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6호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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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셔츠에 검은색 정장 재킷을 입은 최귀성 디자이너가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살짝 미소짓고 있다. 그는 자연스럽게 가르마를 탄 긴 파마머리이며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최귀성 디자이너 주변으로 그가 디자인한 서명이 적혀있다. 하얀 셔츠에 검은색 정장 재킷을 입은 최귀성 디자이너가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살짝 미소짓고 있다. 그는 자연스럽게 가르마를 탄 긴 파마머리이며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최귀성 디자이너 주변으로 그가 디자인한 서명이 적혀있다.

반갑습니다 “한글, 정체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자”
굿사인 대표 및 서명 디자이너 최귀성

한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서명’.
최귀성 디자이너는 각자의 성향을 고려한 서명 디자인을 통해
개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한글로 서명을 디자인할 때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그에게서
서명 디자인 속 한글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책상 앞에 앉은 최귀성 디자이너가 노트북으로 무언가 작업하고 있다. 그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재킷을 입고 있다. 그의 뒤로는 나무 선반이 보이고,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반갑습니다. 국내에서 17년째 서명 디자인 전문업체 굿사인을 운영하며 멋진 서명을 만들어주는 최귀성이라고 합니다. 서명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실 것 같은데요. 회사 로고를 만들 때도 디자이너에게 맡겨 아름답게 제작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개개인의 이름이 가진 상징성이 매우 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장보다 서명이 더 중요해지다 보니 꼭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아니어도 풍미 있고 멋진 서명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평생 습관처럼 써오던 자신의 필체를 바꾸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대신 디자인해드리죠.

서명 디자이너로 일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연기자 정여원이 무릎을 팔로 감싸 안은 뒤 팔에 기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긴 갈색 머리에 흰색 니트와 흰색 레이스 치마를 입고 있다. 그녀의 사진 오른쪽 하단에는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서명이 적혀있다. 정의 모음과 받침 이응을 합해 하트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경기장에서 탁구선수 정영식이 탁구 경기를 펼치고 있는 사진이다. 그는 남색과 형광 연두색, 형광 주황색이 섞인 유니폼을 입고 눈앞에 떠 있는 탁구공을 치려는 듯 탁구채를 뒤로 뺀 채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의 사진 왼쪽 상단에는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서명이 적혀있다. 서명에는 사과 그림이 활용되었다.

▲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연기자 정여원(왼쪽)과 탁구선수 정영식(오른쪽)의 서명
(사진 제공: 최귀성 디자이너)

어릴 때부터 글자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쁜 글씨체를 보면 사진을 찍어두거나 스크랩했죠. 다양한 글자의 조합을 통해 서명 디자인을 연구하고 제작하면서 수많은 서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걸 누군가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서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서명 디자인 제작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의뢰하시는 분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작업량이 늘면서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에게서도 의뢰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게 되면서 서명 디자이너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고요. 17년간 서명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이름을 들으면 모두 알만한 유명 연예인, 운동선수 등 많은 분의 서명도 디자인했답니다.

개인의 성향, 직업 및 취향에 맞추어 서명을 디자인하시는데요.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두운 색상의 탁자 위에 스케치북이 놓여있다. 최귀성 디자이너의 손이 스케치북에 다양한 디자인의 서명을 적고 있다. 그의 손 주변으로는 그가 디자인한 서명들이 떠다니고 있다.

1차로 작업할 때 기본적으로 고객의 연령대를 고려해요. 나이에 따라 서명의 난이도가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젊은 분들은 대체로 개성 있고 화려한 디자인을 선호하시고, 연령층이 높아질수록 무게감과 품격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선호하세요. 성별도 중요합니다. 여성분들은 대체로 매끄럽고 귀여운 곡선 디자인을 선호하세요. 물론 회사 대표라면 또 다르지만요. 반면 남성분들은 직선이 들어가서 힘이 느껴지는 서명을 원하세요.

직업도 생각해야 하죠. 회사 결재란에 서명하는 경우 결재란이 정사각형이기 때문에 그 비율에 맞는 서명이 필요합니다. 회사 대표일 경우는 공문서, 홈페이지 같은 곳에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냥 휘갈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이 드러나면서도 품위 있는 디자인을 원하시고요. 예술가분들은 작품과 서명이 어울려야 해서 작품 소재와 느낌을 고려해 디자인합니다.

이렇게 필요한 정보를 받으면 고객 취향에 맞도록 디자인해드립니다. 개개인의 귀한 이름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보니 신중하게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서명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김고이’ 서명. 이의 모음이 활처럼 휘어있다.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은정’ 서명. 글자 가운데 사람이 팔다리를 뻗고 서 있는 느낌을 준다.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임예빈’ 서명. 임의 자음 미음과 빈의 자음 니은이 강조되어 있다.

▲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한글 서명들

‘균형’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렸거나 일관성 없이 끝난 서명은 좋은 서명이 아니에요. 대칭과 비율이 완벽하게 잘 맞아서 균형이 잡히면 사람들은 ‘멋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객의 이름을 받으면 먼저 서명의 전체적인 균형감을 생각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한글 서명 디자인 작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객 중 80세 가까이 되신 분이 계셨는데요. 그분은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멋지게 서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무엇보다도 따라 하기 쉽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셨죠. 그분의 요청대로 디자인해드렸고, 직접 따라 써보실 수 있도록 함께 드리는 연습장을 ‘파일 형태’가 아닌, ‘출력물’로 우편 발송해드렸습니다.

또 손주의 이름으로 의뢰하는 분도 계셨어요. 본인 손주가 지금 세 살인데,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 담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셨죠.

영어, 한자, 한글 등 다양한 문자로 서명 디자인을 하고 계신데요. 다른 문자들과 비교했을 때 한글 서명이 가지는 특징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또한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한글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문웅철’ 서명. 글자 문이 강조되어 있으며, 철의 자음 리을의 끝이 길게 늘어져 있다.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웅철’ 서명. 글자 웅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

▲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인물 서명 '문웅철'과 '웅철'

한글 이름은 디자인할 수 있는 가짓수가 무궁무진해요. 서명이 끝날 때 영어는 마감 부분이 거의 비슷하지만 한글은 마감 모양도 다양합니다. 한글은 초성·중성·종성 등 구성 요소가 많잖아요. 초성이나 종성 등에 포인트를 줘서 전체의 모양을 살려낼 수 있죠. 자모음 모양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을 조금만 살려주면 같은 이름이라도 굉장히 다른 모양으로 디자인돼요. 또 한글은 쓰기가 쉬워요. 서명은 너무 쓰기 어려우면 안 되거든요. 반면 한자는 한글과 비교했을 때 획이 너무 많죠.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동윤’ 서명. 동의 자음 이응 안에 윤이 들어가 있다.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박시윤’ 서명. 박의 비읍과 윤의 니은이 동그란 곡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시윤’ 서명. 시의 시옷이 별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 최귀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윤'으로 끝나는 한글 서명들

한글은 획이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있고, 위에서 말했듯 글자마다 각각 다른 자모음이 배합되어있어서 서명으로 만들었을 때 다른 문자들보다 더 아름답거든요. 그래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문자는 한글이에요. 저는 한글로 서명을 만드는 것이 다른 문자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예뻐 보이는 데다가 의미를 담기에도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서명을 디자인해드릴 때 한글 서명 80%, 영어 서명 20% 비율로 예시를 만들어드리는데요. 고객의 90% 이상이 한글 서명을 선택하세요. ‘제 이름의 한글이 이렇게 예뻐요?’라고 얘기하시면서요.

‘작가님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에게 한글은 ‘정체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예요. 한글 이름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잖아요. 저는 이름을 디자인할 때 단순히 글자를 디자인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분신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서명은 대표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한글은 이러한 정체성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낼 수 있는 문자랍니다.

*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