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공감
반갑습니다

판소리가 열어 준 새로운 삶의 무대
프랑스에서 온 소리꾼 마포 로르

지난 5월 1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는 흥보가를 부르는 마포 로르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우연히 본 판소리 공연을 계기로 한국의 소리에 깊이 매료된 그녀는 오랜 노력 끝에 3시간 30분에 걸친 흥보가 완창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판소리 흥보가 완창에 성공한 소리꾼 마포 로르를 만나 판소리에 빠지게 된 계기와 판소리를 배우며 발견한 한글과 한국어의 매력, 그리고 앞으로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낯선 언어에서 시작된 한 편의 울림
판소리로 삶을 노래하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리꾼 마포 로르입니다. 카메룬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살다가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온 지 9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으로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으며, 지금은 판소리를 배우고 공연하면서 한국 전통예술을 국내외에 알리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푸른색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든 소리꾼 마포 로르가 정면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5월, 외국인 최초로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하셨습니다. 완창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외국인으로서 흥보가 완창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제게는 매우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완창을 이룬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무사히 공연을 마쳤을 때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도 깊은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사실 준비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판소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과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완창할 수 있었고,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외국인 최초 판소리 흥보가 완창 공연 ‘마포 로르, 소리의 길을 걷다’ 포스터로, 파란 한복을 입은 마포 로르가 부채를 들고 서 있다.

▲ 외국인 최초 판소리 흥보가 완창 공연
<마포 로르, 소리의 길을 걷다> 포스터

마포 로르가 무대 중앙에서 부채를 들고 판소리를 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고수가 앉아 북 장단을 맞추고 있다.

▲ <마포 로르, 소리의 길을 걷다> 공연 사진

외국인 최초 판소리 흥보가 완창 공연 ‘마포 로르, 소리의 길을 걷다’ 포스터로, 파란 한복을 입은 마포 로르가 부채를 들고 서 있다.
마포 로르가 무대 중앙에서 부채를 들고 판소리를 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고수가 앉아 북 장단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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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판소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민혜성 선생님(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의 공연을 처음 관람했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큰 울림이 있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즐겨 듣던 발라드, 대중가요, 카메룬 전통 민요에서 듣던 소리와는 전혀 달랐기에 더욱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왔습니다.

성악이 주로 두성을 사용해 내는 소리라면 판소리는 배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라고 느꼈습니다. 이전까지 그런 울림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기에 판소리 자체에 매료됐는데요. ‘나도 저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나도 저렇게 표현하고 싶다’라는 갈망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판소리는 제 꿈이자 목표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판소리의 가장 큰 매력은 이야기 속에 담긴 교훈에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지라도 소리꾼의 특별한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면 매번 새로운 감동을 얻게 됩니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들어도 그때마다 가슴에 와닿는 감동과 교훈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 판소리의 특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혜성 명창과 마포 로르가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민혜성 명창과 마포 로르가 한복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 민혜성 명창과 마포 로르

민혜성 명창과 마포 로르가 한복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민혜성 명창과 마포 로르가 한복을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 민혜성 명창과 마포 로르

한국 문화의 세계로 인도해 준 통로이자,
새로운 삶을 선물해 준 한글

판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흥보가에서 첫 박을 타는 대목을 가장 좋아합니다. 착한 마음씨를 가진 흥보가 박을 탔을 때 그 안에서 돈과 쌀이 쏟아져 나와 마침내 부자가 되는 내용인데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은 흥보의 이야기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이 말에 담긴 가치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또, “모든 가정에는 저마다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움을 겪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라는 말도 좋아하는데요. 이 부분을 부를 때마다 문득 깨닫게 됩니다. 삶 속에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원칙을 지키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요. 이 대목은 삶을 대하는 자세와 제가 지키고 싶은 가치를 되새기게 해주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제게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닙니다.

판소리의 사설을 다른 언어로 옮길 때 한국어만의 리듬감이나 정서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판소리의 내용을 단순히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의 리듬과 정서, 그리고 소리의 흐름까지 함께 전달해야 하거든요. 사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할 때는 원문의 뜻을 보존하면서도 음악적인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때로는 직역보다 관객이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하기도 해요. 한국어와 프랑스어는 모두 매우 섬세한 뉘앙스를 가진 언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먼저 원문에 담긴 의미와 감정 그리고 미묘한 결을 충분히 파악한 뒤, 그것이 다른 언어로 옮겨졌을 때도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신중하게 다듬어 갑니다.

다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판소리의 중요한 특징인 시김새(판소리에서 소리를 하는 방법이나 상태)를 프랑스어로 표현하는 일인데요.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라, 저는 아직 진정한 의미의 ‘프랑스어 판소리’가 완성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그 가능성을 넓혀나가고 있어요. 언젠가는 원래 판소리가 가진 맛과 감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프랑스어 판소리를 무대 위에서 선보이고 싶습니다.
2018년 한·프랑스 정상 만찬서 공연한 마포 로르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부부와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

▲ 2018년 한·프랑스 정상 만찬서 공연한 마포 로르

앞으로 판소리꾼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꾸준히 공부하면서 깊이를 더해 가고 싶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과정을 통해 판소리뿐만 아니라 국악의 다양한 분야를 접하며 예술가로서의 시야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저를 더 단단하게 성장시키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또한, 저는 연극을 좋아해서 판소리와 연극을 결합한 다양한 공연도 만들고 싶어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과도 협업해 판소리를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한 목표입니다. 특히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의 음악을 배우면서 고향 카메룬의 전통문화도 자주 떠올랐습니다. 한국이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카메룬의 음악과 문화 역시 체계적으로 전승될 필요를 느꼈거든요. 언젠가는 카메룬의 전통음악이 전문적으로 발전하고 널리 인정받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궁극의 꿈은 훌륭한 소리꾼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술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음악을 나누며 희망과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무대 위에 선 마포 로르가 판소리를 열창하고 있다.
마포 로르가 무대 위에서 부채를 펼쳐 보이며 판소리를 열창하고 있다.

▲ 판소리 공연하는 마포 로르

무대 위에 선 마포 로르가 판소리를 열창하고 있다.
마포 로르가 무대 위에서 부채를 펼쳐 보이며 판소리를 열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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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에 관심을 두고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응원의 한마디가 있으신가요?

언어를 익히는 과정은 길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한다면 반드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언어는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곳의 말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언어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 방식,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한국어는 쉽지 않은 언어이지만, 어렵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음악, 드라마, 예술, 음식 등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로 접근하면 훨씬 즐겁고 오래 학습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꾸준히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마포 로르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닙니다. 한글은 한국 문화의 세계로 인도해준 통로이자, 제게 새로운 삶을 열어 준 소중한 선물입니다. 한글을 통해 판소리를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마포 로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