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웃음 2020.11. 제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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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박두성 선생 훈맹정음의 뜻을 기리며, 송암 박두성의 발자취를 살피다

11월 4일은 점자의 날이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이라고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 점자를 만들어 반포한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시각장애인들이 일본어 점자를 배우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7년의 노력 끝에 ‘한글로 이루어진 점자’를 세상에 선물한 인물,
박두성 선생님의 생애를 그의 업적과 함께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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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께 인사와 ‘송암 박두성 선생님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송암 박두성 선생의 증명사진. 흑백사진에 정장을 차려입은 박두성 선생의 모습이 찍혀 있다.
▲ 송암 박두성 선생

안녕하세요. 송암박두성기념관 박승규 관장입니다. 송암 박두성 선생님에 대해 소개 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송암박두성기념관은 박두성 선생님이 태어나신 고향이자, 선생님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인천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송암 선생님은 점자법 제4조에서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로 인정하고,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고 있는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창안·보급한 분입니다.

많은 분들이 송암 박두성 선생님을 ‘교육자’, ‘훈맹정음 창안자’로만 알고 계시지만, 우편을 이용하여 전국 각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교육 자료를 제공하는 ‘통신 교육’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편을 이용한 도서 대출 비용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신국에 점자우편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건의하시고, 교과서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하여 시각장애인의 복지증진에 앞장서셨습니다.

또한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배워서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점자책으로 만들어서 당시 힘들게 살아가던 시각장애인들에게 불빛과 같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송암 박두성 선생님은 1913년 제생원 맹아부에 첫 한국인 교사로 부임하신 후부터 은퇴하신 이후까지도 시각장애인의 교육, 재활, 복지를 위하여 일생을 헌신하신 분입니다.

Q. 1926년 훈맹정음을 완성하기까지 박두성 선생님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궁금합니다.
박두성 선생이 사용하던 점자 타자기. 가로가 길고 세로로 짧은 형태로, 나무판 위에 타자를 쳐주는 철기구들로 구성돼 있다.
▲ 박두성 선생님이 사용하던 점자 타자기

1920년, 박두성 선생님은 ‘일본어 점자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다녀온 후 제자들에게 “선생님 우리도 우리말로 된 점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 선생님은 시각장애인들이 읽기 쉽고, 배우기 쉬운 한글 된 점자를 만들고자 결심했습니다.

1920년부터 점자 연구에 착수했으며 한글의 창제과정과 원리를 연구하여 1922년 초기 점자인 3·2점식 점자를 만들었습니다. 1923년에는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한글의 원리와 외국 점자의 원리를 연구·보완했고, 1926년 한글점자 “훈맹정음”을 지금의 형태로 완성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국인 선교사인 로제타 홀(Rosetta Hall) 여사가 뉴욕포인트 점자에서 착안하여 만든 평양점자를 황해도, 평안도 일대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새로운 점자 개발에 대한 13가지 안이 있었다고 합니다.

송암 선생님은 첫째 배우기 쉽고, 둘째 점 수효가 적으며, 셋째 서로 헛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으로 점자를 고안하였습니다. 점자는 손가락으로 촉독하는 글자입니다. 예를 들어 학교를 “ㅎㅏㄱㄱ ㅛ” 와 같이 풀어서 표기하는데, 받침의 ㄱ과 초성의 ㄱ모양이 같을 경우 “학교”라고 인지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전 세계에서 표준으로 하는 여섯 점을 이용하였으며, 초성·중성·종성으로 구별하는 등 시각장애인들이 글을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Q.박두성 선생님이 남긴 명언, 한글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앞을 보지 못 하는 사람에게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중 불구가 될 터 우리말 점자가 있어야 하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라는 명언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송암 선생님께서 제생원 맹아부 교사 재직 시절 “앞으로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지 않겠다”라는 일본의 방침에 한글점자를 꼭 가르쳐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시각장애인들이 더욱 힘든 상황에 놓여 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시며 하셨던 말입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도 시각장애인 제자들이 한글점자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선생님께서 사시던 인천(율목동) 집에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혹은 선생님이 만드신 점자책을 읽기 위해 찾아오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선생님의 생신날에는 그 넓은 집이 가득 찰 정도로 시각장애들이 오셨다고 하는데요. 선생님 댁의 대문에는 특이하게도 커다란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는 선생님의 집을 찾기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태극문양이 그려진 집이 어디인지 물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렇듯 선생님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시는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올바른 한글문화를 위해 꼭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삼일운동≫책자의 표지. 세로쓰기로 ‘三一運動’이란 한자가 회색빛 바랜 표지에 적혀 있다.▲ ≪삼일운동≫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쓴 편지 <앞 못 보는 이들에게>. 갈색의 종이 위에 빼곡한 세로쓰기 박두성 선생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앞 못 보는 이들에게>

<한글의 큰 스승>전에서 송암 박두성 선생님의 유물 4종을 전시하여, 많은 분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점자타자기는 선생님이 직접 사용한 타자기로 시각장애인 회람지 <촉불>, 점자편지 등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로 된 정보를 제공하는데 사용 되었습니다.

≪삼일운동≫, ≪참으로 통일하자≫는 점자책으로 ≪삼일운동≫은 삼일운동과 관련된 내용과 함께 책 도입부에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는 글이 적혀 있으며, ≪참으로 통일하자≫는 삼팔선이 만들어진 원인과 자주적인 통일에 대한 내용이 포함 되어 있어 해방 이후 시각장애인들에게 시대 상황을 알려주고자 노력했던 송암 선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앞 못 보는 이들에게>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들에게 쓴 편지로 앞을 못보는 사람들은 부족한 지식을 글에서 얻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점자를 배워야 하니 점자교육과 점자통신교육이 필요하다는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Q. 송암 박두성 기념관에 대한 소개와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전경. 좌측의 벽면에는 박두성선생에 대한 이야기와 인형 전시물이 마련돼 있고, 우측에는 박두성 선생이 사용한 장롱 등의 가구가 전시돼 있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전경. ‘또 하나의 한글 훈맹정음’이라 적힌 흰 벽면에 글씨 우측으로 박두성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고, 하단에는 점자들이 잔뜩 표기돼 있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전경. 박두성 선생이 생전 점자개발에 활용한 기계들이 좌측에 전시돼 있고, 우측에는 점자 관련 책자와 삽화가 걸려 있다.

▲ 송암박두성기념관 전경

송암 박두성 기념관은 한글 점자를 창안하여 시각장애인의 교육에 헌신하신 송암 선생의 삶과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념관입니다. 앞으로 송암 박두성 기념관은 송암 선생님이 남기신 유물 유품을 보존 관리하여 송암 선생에 대해 더 깊은 연구를 하고, 기념관으로써 송암 박두성 선생을 알리고 한글점자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여 유물을 관람하고 한글점자를 배우며 시각장애인에 대해 알아 가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