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제 90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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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처음이지?

“처음 접한 외국 대한민국, 한글로 제 꿈이 채워졌어요”

나자로바 오굴게렉(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출신의 나자로바는 우연한 기회에 한글과
한국의 문화를 접하며 언젠가는 한국에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먼저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언니를 따라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잠시 귀국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철저한 준비 끝에 지난 2015년 다시 한국 땅을 밟은 나자로바는
7년 뒤인 현재, 국내 의료용품 회사의 정직원으로 근무하며, 바이어들과 소통하고 있다.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나자로바 오굴게렉. 어깨까지 오는 금발에 베이지색 외투를 입고 있다. 뒤로는 나무 선반이 있고 다양한 그라인더들이 진열되어 있다.

안녕하세요. 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온 나자로바 오굴게렉입니다. 제가 한국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에 한국대사관이 설치(2007년 7월 19일)되면서부터예요. 그 이듬해에 아자디 국립세계언어대학에 한국어과가 개설됐는데요. 학과 홍보 차원에서 지역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오픈강의가 열린다는 공지가 있었죠. 저는 고려인이 아니라서 아쉬웠는데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신청해서 저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한국에 대해서 처음 알고 한글도 배우게 됐어요.

짧은 기간이라 집중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저에겐 큰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마음 한편에 ‘한국’이라는 꿈이 심어졌으니까요. 부모님께서도 저의 꿈을 위해 한국에 가는 여비와 생활비를 마련해 주셨고, 2012년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살고 싶은 삶, 꿈꿔왔던 삶’을 살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생동감과 활기가 넘쳤거든요.

하지만 어학당 졸업장을 받을 때 경제 사정으로 인해 다시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한국 문화와 한글을 배웠기 때문에 저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한인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는데요. 1년 반 동안 직장을 다니며 비용을 모았고 다시 철저한 준비를 통해 고려대학교 근로장학생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목적한 바를 이뤄서 기뻤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근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 해서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거든요. 일단, 매일 7시에 일어나 밤 12시 넘어서까지 공부를 했어요. 한글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강의 시간에 녹음기를 켜둔 채 필기를 했고, 나중에 녹음된 내용과 메모를 비교해 다시 정리해나가곤 했죠. 근로 장학 업무로는 주로 한국전쟁 당시 소련군과 관련된 러시아어 자료를 한국어로 번역했는데요. 그때의 경험은 저에게 큰 재산이 됐습니다. 한글을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것은 물론,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학부(고려대학교)와 석사(한국학중앙연구원)과정을 졸업할 수 있었으니까요.

카페에 앉아 미소짓고 있는 나자로바 오굴게렉. 털 달린 검은색 패딩을 입고 있다. 옆엔 유리벽 너머로 카페 내부가 보인다.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남한의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또 남한을 돕기 위해 왔던 해외 참전 용사들을 조명하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요. 저는 반대편 참전 군인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논문을 작성했어요. 미국 중심의 아카이브와 구소련 중심의 아카이브를 둘 다 보고 제3의 눈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뒤 논문을 제출해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 게 목표긴 했지만 좀 더 많은 사람과 만나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웃음) 그래서 박사학위는 잠시 미뤘고 기회가 된다면 ‘한국학’이 개설돼있는 다른 나라에서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7월에는 한국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하게 됐어요. 수습직원으로 입사해서 11월에 정규직이 됐는데요. 학생 때는 제가 좀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외국인이다 보니 교수님들께서 봐주시곤 했지만 직장에선 달랐어요. 한국인과 동일한 선상에서 평가해 주시니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업무는 저와 정말 잘 맞는다고 느껴집니다. 직원들과는 한글로 소통하고, 바이어들과는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면서 한국과 해외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러시아권의 기업과 계약 이야기도 오가고 있어서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그리고 한글은 꿈이 없던 저에게 꿈을 심어줬고, 제 삶에 있어서 많은 경험을 안겨준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 마음 항상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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