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제 99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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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배경에 에바의 사진이 합성되어 있다. 그녀는 화려한 흑백 꽃무늬가 그려진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있다. 머리는 뒤로 단정히 넘겨 묶었으며, 한 손으로 작은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분홍색 배경에 에바의 사진이 합성되어 있다. 그녀는 화려한 흑백 꽃무늬가 그려진 반팔 원피스를 입고 있다. 머리는 뒤로 단정히 넘겨 묶었으며, 한 손으로 작은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한글은 처음이지?

“알수록 복잡 미묘한 한글의 매력”

통·번역사, 이에바(러시아)

오늘의 주인공 에바는 음악 교수이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여섯 살부터 열두 살 무렵까지 유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그녀는 고국인 러시아에
돌아가서도 이곳에서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한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학생이 되어 다시 한국을 찾았고 오랜 기간 배우고 익혔던
언어 능력을 갈고닦아 한국인과 러시아인을 이어주는 통‧번역사가 되었다.
한글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이 그 누구보다 충만한 그녀이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일상 속에서 귀여운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에바의 한국 생활 그리고 한글 생활을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러시아 출신이지만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며 한국에서 살게 된 이에바라고 합니다. 결혼 전 이름은 코노노바 에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변역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통‧번역사 일도 병행하고 있답니다. 제가 이곳을 처음 오게 된 것은 지휘자이신 저희 어머니가 한국에 음악 강사로 초청되었기 때문인데요. 제가 여섯 살이던 1998년, 경기도 의왕시에 첫 둥지를 틀었답니다.

한국에서 처음 사귄 친구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만나 단짝이 된 아이인데,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당시 친구들도 한글과 말을 한창 배울 나이여서 저 역시 한국어와 한글을 익히는 데 큰 문제는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의 글로벌한 분위기와는 달리, 흰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답니다. 더군다나 가족들을 따라 한국과 러시아에서 번갈아 가며 학교에 다녀야 했기에, 두 나라 어디에도 깊은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죠.

열두 살 무렵 고국으로 돌아갔는데요. 러시아에서도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며 꾸준히 한글 공부를 지속했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한국어 담당 선생님께서 원어민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저에게 질문하고 제가 선생님을 도와 학생들을 지도하는 상황도 생기도 했어요. (웃음) 이때 학업에 대한 열정이 커져 한국어 교육원에 가서 한글 맞춤법 등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인터넷으로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며 회화에 대한 감도 잊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어느덧 대학생이 된 저는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2010년에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한국 대학교가 방학일 때 다시 러시아로 가서 한 달 가량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4년간 두 개의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죠. 그 결과 한국인과 러시아인의 가교 역할을 하는 통‧번역사가 되었어요. 지금은 국제회의, 정부 기관, 대기업 포럼 등의 의뢰를 받아 일하고 있답니다.

화려한 머리 장신구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에바와 그 곁에 짙은 남색 정장을 입은 그녀의 남편이 함께 서 있다. 둘은 함께 칼을 쥐고 앞에 놓인 2단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흰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손에 든 에바와 그녀의 남편이 야외에서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있다. 둘의 양옆으로는 사람들이 서 있으며 꽃 모양의 종잇조각을 던져주고 있다.

쉴 틈 없이 바쁘게 지내면서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했어요. 국적을 떠나 괜찮은 사람이기에 부모님께서도 저희 사이를 지지해주셨고, 2015년 부부의 연을 맺었죠. 표면상으로 보면 ‘국제 부부’이지만, 한국에 거주한 기간이 길어 남편과의 소통은 문제없이 이뤄지는 편이에요. 이따금 제가 무언가를 부탁할 때 남편이 못 알아듣는 척 장난할 때가 있긴 하지만요. (웃음)

호텔 홀에서 동그란 테이블을 두고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그중 한 명이 일언 마이크를 쥔 채 무언가 말학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앉아서 경청하고 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에바는 그들 곁에 서서 눈을 내리깐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통역 부스에 앉아있는 에바. 검은색 통역 부스 안이 살짝 비치고 그 안에 앉아있는 에바가 보인다. 그녀 앞에는 여러 장의 에이포 용지가 붙어있다. 부스 안에는 조명, 물, 마이크 등이 놓여있다. 그녀의 얼굴은 종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 현장에서 통·번역 하는 에바의 모습

이제 너무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글이지만, ‘여유’라는 단어는 들을 때마다 좋은 느낌이에요. 통‧번역사로 일하면서도 ‘여유’란 말을 러시아어로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찾지 못했거든요. 발음은 굉장히 쉬운데 그 안에 함의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다채롭다고 생각해요. 한글 체계는 다른 나라의 글자보다 비교적 배우기 쉽고, 발음도 듣기에 편해요. 하지만 저처럼 전문적으로 한글과 한국어를 다루며 러시아어로 번역할 때는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흥미’라는 한글은 ‘interest’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그 뉘앙스가 똑같진 않거든요. 한글은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으로 다가오는, 정복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해요. 특히 번역 같은 경우는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 않는 편이에요. 경제, 정치, 문화, 국가 등 해당 분야와 관계있는 용어가 많아 단순한 ‘번역’이 아닌, 배경지식도 함께 익혀야 해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해요.

한글에 통달한 것처럼 보이는 저이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드물게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예전 방송에서 한 외국인이 ‘71억을 기억이라고 읽었다’는 장면을 봤는데 크게 공감했어요. 저에게 ‘포기’라는 단어는 ‘하던 일을 중간에 멈추는 행위’라고 입력되어 있는데, 배추를 셀 때의 단위 역시 ‘포기’잖아요. 그래서 ‘포기김치 담그기’라는 문장을 봤을 때 잠시 헷갈린 적이 있거든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항상 번역할 때에는 사전을 참고하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이렇게 한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시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도 자기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지인들이 많은 편인데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한 후 진로를 결정한다면 힘이 드는 순간에도 크게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하고 있는 통·번역 역시 매 순간 고통스러움을 동반하긴 하지만, 일을 마치고 나면 희열과 만족스러움이 전율처럼 온몸에 흐르곤 해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 모두 완벽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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