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제 94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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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서양식 복장을 차려입은 안나가 손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챙이 넓은 짙은 푸른빛 모자를 쓰고 있으며 풍성한 레이스가 달린 하얀색 블라우슬 입고 있다. 손에는 살이 비치는 얇은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허리를 꽉 조이는 코르셋 모양의 하늘색 치마를 입고 있다. 뒤로는 드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한글은 처음이지?

“한글을 배우며 달라진 나와 마주하곤 해요”

칼란다제 안나 (조지아)

우리에게 와인으로 익숙한 나라 조지아에서 온 안나는 한류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으로
한국을 알아가며, 동글동글한 모양의 모국어와 달리 직선 형태인 한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키워온 한국 방문의 꿈은 그녀가 대학교 때에 이루어졌고,
가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한국에서의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조지아에서는 별명이 ‘집순이’일 만큼 소극적이었지만,
지금은 ‘활발 그 자체’인 성격으로 변했다는 안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저는 조지아에서 온 안나라고 합니다. 한국 여학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던 <꽃보다 남자>를 기억하시나요? 제가 한국에 온 건 그 드라마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 역시 극 중 주인공들에게 푹 빠졌던 적이 있답니다. 조지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국의 가족 문화를 접하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죠.

윤동주 시인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책 표지. 하얀색 바탕에 학사모를 쓴 윤동주 시인의 초상화가 흑백으로 새겨져 있다. 그 밑에는 커다랗게 ‘윤동주’라고 적혀있으며, 초상화를 기준으로 위, 아래에 빨간색 줄이 그어져 있다. 책 하단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고 詩’라고 적혀있다. 상단에는 조지아 국가의 글자가 적혀있다. 누리소통망 속 한 게시글 캡처. 조지아 글자로 내용이 길게 작성되어 있다. 조지아의 글자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에 ‘선물 감사합니다~^^’고 적혀있으며 ‘#한양 #특강 #조지아문화 #조지아 #미국조’가 적혀있다.

▲ 조지아의 글자

졸업 가운과 학사모를 입은 안나. 학위증과 꽃다발을 든 채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안나의 뒤로 푸른 잔디밭과 커다란 대학 건물이 보인다. ▲ 한양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안나

그 작은 관심의 씨앗이 제 안에서 점점 자라나, 당시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며 한국어 공부를 병행했답니다. 그 대학에 한국인 교수님이 계셨기 때문에 더욱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처음 한글을 익히기 시작했을 때, 직선이 많은 글자 모양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조지아의 글씨는 아주 동글동글하고 귀엽거든요. 참, 지금 여러분이 메신저나 SNS 등에 쓰는 ‘하트 모양의 특수 문자’ 중에 ‘ო’라는 조지아 글자가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제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어찌나 재미있던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었답니다.

그리고 2016년, 한국교류재단 프로그램에 참여해 연세대학교 어학 당에 다니며 약 1년간 한국에서 지낼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조지아 에서 이미 한국에 대한 뉴스도 탐독하고, 블로그나 유튜브 등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잘 적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2018년 한국 정부 장학생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한양대학교에 들어갔죠. 가끔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놀랐던 건 없느냐’고 질문하지만, 글쎄요. 제가 아무리 드라마로 한국을 접했어도 길거리에 부잣집 도련님이 돌아다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웃음) ‘문화 쇼크’ 같은 것도 없이 자연스레 녹아들었죠. 이웃을 챙기며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나, 장례식에서 조의금을 내는 모습도 조지아의 문화와 닮았거든요.

북촌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안나. 한옥의 기와지붕들이 빼곡하게 보이고 테라스 난간 앞에 안나의 뒷모습이 보인다. 살짝 옆을 보고 있는 그녀는 상아색 반팔 셔츠와 갈색 바탕에 하얀색 물방울무늬가 새겨진 치마를 입고 있다. 물결치는 짙은 금발은 어깨까지 내려와 있으며, 어깨에는 하얀색 가방을 걸치고 있다. 경복궁을 방문해, 한 건물 앞에 서 있는 안나. 짙은 갈색빛 저고리와 검은색 한복 치마를 입고 있다. 저고리와 치마 모두 화려한 금색 자수가 새겨져 있다. 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넘겨 묶었으며 한국 전통 장신구를 달았다. 그녀의 뒤로 넓은 흙바닥이 보이고 탑처럼 생긴 한국 전통 건물이 보인다.

▲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과 경복궁을 방문한 안나

한 모델이 입고 있는 검은색 티셔츠에 알록달록한 색으로 조지아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국기를 중심으로 상단에는 조지아 글자가, 하단에는 영어로 ‘GEORGIA’가 원형을 그리며 적혀있다. 모델은 검은 벨트를 착용하고 회색빛 군복 무늬의 치마와 그 아래 빨간색 바지를 입고 있다. 짙은 금색의 단발머리를 가진 외국인 여성 모델이 연두색 후드티를 입고 있다. 티셔츠 한가운데에는 빨간색 과녁판이 그려져 있고 과녁 위로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상단과 하단에는 빨간색 글씨로 조지아 글자가 적혀있다. 모델은 후드 모자를 뒤집어 쓴 채,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워킹을 하고 있다.

▲ 조지아의 글자를 디자인에 적용한 패션 브랜드 Vetements
(출처: 보그 잡지, Photo: Luca Tombolini, Indigital.tv)

저는 특히 한글로 디자인한 물건이나 한복, 전통을 흠뻑 느낄 수 있는 한옥마을 등을 좋아해요.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하고 전주도 자주 찾는 편이고요. 한글은 디자인적 요소도 훌륭해서 이곳저곳에 많이 쓰인다고 들었어요. 조지아에서도 자국의 글자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의복을 짓기도 해서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요.

이렇게 비슷한 문화를 가진 두 나라지만, 참 신기하게도 제 성격만큼은 180도로 변했어요. 조지아에서는 늘 집에만 있고 혼자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다면, 한국에 와서는 활달한 아가씨로 성장한 것이죠.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예전처럼 정체되어 있기만 하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동아리 활동도 하고,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등 자신을 바꿔나갔어요. 그러자 놀라울 만큼 행복해졌고, 먼 타국이지만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게 되었답니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은 안나. 안나는 연한 살구빛 반팔 티셔츠를 입고 어깨를 좀 넘어가는 금발을 자연스럽게 푸른 채, 카메라를 직접 들어 자신과 가족을 찍고 있다. 안나의 오른쪽에는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연한 분홍빛의 가방을 어깨에 멘 여성이 서 있다. 그녀 역시 어깨를 조금 넘는 금발이다. 여성의 오른쪽에는 한 남자아이가 여성의 팔에 기대어 있다. 금발의 짧은 머리 위로 빨간색 모자를 거꾸로 썼으며,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다. 뒤로는 호수가 보인다. 안나와 그녀의 가족사진.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은 안나와 그 왼쪽에 회색빛 상의와 회색빛 스카프를 두른 여성이 얼굴을 맞댄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여성은 짧은 금발이며 옅게 미소짓고 있다. 둘의 뒤로 푸른 물이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 안나의 가족들

제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어요. 조지아에서는 여성들이 일찍 결혼하는 편이에요. 고등학생 때 약혼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대학생 때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매우 많아요. 하지만 한국은 지속적해서 결혼 연령이 높아졌고, 요즘은 ‘비혼주의’라는 개념도 생겨났잖아요.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놀라웠지만, 저도 자연스레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앞으로도 자기 계발을 하거나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며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요.

또 관심이 가는 분야가 넓어졌어요. 조지아에서는 늘 민얼굴로 다녔는데, 한국에 와서 스킨 케어에 눈을 뜨고 화장품 기업에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그 결과 지금 화장품 분야의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가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한국 친구들이 많아서, 회사 사람들과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한글을 사용할 때만큼은 여전히 어려움을 느껴요. 아마 제 글씨체를 보면 초등학생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악필이거든요. (웃음) 하지만 이것도 노력하다 보면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요.

제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이지만, 유독 지치고 힘든 날은 꼭 찾아와요. 그럴 때는 가수 이하이의 <한숨>이라는 노래를 들어요.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당신의 한숨,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라는 가사에 많은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고는 해요.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한숨’이라는 한글 단어만 봐도 어쩐지 힘이 솟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스칼렛 오하라가 말한 것처럼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뜨고, 다른 희망이 찾아올 것만 같거든요.

사실 저는 미래에 대한 거창한 꿈이나 목표를 세우는 편이 아니에요. 우리의 삶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으니 그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나갈 뿐이에요. 앞으로 평생 한국에서 살지, 아니면 우연한 기회에 다른 나라로 떠날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은 열정적으로 한국과 한글을 사랑하며 지낼 계획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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