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인지 방식
매체의 발달은 인지 방법(embodied cognition)을 바꾼다. 문자 중심으로 정보를 수용했던 시대가 영상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문자 역시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새로운 인지 경험들은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 낸다. 이를 특정한 구성원 내에서 의미를 은폐하기 위해 사용하는 은어와 같이 여기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지 방식을 탄생시킨 매체를 적극적으로 유용한 계층에게서 먼저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줄임말, 초성 표기, 이모티콘이나, 야민정음과 같은 현상들은 이전의 은어나 격이 낮은 비속어와는 맥락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매체의 발달로 인해 나타난 새로운 인지 경험이 만들어 낸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줄임말은 은어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매체의 발달로 인해 확대되었고, 은어로서의 정체성도 희박해졌다. 음성언어로 진행되던 대화가 채팅을 통해 문자로 진행되면서 문자의 입력과 인지는 음성언어가 발화되고 수용되는 것만큼의 즉시성을 요구했다. 채팅에서는 문법의 적확성보다 제시된 메시지에 반응하는 시간의 간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소통에서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기 때문에 줄임말의 사용이 점차 확대되었다. 또한 모바일 디바이스의 경우 초창기에는 엄격한 전송 용량 제한과 과금이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환경에서 기의(signifie)를 경제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모색의 결과로 다양한 형태의 줄임말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이는 한글뿐만 아니라 알파벳을 비롯한 다양한 문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와는 또 다르게 최근의 야민정음과 같은 현상은 한글을 기표(signifiant)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이미지(image)로 인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처음에 문자를 오독하면서 나타났던 현상인데, 여기서 오독은 사실 적확한 표현이 아니다. 오독보다는 오히려 착시에 의해 문자를 새롭게 인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후 착시의 가능성이 있는 문자들을 의도적으로 변용하면서 나타난 현상이 야민정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새로운 조어 방식은 이전에 없었던 기의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던 것에 비해, 야민정음은 기존의 기의들은 그대로 둔 채 기표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결국, 최근 나타나고 있는 한글의 새로운 조어 방식들은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문자를 인지하는 경험들이 다변화되면서 나타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변형된 문자에 대해서만 의미부여와 해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지 방식의 변화가 나타난 원인과 의미들을 아울러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기의를 담아내는 엄격한 기표로서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던 한글이 이미지와 영상을 인지하는 데 익숙하고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생산하며 소비하면서 일상화하는 환경에 의해 새로운 의미의 가능성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어법들은 한글을 파괴하는가
문자에 대한 인지 방식의 변화로 접근하면 새로운 조어법이 한글을 파괴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재고해야 할 영역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 한글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한글은 기본적으로 자음과 모음을 다양한 형태로 조합하여 시각적인 논리에 의해 의미를 형상화하기 때문에 디지털 환경에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는 문자이다. 매체 환경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특징은 제한된 용량에 의미를 담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입력 방식이 비교적 간편하다는 장점을 획득한다. 이는 단순히 문자를 형상화하는 방법의 용이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변용하는 것에도 유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표음(表音) 문자인 한글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변화하는 언어생활을 즉각적으로 반영하여 변화하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한글이 창제되었을 당시의 한글의 형태와 한국어 문법이 정립되기 시작한 20세기 초반, 그리고 현대 한국의 한글 형태를 보면 한글은 그 형식적인 면에서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어 사용자들의 언어 환경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글의 변화는 단순히 단어나 문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음 방식 등의 변화에 따라 자음과 모음이 사라지기도 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맞춤법의 개정에 따라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조어의 형태 역시 달라지는 것은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단순히 현재의 한글 문법상, 현재의 조형 체계에서 벗어났다고 한글에 대한 부정적인 행위라고 진단하는 것은 한글의 특성을 놓고 보았을 때 무의미한 일이다.
물론 현재의 새로운 언어 형태들은 문자가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기호를 해체하고 재정의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언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법칙들과 그것들 위에 구축된 사회적 구조에 대한 일종의 부정과 개성적인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글에 대한 모독이나 폄하에 의한 훼손의 행태를 내포한 결과인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글의 새로운 조어 방식들은 한글의 자음과 모음 체계를 오히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가운데서 발생한 유희의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글의 우수성이나 전통성이라는 유토피아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제도권의 모습과 문자의 사용 환경이나 텍스트 중심 시대의 종식 등의 급격한 변화의 위협적인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나타나게 된 일종의 헤테로토피아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이는 특히 야민정음과 같은 신조어 형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야민정음에서 나타난 기표의 해체와 재조합은 문자를 완전히 흩어놓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글 자음과 모음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기호성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유사한 기호들로 대체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양한 파생의 형태로 보아 기표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제시하는 과정에서 영어의 알파벳이나 한자 등이 섞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유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한글이 가지고 있는 문자로서, 그리고 시각기호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가 문자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그로 인해 새롭게 구축된 의미들의 세계라고 했을 때 이는 충분히 유의미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의 인지구조는 문자로서의 기표를 인식하고 그 기의를 파악하는 것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문자를 기호화하고 그것 자체로 새로운 시각정보로 파악하는 것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한글의 새로운 조어법들은 오히려 매체의 발달이 가속화되고 다변화될 미래 사회에서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래의 한글, 미래의 가능성
그 변화의 편린들은 이미 우리에게 도래해 있다. 한글의 새로운 조어 형태들에 대한 의미부여가 단순히 낙관론이나 급진적인 구조의 해체를 지향하는 시각에서 견지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러한 현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매체 환경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변화된 매체 환경은 문자의 효용을 점차 축소시키고, 이미지와 음성 언어가 대체하고 있다. 실제 현재 십 대들은 네트워크를 통해서 정보를 취득하면서도 포털 사이트나 텍스트 중심의 SNS 등이 아니라 유튜브(YouTube)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음성 언어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비서 시스템인 애플의 시리(siri)나 구글의 어시스턴트(assistant) 등의 발전은 음성 언어의 효용성을 점점 더 부각시킬 것이다. 이와 같은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층위로 문자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인지의 방식을 요구받게 될지도 모른다.

문자를 시각 기호화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시각 기호로 작용하는 의미들이 언어와 무한한 관계를 맺는다고 설명한 푸코의 인식은 한글의 새로운 인지 방식과 조어 방식이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파생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물론 같은 맥락에서 언어와 회화가 서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언어체계와 융화되는 것은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기존의 한글 문법체계와 표기법이 접근하지 못했던 영역들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시대, 기술 발달의 첨단화로 인해 새로운 소통 방법론을 요구받게 될 시기에 문자와 시각 기호의 인지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으로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매체 환경의 발달에 따라 새롭게 발생한 현상들을 충분히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제도권과 교육 관련 이슈들로 귀결시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들이 제시하는 의미와 그로 인해 그려진 궤적들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경험들이 이후에 새롭게 변화될 언어의 장(場)에서 다양한 대상들과 소통해야 할 우리의 의미 해독 능력을 제고시켜줄 방법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조어 형태들이 가지고 있는 은어적 속성들은 우려스러운 부분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타자를 대상화하거나 낮잡는 의미들이 새로운 형태로 조형되면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판단들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활용되는 예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언어 형태에 의해 나타난 현상이라기보다는 언어 사용자와 새로운 형태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부족 뒤에 숨어 은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조어 형태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사회적인 관심을 통해서 의미들을 왜곡하여 은폐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해체와 재맥락화를 통해 부여된 의미에 대해 사용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교육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한글 조어법들에 대해 경직된 기준에 의한 판단보다는 오히려 정확한 비평, 즉 정체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변화하게 될 미래의 언어 환경에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한글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용 단국대학교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
한국SF연구자로서 텍스트릿(Textreet)에 몸담고 웹소설과 장르문학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이들이 지닌 가치를 찾아 의미를 부여하고 장르비평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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