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9호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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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배경에 김정진 디자이너의 흑백 사진이 합성되어 있다. 그는 단정하게 셔츠를 입고 사선으로 선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살짝 미소짓고 있다. 그의 주변으로는 그가 디자인한 ‘너로 피어오라’, ‘언어의 정원’ 한글 단어가 적혀있다.

반갑습니다 한글에 일상을 담고,
감정을 담다
서체 디자이너 김정진

하루 한 편, 한 단어.
김정진 디자이너는 기억에 남는 주제에 따라 각기 다른 서체로 한글 일기를 그린다.
이렇게 겹치는 모양 없이 차곡차곡 쌓여온 한글 일기는 곧 김정진 디자이너의 거대한 작품 세계가 됐다.
한글의 조형적 변화에 한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그의 한글 디자인 이야기를 들어본다.


Q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다양한 글자를 그리고, 연구하는 서체 디자이너 김정진입니다. 글자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검은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가운데에는 커다랗게 ‘한글 디자인’이 세로쓰기 되어있고 그 주변으로 김정진 디자이너가 디자인해온 한글 단어들이 빼곡하게 모여있다.

Q

서체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한, 서체 디자이너로서 어떤 작업을 해오셨나요?

A

평소 글자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딱 맞아떨어지는 글자 형태를 찾을 수 없어 불편했어요. 그래서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한 글자, 두 글자 그리다가 점점 많은 글자를 그리게 되면서 ‘하나의 서체 꼴로 제작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대학생 때 서체 한 벌을 완성하게 됐죠. 이를 계기로 서체 디자이너라는 목표를 가지고 글자를 그리게 됐어요.

제가 그동안 진행했던 작업 중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서체는 카카오톡에서 사용하는 카카오 전용 서체, 창원 단감아삭체, 평창 평화체, 티키타카체, 삼성원 전용 서체, 한국출판인협회 KoPubWorld, 메이플스토리 전용 서체 등이 있습니다.

모눈종이 위에 검은색 글자로 ‘한글디자인’이 세로쓰기 되어있다. 그 옆엔 만년필이 놓여있다.

검은 배경에 흰 종이가 놓여있고 김정진 디자이너의 손이 연필을 쥔 채 글씨를 디자인하고 있다.

Q

매일 한글 일기를 그려 개인 누리소통망에 올리고 있으신데요. 주제에 따라 한글 서체의 모양도 다양합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며 주로 어떤 내용을 올리고 있으신가요?

A

생각나는 형태와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글자를 제작하면서 한글 일기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서체 모양은 전달하고자 하는 글자, 내용, 주제에 따라 그날그날 다르고 기분의 변화에 따라서도 달라져요.

우리가 읽고 보는 글자들은 대부분 단어를 구성해요. 단어들은 각각 뜻이 있고 전달하는 메시지가 다르죠. 저는 단어 자체로도 하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사람들이 단어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도 모두 다르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단어를 읽거나 볼 때 단어 혹은 글자가 가지는 이미지를 잘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여 작업하고 있습니다.

검은 배경에 흰색으로 ‘언어의 정원’이 적혀있다. 주변으로는 나뭇잎이 그려져 있다.

검은 배경에 흰색으로 ‘엉덩엉덩엉덩이~ 궁둥궁둥궁둥짝!’이 적혀있다. 받침으로 사용된 이응을 엉덩이 모양으로 표현했다.

검은 배경에 흰색으로 ‘너로 피어오라’가 적혀있다. 글씨 중간중간이 동그라미와 꽃으로 표현됐다.

▲ 김정진 디자이너가 개인 누리소통망에 올린 작업물
Q

누리소통망에 게재된 한글 일기를 살펴보면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하는 대신 모두 흑백으로만 작업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또한, 한글 일기를 디자인하실 때 신경 쓰고 있으신 부분이 있다면 그 내용도 설명해주시기를 바랍니다.

A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단어로도 우리는 이미지를 연상하고 공감합니다. 색을 사용하면 더욱더 효과적으로 분위기와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글자의 디자인 조형만으로 글자가 가지는 시각적인 힘에 대해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자 흑백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한글 일기 디자인을 할 땐 특별하거나 독특한 디자인을 하기보단, 문득 생각나서 적은 글자를 사람들이 보고 같은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자를 그립니다.

Q

한글 일기 작업 중 가장 즐거웠던 작업과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서 가장 즐거운 작업을 뽑긴 어려울 것 같아요. 평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분에 따른 감정을 글자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다른 사람도 제 작품에 공감하면서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아 즐거워요.

그림판 프로그램 화면에 ‘복’ 글자가 검은색으로 커다랗게 적혀있다. ▲ 그림판으로 작업한 글자 ‘복’

반면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제일 처음 그렸던 ‘복’이라는 글자입니다. 이 글자는 그림판이라는 프로그램으로 그렸는데요. 디자인 작업 프로그램 중 가장 정교하지 못한 도구로 가장 정교하게 기본글자를 그리는 것이 매우 어려웠어요.

Q

2020년에 ‘꽃신체’를 제작하셨습니다. 꽃신체는 어떤 특징을 살린 서체인가요?

A

‘꽃신체’는 한국의 문화를 담은 서체입니다.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한국의 문화유산에서 보이는 유연한 곡선과 우리 민족의 ‘정’을 표현하고자 따뜻한 이미지를 살려 제작한 서체예요.

한국 전통식 건물의 기와지붕 위에 모음 으가 적혀있다. 사진은 흑백이며 ‘으’는 흰색으로 처리됐다.

가로로 긴 비녀가 놓여있고 그와 겹쳐서 모음 이가 적혀있다.


비단신을 신은 발이 바닥을 발끝으로 딛고 있다. 사진은 흑백 처리 되었으며 그 위에 흰색으로 짧은 가로가 그어져 있다.

신발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이를 넘어 장식적 의미도 부여됐죠. 글자도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늘날에는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장식적인 요소도 더해졌다는 것에서 신발과 서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제 작품의 주제로 한국의 신발을 대표하는 ‘꽃신’을 선정했어요.

Q

각 나라의 문자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담겨 있다고 하셨는데요. 문화 외에 작가님께서 한글에 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A

매일 시도하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글자에 ‘감정’을 담아내는 것인데요. 우리는 노래를 들을 때 감정선에 맞춰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교류하잖아요. 글자 또한 마찬가지로 정보와 감정을 동시에 담아 전달하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준비하고 계신 작품 중 한글과 관련된 작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평소 누리소통망에 올리는 작업에 대해 제가 어떤 생각으로,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생각하는 것을 그렸을 뿐이고 제 작품을 보는 사람이 정답지를 본 것처럼 같은 생각만 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표현한 감정을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때, 그 다른 생각을 보는 것이 즐거워요. 따라서 진짜 일기처럼 어떤 길을 걸었고, 어떤 것을 보았는지, 그리고 그 순간마다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적어서 하나의 일기장을 만드는 작업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작가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한글을 하나의 사진기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사진으로 기념하는 것처럼, 저도 그날의 기분 또는 제가 보고 들은 내용을 하나의 글자 이미지로 남기는 거예요. 저의 직업이자 취미 생활을 만들어 준 ‘한글’에 대해 소중하게 느끼고 있으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김정진 디자이너의 이름 ‘김정진’의 타이포그래피. 두 개의 김정진 단어가 세로쓰기 되어있으며, 오른쪽의 ‘김정진’은 거꾸로 뒤집혀 있다. 거친 질감 느낌이 나도록 효과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