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제 100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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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들판에 사람 키만 한 갈대숲이 펼쳐져 있다. 그 앞에 체크무늬 코트와 갈색 베레모를 착용한 알리사가 서 있다. 가슴께까지 오는 금발인 알리사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넓은 들판에 사람 키만 한 갈대숲이 펼쳐져 있다. 그 앞에 체크무늬 코트와 갈색 베레모를 착용한 알리사가 서 있다. 가슴께까지 오는 금발인 알리사는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한글은 처음이지?

“한글 덕에 제 꿈과 만났어요”

유학생, 사이풀리나 알리사(키르기스스탄)

보통의 외국인들은 한류 문화를 접하고 한글을 배우는 수순을 밟지만,
오늘 만나볼 알리사는 한글의 매력에 빠진 후 한국을 사랑하게 되었다.
여러 취미와 특기가 있지만 뚜렷한 진로를 정하지 못했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한글을 배우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바로, 해양 환경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의 대도시가 아닌 제주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한글,
그리고 환경 보호를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최근에는 한류 콘텐츠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이
마치 자기 일처럼 기쁘다는 알리사를 만나보았다.

활짝 핀 하얀 벚꽃과 나뭇가지 너머로 알리사의 옆얼굴이 보인다. 알리사는 연한 분홍색의 니트를 입고 있다. 귀에는 꽃과 진주로 이루어진 귀걸이를 착용했다. 살짝 입을 벌린 알리사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사이풀리나 알리사

Салам!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알리사입니다. ‘살람’은 우리나라 말로 ‘안녕하세요’를 뜻합니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많은 분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게 되어 신기한 마음이 앞서네요. 사실 저는 한국이나 한류 문화에 흥미를 느끼던 학생이었어요. 그러면서도 제 미래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소녀였죠. 그림이나 음악 분야에서 다양한 특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쩐지 인생의 목표나 구체적인 꿈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서핑을 하다 한국어학당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뭐든 배우는 것을 좋아하던 저는 큰 고민 없이 수강신청을 했답니다. 처음 배우는 한글과 집중해서 듣는 한국어는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었어요. 키르기스스탄의 모국어나 러시아어는 발음이 강한 편인데, 부드러운 한국어는 마치 노래처럼 들리기까지 했죠. 귀여운 도형 모양의 한글을 배우는 것도 무척 신이 났어요.

특히 한글은 자음과 모음만 외우면 글씨를 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잖아요. 아직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러시아어나 키르기스스탄어의 발음을 한글로 메모하기도 했죠.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글자를 만든 세종대왕님에게 감사함을 느낄 정도였답니다. (웃음) 하지만 제 고국에는 받침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받침 글자’에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받침에 익숙해지고 나니 간단하고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한 단어에 25글자나 사용되는 단어도 있거든요.

한글을 배우면서 한글 단어와 우리나라 단어가 비슷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꽃’은 키르기스스탄어로 ‘고양이’라는 뜻이에요. ‘도로’는 ‘길’을 나타내는데, 제 고향에서는 ‘길’을 ‘도로가’라고 말해요. 또한 ‘바다’라는 발음은 ‘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모래’는 우리나라 말로 ‘바다’를 뜻한답니다. 두 국가는 인접해있지도 않고 문화도 다른데 이런 비슷한 의미를 지닌 단어들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뻤어요.

옅은 노란색 공책에 서툰 글씨체의 한글과 영어가 함께 적혀있다. 그 위로 녹색 형광펜을 들어 무언가 표시하고 있는 알리사의 손이 보인다. 공책 뒤로는 여러 교재가 펼쳐져 있다. 낙엽으로 물든 커다란 나무가 서 있고 나무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사람 키만 한 나무 덤불이 있고 덤불 앞에 알리사가 서 있다. 하얀 트렌치 코트를 입은 알리사는 카메라를 등진 채 뒷모습을 보인다. 길바닥에는 노란색 낙엽이 가득 깔려있다. 덤불 너머로는 빨간 지붕의 커다란 건물이 살짝 보인다. 어지럽게 펼쳐진 교재 위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알리사가 엎드려 있다. 알리사는 무언가 적힌 노란색 공책 위에 연두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있다.

▲ 제주대학교 지구해양과학과에 재학 중인 알리사의 모습

열심히 한글 공부를 하던 중 제가 다니던 어학당에 한국 대학생들이 방문해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행사가 열렸어요. 그때 처음 제주대학교를 알게 되었고, 학교 소개를 듣던 중 제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어요. 바로, 지구해양과학이라는 학문을 알게 되었거든요. 평소 자연 보호에 관심이 있었던 저는 그 순간 ‘아, 이것이 바로 내 길이다’라는 계시를 받은 것 같았어요. 어떤 운명의 힘을 느낀 저는 그길로 한국 유학을 알아보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자리 잡은 제주대학교의 학생이 되었죠. 현재는 바다로 나가 환경 오염도를 확인하고, 해양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며 학과 공부에 매진하고 있어요.

사실 저는 한글을 통해 꿈을 찾았을 뿐 아니라, 수많은 기회를 얻고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과거의 저는 사람들 앞에 서면 늘 긴장이 되고 걱정부터 앞서는 성격이었어요. 그러던 중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참여 제안이 왔죠.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한글을 배우며 얻은 자신감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소극적이던 제 모습을 버린 것이 저에게는 큰 승리와도 같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윤도현의 <나는 나비>이거든요.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거야.’ 이 가사처럼 한글은 저에게 날개를 달아줬어요.

요즘 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한국과 한글의 위상에 저도 모르게 뿌듯함을 느끼고 있어요.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 게임>과 오스카의 주목을 받은 <미나리> 등 한국 문화의 저력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달까요. 심지어 제 남동생은 한글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오징어 게임>을 감상한 뒤 한글 학원에 등록했답니다. 이처럼 하나의 콘텐츠를 통해 한글은 물론이고 한국의 전통놀이까지 덩달아 유명해졌다는 것이 몹시 놀라워요. 제가 한글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한글을 찾아서 배우는 현상’은 없었거든요.

어린이용 기차에 어린 알리사와 남동생이 타고 있다. 기차는 녹색과 빨간색으로 꾸며져 있다. 알리사와 남동생은 각각 기차 창문 앞에 서서 카메라를 향해 개구지게 웃고 있다. 기차 뒤로는 무성한 풀숲이다.▲ 어린 시절의 알리사와 남동생의 모습 주근깨 가득한 알리사가 머리에 책을 이고 양손으로 턱을 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얼굴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눈동자만 돌려 오른쪽을 보고 있다. 알리사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다.
▲ 알리사

문화를 통해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한글처럼, 해양 환경에 대한 관심에도 언젠가는 불이 붙으리라 생각해요. 사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자연 보호에 대한 의식이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에요. 그렇기에 분리배출의 중요성이나 플라스틱 사용 자제 등에 대한 인식이 미비하죠. 저는 먼저 한국에서 환경 보호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마친 뒤 국가와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보호 활동을 펼치고 싶어요. 한글을 알게 되면서 만난 제 꿈은 지금부터 시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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