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5호 20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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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이 펼쳐진 동산에 방정환 선생님이 서 있는 그림이다. 그는 짙은 갈색 중절모와 동일한 색상의 긴 코트를 착용한 채 한 손에 『어린이』 잡지를 들고 있다. 그의 양옆에는 토끼 모자와 곰 모자를 쓴 어린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미소짓고 있다. 푸른 하늘이 펼쳐진 동산에 방정환 선생님이 서 있는 그림이다. 그는 짙은 갈색 중절모와 동일한 색상의 긴 코트를 착용한 채 한 손에 『어린이』 잡지를 들고 있다. 그의 양옆에는 토끼 모자와 곰 모자를 쓴 어린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미소짓고 있다.

한박튜브 한평생 어린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던 소파 방정환 선생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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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학습 영상 등 다양한 동영상들이 매달 새롭게 게재됩니다.
‘한박튜브’ 코너에서는 국립한글박물관의 주요 영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2022년 5월에는 100번째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날을 만드신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1923년 5월 1일, 무슨 날일까요? 바로 어린이날이 기념일로 제정된 날입니다.
어린이날을 만드신 분은 모두들 알고 계시듯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십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를 만들고,
동화를 번역해서 출간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어린이날 100회를 맞이하여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01

방정환 선생님이 짙은 갈색 중절모와 동일한 색상의 긴 코트를 착용한 채 살며시 미소 짓고 있는 그림이다. 그의 어깨 양옆에는 토끼 모자와 곰 모자를 쓴 어린이들이 매달려 있다. 곰 모자를 쓴 아이는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1923년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위한 단체인 ‘색동회’를 창립하였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습니다.
바로 그해 5월 1일에 어린이날 기념식이 최초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날은 처음에는 5월 1일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어린이날 행사가 금지되기도 하는 등 많은 탄압과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1949년부터 5월 5일로 공식적으로 제정되었고,
1975년부터는 법정공휴일이 된 것입니다.

#02

『산드룡의 유리구두』 책을 누군가가 들고 있는 그림이다. 책 표지에는 계단에 유리구두 한 짝을 놓고 온 신데렐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신데렐라는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분홍색 리본을 머리에 착용했다. 그림 위에는 제목인 ‘산드룡의 유리구두’가 적혀있다. 책을 든 사람은 ‘산드룡의 유리구두?’라고 말하고 있다.

방정환 선생님은 1920년 일본 도요(東洋)대학 문화학과에 들어가
아동문학, 아동심리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유학 중에《개벽》잡지가 창간되자, 도쿄 특파원으로 활약하시면서
<안데르센동화>·<그림동화>·<아라비안나이트>등을 번역한
세계명작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1922년에 발행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당시<산드룡의 유리구두>라고 번역된
<신데렐라>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03

방정환 선생님과 어린이들이 모여있는 그림이다. 짙은 갈색 중절모와 코트를 입은 방정환 선생님은 앉아서 『어린이』 잡지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방정환 선생님의 무릎 위에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른 아이들도 그의 곁에 옹기종기 모여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깔깔박사, 북극성, 길동부, 삼산인, 몽중인, 은파리, 목성…….’

무슨 말일까요? 바로 방정환 선생님의 필명입니다.
필명이란 글을 쓸 때 사용한 이름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많은 동화를 쓰고,
번역하시면서 위의 여러 필명을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04

『어린이』의 실물 사진. 가운데 크게 ‘어린이’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적혀있고, 내용은 모두 세로쓰기 되어있다. 중간에는 누군가가 미소짓고 있는 흑백사진이 삽입되어 있다. 사진은 낡아서 글씨와 그림을 알아보기 힘들다. 잡지 사진 옆에는 ‘여기서는 그냥 재미있게 읽고 놀자 그러는 동안에 저절로 깨끗하고 착한 마음이 자라나게 하자! -창간호 중에서’ 글귀가 함께 적혀있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늙은이’, ‘젊은이’라는 용어와 대등한 의미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며,
이는 어린이를 비하하거나 낮추어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서 존중하여 부르자는 의미로 만드신 것입니다.

#05

『어린이』 잡지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여있는 그림이다. 다들 잡지 주변에 매달려 있거나 곁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깔깔박사?’, ‘아싸! 이번 부록은 윷놀이판이래’, ‘지난번 깔깔박사 글 너무 웃기지 않았어?’, ‘방정환 선생님의 20여개가 넘는 필명 중 하나래’ 등을 말하고 있다.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도 같은 어린 입술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고대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비둘기와 같이 토끼와 같이 부드러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뛰노는 모양 고대로가 자연의 자태이고 고대로가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거기에는 어른들과 같은 욕심도 있지 아니하고 욕심스런 계획도 있지 아니합니다.
죄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하늘나라! 그것은 우리의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느때까지든지 이 하늘나라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사람이 모두,
이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을 위하는 생각에서 넘쳐 나오는 모든 깨끗한 것을
거두어 모아 내는 것이 이 《어린이》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쓰신《어린이》의 창간사입니다.
방정환 선생님이 우리 어린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고,
존중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06

짙은 갈색 중절모와 코트를 착용한 방정환 선생님이 살짝 미소지으며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만드는 그림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한글을 사랑하게 해줘야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만드시고, 국내 최초 순수아동잡지인 《어린이》를 만드시는 등
언론인이자 출판인, 운동가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셨던 방정환 선생님은
일제의 가중된 탄압, 재정난, 소년운동 진영의 분열이 가져온 심리적 부담으로 쓰러지셨고,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1931년 7월 23일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타계 직전까지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집필에 몰두하셨다고 하며,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신데렐라를 번역한 사람은???
[만화로 즐기는 한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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