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8. 제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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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처음이지? 신조어, 꼭 배워야 하는 걸까? 자코모 사타(Giacomo Satta, 이태리)

자코모는 이탈리아반도 서쪽에 자리한 관광지 사르데냐섬(Sardegna I.)에서 나고 자랐다.
사르데냐 섬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유명해 할리우드 스타들도 매년 방문하는 휴양지다.
자코모는 이곳의 작은 도시 사사리(Sassari)에서 18살까지 생활한 뒤
베니스의 카포스카리(Ca’ Foscari) 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으로 유학하여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학 박사 과정을 수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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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이 입는 석사 가운을 입고 석사모를 쓴 채 손에는 서울대학교의 졸업장을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자코모.

국립한글박물관의 웹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온 자코모입니다. 한글과 저의 인연은 2009년에 음악을 배우면서 시작되었는데요. 그런데 제가 말하는 음악은 K-pop이 아닌 클래식 음악입니다. 고등학생일 때 플루트를 배우기 위해서 음악 학교도 같이 다니고 있었는데 2009년 여름에 음악 캠프에 참석하면서 한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된 거죠.

특히 그때 만난 친구 중 한 명과 많이 친해져서 우리는 매일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들은 한국의 모습이 매력적이었고,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시아 문화에 흥미가 많았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울 생각이었는데요. 이 친구와 친해진 뒤로는 한국어의 말소리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어떨 때는 귀엽게 들리고 또 어떨 때는 멋있게 들리는 한국어를 배우고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베네치아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3년이 지난 뒤 한국학 학사로 졸업했고, 한국어에 대한 저의 지식을 계속 넓히고 싶은 마음에 서울대학교 석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현재는 서울대에서 국어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요. 외국인으로서 나름 오랜 기간 동안 한글을 배우며 느낀 점은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라는 점입니다. 저도 예전에 배울 때 위키백과를 읽으며 하루 만에 원리를 알 수 있었고요. 물론 한글에 대한 강한 학구적 열망을 가졌기에 가능한 바였겠지만, 제 지인에게 가르친다고 가정해보아도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아요.

우선 여기 한국에서 가르치는 대로 가르칠 것 같습니다. 즉, 한글의 창제 원리를 먼저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음과 모음의 모양을 더 쉽게 외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음악 콘텐츠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멜로디를 부르고 연주하면서 가사를 같이 보면 한글을 외우는 것도 빨라질 것 같네요. 전 한국어를 배울 때 한국의 지인들과 함께 아무런 내용의 글을 읽는 공부를 많이 했는데요. 내용을 몰라도 발음 연습이 되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발음의 실수를 바로 잡아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했습니다.

흰 셔츠를 입은 자코모가 스튜디오에 서서 우측의 여자 사회자를 바라보고 있다. 사회자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최근 지인들을 만나면 신조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일단 저는 외국인으로서 신조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피하는 경향을 갖고 있어요. 당연히 지금 한국어학 전공자로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신조어의 장단점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조어의 장점이라면 긴 표현을 줄일 수 있는 효율성을 꼽겠습니다.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버카충(버스카드충전)’ 등이 예시일 텐데요. 둘 다 구(句)를 줄여서 말하는 표현인데, ‘뇌섹남’같은 경우 ‘-남(男)’이 접미사로 사용되기에 한국어의 조어(造語) 방식에 부합해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반면 ‘버카충’과 같은 약자에는 접미사도 없고 영어에서 온 외래어를 활용한 것이기에 일반적인 한국어 어휘와 거리가 멉니다. 이러한 줄임말은 간혹 한글과 한국어의 아름다움까지 파괴하는데요. 예를 들어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러’란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OO를 하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러’는 영어의 ‘-er’에 해당하는 요소인데 이런 접미사와 결합하여 새로 나타나는 어휘를 좋은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영어로 ‘-er’인데 한국어로 왜 ‘-러’라고 표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로 한국어에 이미 그런 개념을 나타내는 접미사들이 굉장히 많은데(예를 들어: -인, -자, -사, -가, -꾼, -쟁이 따위) 굳이 왜 다른 언어의 접미사를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속수무책’이란 사자성어를 붓펜으로 적는 자코모. 그 위로는 직접 적은 ‘설상가상’, ‘파란만장’, ‘전화위복’, ‘일확천금’, ‘천정부지’, ‘금상첨화’, ‘대기만성’ 등의 사자성어가 놓여있다.

한국어의 고유 접미사들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한국어의 아름다운 말소리를 보존할 수 있는데,
외래어에서 유래한 접미사를 사용하면
한국어의 미를 파괴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어의 신조어가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에 들어 영어나 다른 서구의 언어와 많이 섞어서 사용하기에 이해도 어렵고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많은 신조어들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내어 배울만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인과 대화할 때 그들의 신조어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겠지요.

바닷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카메라를 돌아보는 자코모. 해안으로 죽 펼쳐진 성벽길을 따라 멋스럽게 건물이 세워진 유럽의 해안마을.

앞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에 돌아가서 저처럼 한국어와 한글을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한국의 문화를 퍼뜨리고 싶습니다. 제가 한국어의 말소리에 반해 공부하게 됐듯,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국어에 관심을 가져서 배웠으면 합니다. 또,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한글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한글과 한국어의 타고난 우수성을 보존하는 데 같이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