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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박웃음 2019. 4. 제 69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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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소식① / 책사람 강연: 순 한글신문, 독립신문의 창간 22번째 책사람,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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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소식①

    책사람 강연: 순 한글신문, 독립신문의 창간
    22번째 책사람,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영희 교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책사람은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념하기 위해
    ‘순 한글신문, 독립신문의 창간’이라는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강연에 앞서 ≪독립신문≫에 대해 알아볼까요?

    독립신문 창간호 첫 페이지 사진▲≪독립신문 창간호≫, 국립중앙도서관 이미지

    ≪독립신문≫이 있기 전에는 어떤 신문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1883년 10월 31일 창간한 ≪한성순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으로 조선정부가 창간하여 열흘마다 발행되다가 이듬해 12월 4일 갑신정변으로 발행이 중단되었습니다. ≪한성순보≫를 계승한 ≪한성주보≫도 있었습니다. 주보와 순보 모두 정부가 신문 발행을 위해 설립한 박문국에서 발행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순보는 한자 전용이었고 주보는 한자와 한글 기사가 섞여 있었습니다. 위의 두 신문은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웠습니다.

    한성순보의 첫페이지 사진 한성주보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큰 한자로 쓴 사진

    ▲≪한성순보≫, ≪한성주보≫, 국립중앙도서관 이미지

    ≪독립신문≫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독립신문≫은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이 정부 자금을 지원받아 창간한 신문입니다. 초기의 ≪독립신문≫은 크기가 가로 22cm, 세로 33cm이며 총 4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면~3면은 한글판, 4면은 영문판 <The Independent>입니다. 한글판은 국민들의 계몽 역할을, 영문판은 우리나라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발행했습니다. 1898년 7월 이전에는 주 3회(화, 목, 토) 발행했으며 그 이후에는 매일 발행되다가 1899년 12월 4일자로 폐간되었습니다. 창간 초기 ≪독립신문≫의 값은 정기구독자의 경우 월 12전, 부정기 구독자는 한 부에 1전이었습니다.

    ≪독립신문≫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신문의 중요 기능인 비판 정신이 잘 살아있는 신문이었습니다.
    기존 신문들이 정부 창간 신문이기에 신문의 비판 기능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독립신문≫은 논평과 비판을 신문의 중요 기능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한 신문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언론들이 그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기 위해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페이(밝히)겠다.(창간호 논설)

    둘째, 신문을 통해 국민들을 계몽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나라가 강해지려면 국민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에 ≪독립신문≫을 통해 개화사상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국 인민이 모두 학문이 있고 지식이 있게 되어야 그 나라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자주 독립을 보호하며 사, 농, 공, 상이 늘어가는 법이다. (1897.8.5. 논설)

    여자가 남자만큼 학문과 지식이 있으면 집안 일이 잘 되고, 자식교육이 충실해질 것이라면서, 이러한 여성의 직무는 남자들의 일보다 덜 중요한 것이 아니며 특히 나라의 후생들의 교육이 여성의 손에 달려 있다. (1896.9.5. 논설)

    신문 한 부를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읽기도 했으며 양구군수가 장에 나와 사람들에게 독립신문을 읽어준 사례가 보도(1898.11.9. 제1면)되기도 했습니다.

    ≪독립신문≫이 국민의 개화와 교육을 위해 국민이 읽을 수 있는 한글로 소식과 지식을 전했던 신문이기에 기존의 신문보다 높이 평가 되는 것 같습니다.

    셋째, 민간신문의 발간을 자극하여 한국의 언론발달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정부 지원금으로 시작하였지만 구독료, 광고료 등으로 재정적 독립을 하여 대중신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다른 신문의 본보기가 되어 ≪독립신문≫ 이후에 ≪매일신문≫, ≪뎨국신문≫, ≪황성신문≫ 등의 많은 신문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독립신문의 영문판인 The Independent 첫 페이지 사진▲ <The Independent>, 국립중앙도서관 이미지

    ≪독립신문≫이 한글 전용 신문인 건 알고 있습니다만
    영문판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어떤 이유로 영문판을 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영문판이 있다는 점을 놀라워하시는데요. 그 당시 우리나라 상황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기 위해 영문판을 발간했습니다. 초창기 신문에서는 1면만 영문판이다가 1897년 1월 5일부터는 영문판을 따로 분리하여 국문판과 영문판 각기 4면씩 발행했습니다. 영문판의 독자는 주로 국내의 외국인들, 특히 외교 사절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상황을 알림으로써 열강의 세력균형을 유지하여 조선의 독립에 기여하려 했던 것입니다.

    강연에서 ‘독립신문 창간호 읽기’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글박물관 입장에서 독립신문 창간호는 매우 특별합니다.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에서 우리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글전용을 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띄어쓰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띄어쓰기가 너무나 당연하죠.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띄어쓰기 시도는 있었지만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띄어쓰기가 이루어진 것은 ≪독립신문≫부터입니다. 그런 이유로 ‘독립신문 창간호’를 함께 읽으며 ≪독립신문≫의 의미와 그 영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독립신문≫ 창간호 말고도 다른 호를 보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네. 국립한글박물관 1층 한글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독립신문』 영인간행본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번 책사람 주제를 더 알고 싶으시다구요?

    그럼, 22번째 책사람 강연 <순 한글신문, 독립신문의 창간>을 신청해주세요.

    22번째 책사람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겸임교수 김영희

    책사람 강연 강사 김영희 교수의 프로필 사진▲ 김영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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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김영희, “『독립신문』의 지식 개념과 그 의미”, 『한국언론학보 57(3)』, 한국언론학회, 2013.
    정진석, 『한국 신문 역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3.
    채    백, 『신문』, 대원사, 2003.
    김유원, 『100년뒤에 다시읽는 독립신문』, 경인문화사, 1999.
    홍윤표, 『한글 이야기』, 태학사, 2013.
    KBS제작단, 『독립신문 100주년의 역사적 의미』, KBS 영상사업단, 1996.

    원고 : 자료관리팀 이윤아 사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