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일환 관장이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지으며 정면을 보고 서 있다. 벽에는 여러 개의 네모 칸이 붙어있고 각 네모 칸 안에는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이라는 글이 글자 하나씩 적혀있다.

기획 기사 “국립한글박물관의
새로운 10년을 이끌다”김일환 관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국립한글박물관은 그동안 ‘한글’에 대한 다채로운 전시, 교육,
행사를 선보여 왔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한글이 갖는 가치를 들여다보고,
한글문화가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박물관을 이끌게 된 김일환 관장은 국립한글박물관의
새로운 10년에 대해 어떠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지,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았습니다.

Q.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해에 박물관을 이끌게 된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근무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홉 번째 관장으로 일하게 된 것에 대해 큰 영광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배 관장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이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제가 개인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박물관 가족들과 함께 협력해야 할 일이고, 이용자 분들과 학계 등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과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올해 10월 9일 578돌 한글날은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에 코로나19 이전의 연간 방문객 70만 명 기록보다 많은 100만 명 달성을 2030년까지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첫째, 전시와 문화행사를 통해 한글과 관련된 풍부한 자료를 국민들과 공유하며 함께 즐겨야 합니다. 두 번째, 교육과 연구에 초점을 맞추어 어린이부터 성인, 다문화 가정, 장애인,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제공해야 합니다.

세 번째, 국립한글박물관은 기증 자료들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동시에 국내외 연구자들이 이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더 우수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글의 산업화와 상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민간 분야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으며, 해외 시장에서 한글 기반의 디자인과 상품이 수출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한글과 한글문화 세계화에 기여하고, 세계 문화 속에서 한글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일도 함께 실천하겠습니다.

Q.

관람객들이 국립한글박물관에 방문해 어떤 경험과 지혜를 얻길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관장님은 방문객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국립한글박물관을 찾은 분들이니만큼 한글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인 학교 교육이 아닌, 박물관의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통해 한글의 정서를 체험하고 지식을 쌓기를 희망합니다. 한글 창제의 역사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 실용성, 자주정신이 반영된 한글의 창조 배경을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랍니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일환 관장이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비스듬히 앉아있다. 손은 깍지를 낀 상태이다. 테이블에는 파란색 펜과 하얀색 컵이 올려져 있다. 테이블 뒤로는 검은색 의자가 놓여있다. 그 옆에는 하늘색 화분에 담긴 초록색 식물이 보인다.

또한, 국립한글박물관은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한글문화를 더욱 다채롭고 흥미롭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AI, 증강현실 등 첨단 기법을 적용해 오프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도 한글의 가치를 전파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입니다. 새 정보화 시대에 걸맞은 체험과 경험을 제공하고 한글과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Q.

해외문화원 주재관 생활을 오래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업무를 수행하면서 한글과 관련이 있는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일환 관장이 비스듬히 서 있다. 한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모습이다. 그 뒤로는 전시된 사진 포스터들이 보인다. 김일환 관장의 바로 뒤에는 타자기 사진이 있고 그 밑에는 연도를 나타내는 193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나머지 숫자 하나는 김일환 관장의 몸에 가려져 있다.

한국은 케이팝, 영화, 드라마 등이 중심이 되어 문화적 영향력을 넓혔고, 이는 한국의 역사, 한국의 전통 음악, 특히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미술, 한식, 생활용품 등 생활문화 분야에서도 한류의 영향력이 확산되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확산은 제가 주재관으로 머물던 러시아와 태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인지도와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 한류의 근간이 되는 한국어 문해력과 한글 학습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세종학당재단에 따르면 ’07년 개소 이래 ’22년까지 전 세계 누적 수강생 수가 7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저 역시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 대한 해외의 높은 관심과 애정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수료생 중 상당수는 한국어 능력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 문화, 철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제가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혹시 한국학중앙연구원이나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오직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인터넷과 도서관 자료 등을 검색해 쌓은 지식이었다고 합니다. 일부는 학과 전공을 한국학으로 바꾸었다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가 바로 이런 순간입니다. 비록 제가 그들의 지적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볼 때만큼 가슴이 벅차오른 적은 없습니다. 이는 한국문화의 해외 홍보와 교류에 있어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됩니다.

Q.

러시아에서 활동하시며 과거 연해주의 한인 사회에서 발간된 신문을 발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의 초기 해외 이민 역사는 주로 미국 하와이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연해주와 만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경상도와 함경도 출신의 이민자들이 육로를 통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조선 내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압박을 피해 이주했습니다. 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인 사회가 형성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이곳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때 ‘선봉(뱅가드)’이라는 한국어 신문은 이민자 사회의 소식을 전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 신문은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이주까지 발간되었으며, 그 후계 신문은 러시아어로 발간되었습니다. 이 ‘선봉’은 국내에 개인 소장가나 대학교 도서관이 몇 부 보관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 지인이 1990년대 초반에 구입한 총 11권짜리 양장본의 선봉을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오래전 간행된 것이니만큼 한국어와 한글의 변천사, 한민족 해외 이민사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연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이 이 자료를 기증받아 소장하고, 나중에 디지털화하여 연구소에 제공할 가치가 있는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Q.

최근 세계적으로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립한글박물관이 향후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고, 세계화를 위한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글의 독창성, 과학적 우수성, 그리고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한글이 다양한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고유한 문자가 없거나 현재 사용하는 문자가 해당 언어와 잘 맞지 않는 국가에 한글의 간결함과 쉬운 학습 과정은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며,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과 인내천(人乃天)의 철학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장을 입고 안경을 쓴 김일환 관장이 정면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한쪽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모습이다. 그 뒤로는 세 개의 전시 사진 포스터가 보인다. 가장 왼쪽에 있는 사진은 기다란 기둥 밑에 네모난 돌이 놓여있다. 사진 속 천장에는 붉은색 직사각형과 초록색 직사각형이 번갈아 무늬를 이루고 있다. 사진 하단에는 1536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바로 옆의 사진에는 옛날 문서로 보이는 황토색의 종이가 있고 하단에 1692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가장 오른쪽 사진은 잘려서 보이지 않고 하단의 1756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또한, 전 세계 박물관 협회와 협력하여 한글과 한국어의 발전 및 연구를 촉진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ICOM(국제박물관협의회)과 ICOM 한국위원회의 회원기관으로서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으며, 국립한글박물관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협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지평에서의 교류협력은 국립한글박물관의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한글의 세계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은 이러한 사명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예산, 조직,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직원들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고,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울러 우리 한국문화원뿐만 아니라 각국 유관 기관들과의 직접 교류를 통해 국립한글박물관의 국제적 역할과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자 합니다. 이 모든 노력이 더해져 국립한글박물관이 한글과 한국어의 발전을 위한 중추적인 기관으로서 더욱 성장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04383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국립한글박물관
대표전화 02-2124-6200, 단체 관람 02-2124-6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