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공감
특집기사2

한글, 세종대왕이 웃고 있다

이관규 (국립국어원장)

이관규 국립국어원장 프로필 사진이다.
한문과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풀어 쓴 『월인석보』 권1의 일부다. 세로쓰기로 된 한문과 한글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1459년에 간행된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자료로,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이다.

▲ 한문본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풀어 쓴 글
『월인석보』 권1, 1568년(초간 1459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1. 한글은 우리나라 고유의 글자이다.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한 한글은 오랫동안 국가의 문자로서 위치를 갖지 못했다. 1444년 부제학 최만리 등은 어찌 몽골, 서하, 여진, 일본, 티벳 등 오랑캐처럼 따로 문자를 만들어서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에 부끄럽게 하려고 합니까 하면서 훈민정음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를 뿌리치고 세종대왕은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기는 하였지만 조선의 문자로서 훈민정음을 공식적으로 국가의 문자로 선포하지는 못했다. 모든 공적 제도권의 문자는 여전히 한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본래 훈민정음이 실용적인 백성의 글자였기 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 자생적으로 퍼져나가서 조선 후기에 와서는 일반 백성은 물론이고 궁중에서도 많이 사용하였다.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는 당시 정치공학적 상황을 반영하여 중국의 문자인 한자가 조선의 공식적 문자였던 것이다. 대내외적 공식 문서에는 한자가, 일반 언어생활에서는 훈민정음이 사용되곤 하였던 것이다.

 윤동주 「서시」가 세로쓰기로 적혀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한문본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풀어 쓴 글
『월인석보』 권1, 1568년(초간 1459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2.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고, 이어서 1894년 갑오개혁 시기를 지나면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었다. 기존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 심지어는 저 멀리 서양 세력의 각축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 바로 조선 땅이었다. 그러한 물결 속에서 고종은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한글)을 으뜸으로 삼는다고 하여, 결국 훈민정음을 국가의 문자로 선포하였던 것이다. 이미 1885년에 배재학당, 1886년에 이화학당 등 많은 현대식 학교가 세워지고, 특히 1895년에는 최초의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등장하는 등 훈민정음, 곧 한글이 국가의 문자로서 훌륭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3. 한글이 자주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되고, 특히 일반 백성들이 쉽게 사용하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함에 따라서, 그 맞춤법에 대한 요구가 있게 되었다. 주시경 등 당시 국문 연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학부 안에 ‘국문연구소’를 세우고, 한글의 여러 맞춤법에 대하여 연구를 하게 하였다. 햇수로 3년간 23차에 이른 회의를 거친 끝에 1909년 11월에 ‘국문연구의정안’이라는 이름으로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공식적으로 문자 ‘ㆍ’를 폐기한다거나 자음자 이름을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 비읍, 시읏, 이응’으로 정한다거나 현재 보아도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몇 달 뒤에 일제 강점기로 들어서면서 국가의 문자는 더 이상 ‘국문’이 아닌 ‘한글’로 불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붙인 ‘한글’이라는 명칭은 ‘크고 바른 하나의 글’이라는 숭고한 뜻을 담고 있었으나, 당대에는 국가를 잃은 민족의 서러운 자화상이기도 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듯이, 국가가 사라지자 언어의 집이 흔들렸고 ‘국문’이라는 이름 역시 주권의 상실과 함께 빼앗긴 것이었다.

4.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일제의 혹독한 민족 말살 정책 속에서도 조선어학회 수난사건 등을 겪으며 피로써 한글을 지켜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진 자주독립의 열망은 1945년 광복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결실을 보았다. 정부는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9일, “대한민국의 공용문서는 한글로 쓰되, 일정 기간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했다. 이는 국가 주권의 회복이 곧 민족 문자의 회복이라는 역사적 명제를 천명한 사건이었다. 이후 2005년 제정된 『국어기본법』 제3조는 “한글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인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임을 명백히 명시함으로써 한글의 법적·문화적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5.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80년이 흐른 지금,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애통해했던 세종대왕의 숭고한 애민 정신은 비로소 완벽히 실현되었다.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였던 훈민정음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일국의 문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케이(K)-팝, 케이(K)-드라마, 케이(K)-문학 등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한류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거대한 동력이 되어 세계 문화의 중심부로 날아오르고 있다. 한글이 세계로 확장될 때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 또한 풍요로워진다.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 한글날 제정 100주년. 하늘에 계신 세종대왕이 환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