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곳에서나 문자는 문화를 일구는 밑거름이다. 문화의 기록과 창달에 문자가 빠질 수 없으니, 문자는 문화의 씨앗이자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화와 한글의 관계 역시 그러하지만, 한글은 그 자체로 문화 창달의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글은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자가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관계를 넘어 사람들의 소통을 넓히려는 목표와 철학 속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그 비밀이 있다.
창제 정신에 깃든 인간 존중의 생각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주인공으로 여기는 민주공화국의 가치와 통하며, 더 편리하고 나은 삶을 지향하는 창제 목적은 문화 진보의 거울이 되었다. 또한 기존의 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문자를 과감히 만들어낸 창의성은 문화를 혁신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이 세 가지 축은 한글을 한국 문화 발전의 핵심 상징으로 세우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갈 길을 알려준다.
한글 창제의 출발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소통’이었다. 세종은 당시 문자 체계로는 백성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고, 법률과 행정의 내용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현실에 주목했다. 중요한 법률과 판결을 백성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글로 직접 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한글 창제는 새로운 문자를 발명하는 일을 넘어 지배층과 백성 사이의 소통 장벽을 낮추는 일이었다. 오늘날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그 출발점에는 ‘알 권리’와 ‘인권’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19세기 말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한글은 ‘나라글자’의 지위를 얻는다. 갑오개혁 직후 고종은 1894년 칙령 제1호에서 법률과 칙령은 국문을 기본으로 작성하라고 정했다. 여기서 국문은 단순히 한글이라는 문자만이 아니라 우리말의 어법에 따라 우리말을 공식 언어로 사용하는 것을 뜻했다. 이는 백성의 언어를 국가의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중요한 변화였다. 한글은 개인의 문자를 넘어 국가와 국민을 연결하는 문자로 나아갔다.
1896년에 창간된 『독립신문』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구체화했다. 서재필과 주시경이 함께 만든 『독립신문』은 읽기 쉬운 한글로 근대적 지식과 새로운 사회의식을 널리 전달했다. 인권, 민권, 남녀평등, 반외세와 자강의 정신을 전파하는 공론장의 역할도 맡았다. 한글은 근대적 시민과 국민을 형성하는 매체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한글의 의미는 더욱 절실해졌다.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과 같았다. 주시경은 말과 글을 나라의 바탕으로 보고 국어강습소를 세워 가르쳤으며 조선말 사전 편찬에도 힘을 쏟았다. 그 뒤를 이은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문법과 맞춤법, 표준어를 정리하고 사전을 만들었다. 일제가 조선어와 한글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이는 학술 활동인 동시에 민족의 언어를 보존하기 위한 저항이었다.
특히 조선어학회 사건은 말과 글이 식민 지배와 독립의 문제에 얼마나 깊이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해방 뒤 완간된 『큰사전』은 그 노력과 희생의 결실이었다. 이 시기에 한글은 ‘민족의 생존’과 ‘독립’의 상징이었다.
해방은 한글의 의미를 다시 바꾸었다. 이제 과제는 빼앗긴 말과 글을 되찾는 데서 나아가 새로운 국가의 언어·문자 질서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글전용과 우리말 되찾기, 일본식 한자어와 식민지 시기의 언어 습관을 정비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글전용과 한자혼용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등 국어정책은 순탄하지 않았다. 한글은 ‘해방된 민족의 문자’를 넘어 교육과 행정, 법률과 언론을 정비하는 국가 건설의 수단의 자리를 놓고 한자와 겨루어야 했다.
산업화 시기에 한글은 또 다른 모습으로 사용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한글을 민족적 자주성과 국가 발전의 상징으로 적극 활용했고, 유신체제는 한글 창제 정신의 ‘자주’와 ‘민주’를 통치 이념과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한글 창제의 민주적 정신을 유신독재의 정당화와 연결하는 것은 순조로울 수 없었다. 한글전용은 한자 혼용과 대비되어 시민의 민주 의식을 일깨웠고, 이는 독재정권의 존립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했다.
산업화의 이면에서는 문자와 인권의 문제도 선명해졌다. 빠른 경제성장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뒤로 밀렸고, 청년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그가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했던 근로기준법과 법률 해설서는 한자와 전문적인 법률용어로 가득했다. 어려운 말이 어려운 사람의 어려움을 더욱 키우는 사례였다. 이때 한글의 가치는 ‘우리 문자’라는 데 머물지 않고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의 창’으로 확장된다.
1987년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말과 문자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이전까지 국어운동의 중심에 ‘바른말’이라는 규범과 ‘우리 것’이라는 민족 정체성이 있었다면, 민주화 이후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언어를 향유할 권리, 차별과 모욕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중요해졌다. 동시에 세계화와 정보화로 외국어 사용이 늘고 인터넷과 새로운 매체를 통해 언어의 변화도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언어의 신자유주의화 속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시민이 말과 글을 통해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
이 지점에서 한글의 역사적 가치와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문제의식이 만난다. 공공기관이 어려운 법률용어나 행정용어, 외국문자를 사용하면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의료·복지·법률·행정의 용어가 시민에게 장벽이 될 때 언어와 문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배제하는 장치가 된다. 반대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공공언어는 시민을 공공영역의 주인으로 만든다.
한글을 사랑한다는 것은 한글의 모양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글이 만들어진 정신, 곧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서로의 뜻을 이해하며 억울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정신을 오늘의 사회에서 실천하는 일이어야 한다. 이 관점은 지난 10여 년 동안 ‘언어는 인권이다’라는 구호와 함께 널리 퍼져 왔다.
이제 한글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넘어서서 한글이 한국 문화의 핵심 상징, 즉 문화가 되어가는 장면을 놓치지 말자. 사람을 문화의 중심에 두는 인본 정신,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진보 정신,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혁신 정신은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정신으로 한국 안팎에서 자주 거론된다. 물론 그 실체는 아직 단단하지 않지만,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나는 그런 정신이 한글에서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글은 문화의 씨앗이나 그릇에 멈추지 않고 한국 문화의 상징이자 동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