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마을은 유고 보존 가옥에서 861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30여 분 거리
- 섬진강변 자전거길(국토종주길)을 따라 자전거 이동 시 약 1시간 거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원한 청년’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그러나 시인 본인은 일본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해 시집의 출간을 볼 수 없었다. 당시 이 시집은 그의 벗 정영국 교수가 원고를 보존해 시인의 삶을 알리고자 출간했다고 한다. 한 권의 시집이 완성돼 세상에 나올 때까지 숨죽이던 곳은 매화로 유명한 고장 광양이다. 시인이 자취를 찾아 광양의 윤동주 유고 보존 가옥을 찾아갔다.
시(詩)를 품은 집, 윤동주 유고 보존 가옥
전남 광양 섬진강변의 작은 마을 망덕리. 팔공산에서 흘러온 섬진강 물줄기가 남해와 합쳐지는 망덕포구 앞에 1925년 지어진 집 한 채가 서있다. 나무로 대를 세운 창호문이 보이고 마루 공간이 널찍한 것은 전형적인 한옥의 모습이지만, 일본식 목조 건물의 느낌도 공존하고 있다. 양조장과 주택을 겸하고 있는,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그 옛날의 점포 주택이다. 하지만 이 곳에는 고택이 갖는 가치를 뛰어넘는 특별한 사연이 숨어있다.
▲ 1920년대 목조 건물 양식으로 지어진 윤동주 유고 보존 가옥
▲ 널장을 뜯어 원고를 보관한 마룻바닥
윤동주 시인과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에서 청년기를 함께 보낸 정병욱 교수(1922~1982)는 같은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글을 공부하면서 서로의 시상(詩想)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한 글벗이었다. 이후 윤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두고 평소 써둔 열아홉 편의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일본 사람들에게 고초를 당할까 염려한 어른들이 발간을 말렸고 단 세 권의 책을 직접 제작해 이 중 한 권을 정병욱 교수에게 선물했다.
시인이 일본으로 유학길을 떠난 뒤 정 교수는 학도병으로 징집됐고, 앞날을 알 수 없게 되자 자신이 보관하던 자필원고를 본가에 맡긴다. 그의 어머니인 박아지 여사는 시시때때로 찾아와 공출을 요구하던 일제에 발각될 것을 염려해, 마루 널장을 뜯고 항아리 속에 비단 보자기로 싸서 원고를 숨겨놓았다.
돌아오지 못한 시인의 유고만 남아, 1948년 시집 간행
다행히 정병욱 교수는 구사일생으로 고향 땅을 다시 밟게 됐지만, 윤동주 시인의 원고는 유고(遺稿)가 돼버렸다. 일제의 패망으로 독립이 된 뒤 정 교수는 윤 시인의 유고 31편을 모았고, 마침내 1948년 간행한 시집이 바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서시’, ‘자화상’, ‘별 헤는 밤’ 등의 대표작은 유고가 이곳에서 보존되지 않았다면 그 존재조차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948년 1월 30일에 출간된 시집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2층의 상설전시실 ‘한글이 걸어온 길’에 방문하면 시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젊은 시절의 윤동주 시인(좌)과 정병욱 교수(우)
▲ 국립한글박물관이 전시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봄을 알리는 가장 빠른 꽃, 매화
보존가옥에서 섬진강변을 따라 차로 약 30여 분만 올라가면 봄철 만개하는 매화로 유명한 매화마을에 당도한다. 매 3월 무렵 꽃바람이 부는 이곳 매화마을에는 희고 빨간 꽃잎이 우수수 흩날려 흡사 벚꽃이 낙화하는 모양새와 비슷하다. 하지만 매화나무는 벚나무와 생김새가 다를뿐더러 놀랄 만큼 진한 향기를 퍼뜨린다. 품종에 따라 붉은색을 띠는 홍매와 흰색의 백매가 있고, 매화꽃이 진 뒤 5월부터는 매실이 열리기 시작한다.
▲ 꽃망울을 터뜨리는 홍매와 백매
▲ 꽃잎의 모양새가 바르기로 유명한 매화
▲ 동산 곳곳에 핀 매화
매화마을은 지리산계곡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고장으로, 산책로 길이가 28km에 달한다. 마을에 오르기 전 아래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매화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 반하고,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매화 꽃잎이 뽀얀 안개처럼 퍼진 마을과 그 마을을 애둘러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의 장관에 반한다.
▲ 매화 가득한 풍경의 매화마을
따스한 봄 햇살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5만여 평의 마을 부지를 가득 채우는 풍경을 보고자 매년 1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더불어 ‘취화선’, ‘다모’ 등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외에도 매화마을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난다. 청매실농원에는 매실을 넣은 고추장과 장아찌 등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2,000여 개의 항아리들이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다. 또, 산책로 곳곳에는 매화와 관련된 시비를 세워놓아 김영랑 시인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등 다양한 시와 매화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