한 것입니다. ‘초목이 우거지고 시냇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산과 들을 즐기기도 하고,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고요한 공원이나 산을 거닐며’ 저녁 산책을 하는 것도 좋을 듯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앉은 자리에서 7~8개는 먹어 치울 수 있는’ 참외와 수박이 제일 좋아 보입니다. 그 시절에도 ‘수박은 무등산 수박’이라서 수박 때문에 광주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퍽 재미있습니다.

어름 먹을 ᄯᅢ 주의할 몃 가지

① 어름은 강에서 채빙한 것을 ᄭᅢᄭᅳᆺ한 맑은 물로 여러번 씨츤 뒤에 청결한 지하실 냉장고에 너어 두잇다가 사용할 적마다 쓸만큼식 분량을 베여내여서 역시 말쟁이 씨츤 뒤에 쓸 것
② 어름은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어른은 반 곱보(컵) 아희는 십분의 일 곱보(컵) 내지 십분의 이 곱보(컵) 이러케 나이를 ᄯᅡ라서 가감하야 마실 것 …

- 1929년, 『어린이』 7권 5호, 24~25쪽

위 글은 더운 여름에 얼음을 먹을 때 주의할 점을 알린 것입니다. 당시 일반 가정집에서는 강에서 가져온 얼음을 씻어서 지하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썼던 모양입니다. 그 얼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을 때에는 어른은 한 컵, 아이는 십분의 일 컵 정도만 먹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녀름 방학을 엇더케 해야 필요하게 이용할가

◇ 건강 제일(원주 류희격)
여러분 금년에도 녀름방학이 도라왓스니 엇더케 보내야 하겟슴닛가 어물어물 낫잠 자고 과제장이나 하면 그만이겟슴닛가 학과 공부를 열심으로 할ᄭᅡ요 여러분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녀름방학 동안에 할 가장 큰 일은 몸을 건강케 하는 것이라고 함니다. 매우 평범한 말 갓습니다만은 우리 조선 소년은 엇재 그리 약하고 피ㅅ기가 업습닛가 물론 다른 탓이 만흘 줄 압니다 … 우리는 좀 대담합시다 모험을 조와합시다 위대한 리상을 가즈십시다

- 1929년, 『어린이』 7권 6호, 64~66쪽

위 글은 여름을 맞아 ‘여름 방학을 어떻게 해야 잘 이용할까?’라는 주제로 열린 『어린이』 웅변대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원주에 사는 어린이 독자 류희격은 덥다고 하여 어물어물 낮잠만 자거나, 과제장이나 학과 공부만 들여다보며 여름 방학을 지내기보다는 몸을 튼튼히 만들며 여름을 지내자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여름 계획을 세우셨나요?

어린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쉬운 한글로

이 같은 『어린이』는 어린이들이 보도록 만든 잡지이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 쉽게 풀어쓴 글을 싣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글의 역사와 그 가치를 쉽게 설명한 「조선 글자를 만들던 해」(4권 1호, 10~11쪽),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4권 6호, 10~12쪽), 「세계에 그 유가 없는 조선의 유명한 글」(7권 3호, 40~41쪽) 등을 부지런히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

가. 세계의 글은 크게 한문(漢文) 같은 그림글과 로마글자 같은 소리글로 나눌 수 있다.
나. 조선글은 소리글로서 말하는 소리를 그대로 그리도록 만든 것이다.
다. 소리글자 가운데에는 일본글자처럼 소리를 덩어리로 표현하는 것과 조선글처럼 소리의 갈래갈래를 샅샅이 갈라서 드러내는 것이 있다.
(조선글은 「가」라는 소리를 적을 때 소리를 똑똑하게 갈라서 ㄱ 다음에 ㅏ가 소리나고, ㄱ과 ㅏ를 합하면 「가」가 되게 만들었으나, 일본글자는 글자상에 소리의 구분이 드러나지 않은 범벅글이다.)
라. 조선글로는 이 세계 어느 나라 말도 적어 형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
마. 이 때문에 외국말을 배울 때도 조선사람은 말재주가 좋으니 과연 조선글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 1926년, 『어린이』 4권 6호, 10~12쪽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은 일제 강점기 한글 운동을 주도한 조선어 학회의 권덕규(權悳奎, 1890~1950)가 쓴 것입니다. 한글이 다른 문자들과 비교했을 때 가진 특징과 그 장점을 강조함으로써 어린이들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말이 ‘국어’가 아닌 ‘조선어’로 낮은 취급을 받고, 보통학교에서는 우리말보다 일본어를 훨씬 많이 가르치던 시절에 『어린이』는 우리 말과 글을 익히고 이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교재였던 것입니다.

한글에 대한 유익한 글도 만나고 더운 여름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들도 나눌 수 있었던 『어린이』 잡지, 오늘날까지 이 잡지가 발행되었더라면 여러분은 어떤 여름 재미를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원고 : 전시운영과 김미미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