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 11.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읽고 말할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의 한글 《훈맹정음》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 김영일 교수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배이셔도

우리의 문자가 없어 백성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세종대왕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로부터 480여년 후, 시각장애인 교육기관 제생원에 근무하던 송암 박두성 선생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반포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영일 교수를 만나 《훈맹정음》의 창제 배경과 원리에 대해 들어봤다.

Q. 안녕하세요, 김영일 교수님. 국립한글박물관 웹진 독자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영일
김영일 교수
국립한글박물관 온라인 소식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영일 교수입니다. 제 소개를 하면서 시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저는 어릴 적 외상으로 인하여 완전 실명한 뒤 목포에 있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처음 점자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후 초중고, 대학, 대학원을 거쳐 미국 유학생활까지 점자는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2001년부터는 조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 점자가 없었다면 이 많은 학업 과정을 수행하고 나아가 사회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일반적으로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문자라는 인식이 강한데요, 점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신다면?
▲ 손수점자를 손으로 찍는 김영일 교수
김영일
김영일 교수
대중은 점자에 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글자’라는 정도죠. 어렴풋이 생각하기로 ‘한글을 오돌토돌하게 튀어나오게 만든 것이 아닐까?’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가령 기억의 모양 ‘ㄱ’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촉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죠. 하지만 점자는 정확히 말해 일반인이 사용하는 문자와 다른 모양을 갖춘 별도의 약속기호입니다. 일반적인 한글의 모양새가 아닌 것이죠.

이외에도 모든 나라가 통일된 점자를 가지고 있으리라 추측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점자는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 더 정확히는 어떤 문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저 역시 유학을 위해 미국에서 사용하는 점자를 배웠으며, 독일, 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점자를 접하기 위해서는 배워야했죠.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래로 한글을 사용하고 있기에 점자 역시 한글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훈맹정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세계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한 칸에 여섯 개의 점을 사용해 조합하여 문자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Q. 《훈맹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 선생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김영일
김영일 교수
송암 박두성 선생은 지금의 사범대학에 해당하는 한성사범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교사였습니다.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 교사로 생활하다가 1913년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취임해 맹인교육에 전념했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이미 점자가 있었습니다. 평양에서 사용하던 사점형 점자인데,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평양맹아학교를 설립한 홀(Hall, R. S.) 여사가 도입한 것이었죠. 그런데 박두성 선생은 제생원에서 근무하며 일본에서 사용하는 육점형 점자에 대해 알게 됐고, 이것이 한글에 더욱 알맞은 점자 형태라 여기게 됩니다. 때마침 시각장애인 제자들이 박두성 선생께 한글을 활용한 점자를 제작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되면서 점자 개발을 시작합니다.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은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1920년부터 1926년까지 6년여간 12개의 점자 안을 개발하고 연구했으며, 이를 비교분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점자 체계를 찾아냈습니다. 이러한 협의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이 지금 시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훈맹정음》입니다.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세상에 내놓았고, 지금까지도 이날을 ‘점자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Q. 《훈맹정음》의 원리와 특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세요.
김영일
김영일 교수
《훈맹정음》은 여섯 개의 점자 칸을 활용해 그 안에 자음, 모음, 약자, 문장부호, 숫자 등을 담은 만든 63개의 기호입니다. 흔히 《훈맹정음》의 자음은 ‘기본점의 원리’를, 모음은 ‘대칭성의 원리’를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음 ‘ㄱ’의 경우 네 번째 점을 기준으로 해 ‘ㄴ’은 첫 번째 칸에 점을 추가하고, ‘ㄷ’은 두 번째 칸에 점을 추가한 형태입니다. 네 번째 칸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런 기본점의 원리는 ‘ㅁ’과 ‘ㅂ’ 그리고 ‘ㅅ’, ‘ㅈ’, ‘ㅊ’ 등 연관성이 깊은 자음을 표기할 때 함께 적용됩니다. 모음에는 대칭성을 활용했습니다. 아래 표의 ‘ㅏ’와 ‘야’를 보시면 모양이 대칭한다는 점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점자의 원리를 설명하는 김영일 교수 또한 점자는 한글과는 달리 한글 풀어쓰기에 가까운 문자입니다. 한글은 아랫부분에 받침을 쓰지만 점자는 옆으로 늘어뜨려 씁니다. 이러다 보면 받침자음과 다음 글자의 초성 자음이 연이어질 수 있기에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을 구분해주고 있습니다.

《훈맹정음》은 본래 한글을 기반으로 연구한 점자이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입니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중일 삼국 중 정보화 시대에 가장 앞서가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인 타자 속도에서부터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글자를 지닌 한자는 입력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글은 손쉽고 빠르게 입력할 수 있습니다.

점자 역시 우리의 《훈맹정음》이 가장 빠른 입력속도를 자랑합니다. 글자를 찾거나 변환할 필요 없이 딱딱 맞아떨어지게 입력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음먹은 사람은 3개월가량 노력해 배운다면 점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됩니다.

한글점자표

1. 자음, 초성, ㄱ: 4점, ㄴ: 1 4점, ㄷ: 2 4점, ㄹ: 5점, ㅁ: 1 5점, ㅂ: 4 5점, ㅅ: 6점, ㅈ: 4 6점, ㅊ: 5 6점, ㅋ: 1 2 4점, ㅌ: 1 2 5점, ㅍ: 1 4 5점, ㅎ: 2 4 5점, 된소리: 6점, 
종성, ㄱ: 1점, ㄴ: 2 5점, ㄷ: 3 5점, ㄹ: 2점, ㅁ: 2 6점, ㅂ: 1 2점, ㅅ: 3점, ㅇ: 2 3 5 6점, ㅈ: 1 3점, ㅊ: 2 3점, ㅋ: 2 3 5점, ㅌ: 2 3 6점, ㅍ: 2 5 6점, ㅎ: 3 5 6점

2. 모음, ㅏ:1 2 6점, ㅑ: 3 4 5점, ㅓ: 2 3 4점, ㅕ: 1 5 6점, ㅗ: 1 3 6점, ㅛ: 3 4 6점, ㅜ: 1 3 4점, ㅠ: 1 4 6점, ㅡ: 2 4 6점, ㅣ: 1 3 5점, ㅐ: 1 2 3 5점, ㅔ: 1 3 4 5점, ㅚ: 1 3 4 5 6점, ㅘ: 1 2 3 6점, ㅝ: 1 2 3 4점, ㅢ: 2 4 5 6점, ㅖ: 3 4점, ㅟ: 1 3 4점, 1 2 3 5점, ㅒ: 3 4 5점, 1 2 3 5점, ㅙ: 1 2 3 6점, 1 2 3 5점, ㅞ: 1 2 3 4점, 1 2 3 5점

Q. 《훈맹정음》 창제 전과 후의 차이가 굉장히 클 것 같은데요?
김영일
김영일 교수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에는 조선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배워야 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조선어, 일본어, 조선 점자, 일본 점자까지 총 네 개의 언어를 배워야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홀 여사의 사점식 점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더 컸을 것입니다. ‘평양점자’로 불린 사점식 점자는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을 표기하는 데 두 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아 문자로서 결함을 갖고 있어 점자로서의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점자를 갖게 된 것은 박두성 선생과 제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 학생들의 입장에 최대한 공감하고 학생들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문자를 만드는 것에 평생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현실의 주어진 조건에 안주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의 미래를 위해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고 고친 분이지요. 그가 마련한 교재용 점자 자료만 70여 종에 달하고 나아가 직접 사재를 털어 지방에 통신 교육까지 실시했던 분입니다.
Q.《훈맹정음》도 언어의 변화와 함께 꾸준히 변화되어 왔을 것 같은데요?
김영일
김영일 교수
1926년 《훈맹정음》이 반포됐지만,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라는 민간기관에서 만든 것이기에 공공성이 없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히도 1997년 국가 공인됐으며, 처음 제정된 한국점자규정은 2006년도에 1차 개정됐고, 금년에 2차 개정됐습니다. 한글 문장부호가 바뀌듯 변화하는 언어규범에 맞춰 점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Q. 실제 교육 현장에서 《훈맹정음》은 어떻게 교육되고 있나요?
김영일
김영일 교수
특수교육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교과로서 국어가 있고, 그 안의 읽기와 쓰기 영역에 점자가 포함돼 있습니다. 때문에 특수교육을 받은 시각장애인 학생은 모두 국어의 일부로서 《훈맹정음》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도실명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도실명자들이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도해줄 수 있는 교육인력과 제도 확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Q. 《훈맹정음》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요?
김영일
김영일 교수
지금은 지식정보사회입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디지털로 생성된 정보들이 소비되고 있지요. 시각장애인들은 이런 세태의 변화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마트폰, 태블릿 등이 활성화되고 터치스크린이 보편화되면서 시각장애인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그러나 위에서 설명 드렸듯이 《훈맹정음》은 디지털화하기에 꼭 알맞은 점자입니다. 점자 기술개발에 노력한다면 시각장애인들이 받는 디지털 소외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도 다양한 기능을 가진 점자정보단말기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지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높은 가격 탓에 쉽사리 구입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생활에 큰 편의를 더해주겠지요.

마지막으로 점자 표기의 확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가령 엘리베이터에 점자 표기가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층수조차 누르기 버겁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점자가 표기되지 않고 있는 의약품에 대한 정책 확보가 시급합니다.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모든 약품에 점자가 적혀 있지만, 우리나라는 해당되지 않아 약물 오남용의 위험이 언제나 뒤따르고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훈맹정음》의 가치와 의의는 어떤 것인가요?
김영일
김영일 교수
비장애인 학생들은 공부할 때 자신만의 정리노트를 만들거나 연습장에 메모를 하면서 암기하곤 합니다. 한 번 바꿔서 생각해볼까요? 읽기와 쓰기가 없이 시험공부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잘 외워지지도 않고 효율도 크게 떨어지겠죠. 점자가 없다면 시각장애인들은 오직 말하기와 듣기만으로 학업을 비롯해 생활 속 모든 정보를 처리해야 합니다.
물론 듣기와 말하기도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정보의 정확성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가령 유명한 아파트인 ‘e편한세상’을 예로 들면, 귀로만 들어서는 ‘이편한세상’인지 ‘e편한세상’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없죠. 문자가 없다면 교육, 취업은 물론 문화 여가생활에 있어서까지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훈맹정음》을 가르치고 발전시키는 데에 큰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자료 《훈맹정음》
한글박물관은 지난 2011년부터 한글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대표하는 유물을 수집해 왔으며, 2014년 개관을 앞두고 박두성 선생의 영애인 박정희 선생께서 기증하신 《훈맹정음》은 2층 상설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더불어 송암 박두성 선생이 직접 집필한 《한글 점자설명서》 원고, 《한글 점자의 유래》 초고본 원고 등 《훈맹정음》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한글박물관은 장애인을 위한 동선안내, 점자블록, 미끄럼방지 부착 계단 등을 설치해 장애인이 방문했을 때 겪을 어려움을 최소화하고자 관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6년에는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인증(BF인증) 최우수등급을 획득하기도 했다.

▲ 한글점자 《훈맹정음》

김영일

김영일 교수 (조선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김영일 교수는 전남 무안 출신으로, 선천성 녹내장이었던 그는 색상과 명암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저시력 상태였으나 8세 때 사고로 두 눈을 다쳐 완전 실명했다. 목포 은광학교(당시 목표맹학교)에 입학해 중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서울 맹학교에 진학했다. 1990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93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에 선발되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8년 만에 벤더빌트대 피바디사범대학 특수교육전공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조선대 특수교육과 교수로 임용돼 교육 및 연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국립장애인도서관장,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전문위원, 광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장애인들의 교육, 정보 접근 및 인권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