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숙_ 케이(K)-컬처의 확산으로 세계인이 한글을 배우고 있습니다. 단순한 문자 학습을 넘어 한글과 한글문화에 담긴 철학과 정신을 어떻게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을까요?
김주원_ 한국어를 배우다 보면 한글은 자연스럽게 함께 학습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라고 할 때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만큼 한국어와 한글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겠지요. 하지만 한글의 철학과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한글을 구별해 설명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과 한글이라는 문자를 배우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의 특성이 있으니까요. 한국어 수업 안에 한글의 창제 원리와 문자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함께 구성하고, 두 영역을 구분해 가르친다면, 세계인들이 한글이라는 문자 자체의 원리와 가치까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임성환_ 한글의 철학과 정신을 세계인과 공유하려면, 한국어 교육도 단순히 말하고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글이 만들어진 원리까지 함께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세종학당이나 한글학교, 해외 대학의 한국어학과 등에서는 주로 한국어 학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한글이라는 문자 자체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교육과 지원도 필요해 보입니다. 예컨대, 한글의 제자 원리를 배우다 보면 모음에 담긴 천지인 사상이나 문자에 담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교육에서 한국의 문학과 홍익인간, 선비 정신, 우리의 유교와 불교문화 등으로 학습의 범위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최홍식_ 최근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졸업식에 직접 참석했는데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단순히 재미로 배우는 게 아니라 한국어와 한글을 정말 깊이 있게 알고 싶어서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도 한국에 가서 한국어를 배울 학생들을 모집하는 프로그램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고 하고요.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려는 수요가 충분한 만큼, 문자뿐 아니라 한글의 정신과 문화까지 배울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마련한다면 한국어를 넘어, 한글 안에 담긴 정신까지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게임 방식으로 언어를 배우는 앱도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수업과 디지털 학습이 함께 확대되고 있는 만큼, 각각의 장점을 살려 한글과 그 안에 담긴 철학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 김주원 한글학회장
고은숙_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한글 정신’은 무엇일까요?
임성환_ 저는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신 ‘편안케 하고자’ 하는 마음, 즉, 한글을 편리하게 사용하게 함으로써 결국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자 했던 ‘편민’의 정신이 지금 우리에게도 가장 중요한 한글 정신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우리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국제화된 오늘날에는 그 대상을 더 넓혀볼 수 있겠습니다. 아직 자신의 문자를 갖지 못한 다른 민족들에게도 한글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우리가 과거에 문자가 없어 겪었던 어려움을 돌아본다면, 한글을 나누는 일 역시 오늘날의 ‘편민’의 정신을 실천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최홍식_ 저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한글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우리말과 한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간판을 보면 영어로만 쓰여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간판을 볼 때마다 ‘최소한 한글을 병기라도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하곤 합니다. 상표 자체가 영어로 등록되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경우라도 한글을 함께 적는 식으로 우리 말을 우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한글 정신은 한글과 우리말의 소중함을 스스로 느끼고 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주원_ 저도 간판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젊은 세대는 한글을 당연하게 쓰고 있지만, 정작 한글이 얼마나 소중한 글자인지 깊이 느껴볼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글의 역사를 배우며 선조들이 한글을 지켜온 과정을 알게 되면, 그 소중함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 수 있을 텐데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한 자긍심이 생기면 외래어 간판과 같은 문제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바꿔 나가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강요받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그 가치를 느낄 때 생기는 것이니까요.
▲ 최홍식 세종대왕기념사업회장
고은숙_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한글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한 이때 한글은 정보기술과 어떻게 만나고 미래 세대에게 어떤 가치와 자산으로 남게 될까요?
최홍식_ 디지털 시대에 이렇게 잘 맞는 문자를 그 시절에 세종대왕께서 어떻게 고안해 내셨는지 생각할수록 경이롭습니다. 음성 인식과 음성 합성 등 말소리를 문자로, 문자를 말소리로 바꾸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글은 디지털 기술과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 3년간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훈민정음 제자해를 연구하면서 한글의 과학성을 살펴보고, 그 내용을 담은 누리집, ‘세종 말소리’를 만들었는데요. 앞으로 미래 세대는 이런 디지털 기술을 통해 한글의 원리와 과학성을 더 쉽게 배우고, 한글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게 될 것입니다.
임성환_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으로 이루어진 조합형 음절 문자로서, 한글은 인공지능(AI)·디지털 시대에 매우 적합한 문자라고 평가됩니다. 글자를 입력하는 자판 인터페이스에서도 한글은 매우 효율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래 세대에게 한글은 단순히 읽고 쓰는 문자를 넘어, 그 자체로 자긍심과 경쟁력을 갖게 하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영어를 잘하는 것이 하나의 경쟁력이었던 것처럼, 이미 한글을 잘 읽고 쓰는 능력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의 관심과 지원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김주원_ 관장님 말씀에 제가 조금 보태자면, 현재 인터넷에 있는 자료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어로 된 자료도 충분히 쌓여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생산된 다양한 자료를 입력하기 쉽고 명료한 한글로 많이 남겨둔다면, 미래 세대에게 중요한 정보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독자적인 연구를 하거나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