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공감
반갑습니다

세종의 지혜를 오늘의 리더십으로 잇다
세종국가경영연구원 박현모 원장

5월 15일은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 나신 날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와 더불어 농업, 천문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지도력을 지닌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세종국가경영연구원 박현모 원장님을 모시고 ‘소통하는 지도자’로서의 세종과 그의 업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질문과 경청으로 완성된
세종의 소통법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박현모입니다. 세종국가경영연구원은 ‘한국인을 신명 나게 하는 리더십’의 원류를 연구하고, 기업과 공공의 리더를 교육하기 위해 2011년에 설립된 사단법인입니다. 저는 초대 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16년간 1만 800여 쪽에 달하는 세종실록이라는 거대한 광맥을 탐사하며, 그 속에서 길어 올린 세종의 지혜를 현대의 언어로 번역하고 전파하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박현모 사진이다. 안경을 쓴 박현모 원장이 왼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원장님께서 세종대왕과 그의 지도력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1년, 정조가 본받으려 했던 세종대왕을 알기 위해 세종실록을 읽기 시작하면서 세종과 그의 지도력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방대한 분량에 졸음과 싸우기도 했지만, 점차 실록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국가 경영의 고뇌와 결단이 담긴 살아있는 데이터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신분과 학벌의 벽을 뚫고 소명을 이뤄낸 당대 인재들의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세종실록』 사진이다. 갈색 표지이며, 오른쪽에는 한문으로 쓰인 본문이 세로쓰기 형식으로 빼곡하게 인쇄된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세종실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세종의 지도력은 어떻게 발휘되었나요?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이다. 두 페이지에 걸쳐 한자와 한글이 함께 쓰인 설명 글이 세로쓰기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훈민정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류사적 문화유산이라 생각합니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를 ‘어린 백성을 위하여’라고 적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자 창제를 넘어, 모든 백성이 쉽게 글을 익히고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지였습니다. 당시에도 백성을 위한 다양한 정치적 실천이 있었지만, 세종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문자를 통해 백성 스스로 깨치고 삶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복지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결국 훈민정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라는 메시지이자, 세종 정치 철학의 핵심을 담은 결정체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은 반대하는 신하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간 치밀한 ‘지식 경영’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법전 내용을 백성이 이해할 수 있게 보급하려다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때 “백성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하고 범법자를 벌주는 것은 조사모삼의 술책과 같다”고 꾸짖으며, 백성이 스스로 범죄를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도리임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훈민정음 창제 발표 직후에는 최만리를 비롯한 신하들이 사대 질서와 유교적 소양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는데요. 세종은 감정이 아닌 언어학적 지식과 논리로 대응하며, 반대파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었습니다. 나아가 약 2년 10개월에 걸친 검증 끝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완성하고, 당시 지식인들이 절대 진리로 믿던 ‘음양오행설’을 들어 한글 창제가 우주의 이치에 부합하는 문자임을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세종은 원칙과 논리, 그리고 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반대파의 의견을 설득해 나가며, 지도자로서 결단력과 지적 지도력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이다. 두 페이지에 걸쳐 한자와 한글이 함께 쓰인 설명 글이 세로쓰기 형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훈민정음(해례본) 설명 바로가기

한글 창제 과정이나 그 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통하는 지도자’로서 세종의 모습은 어땠나요?

세종이 왕위에 오른 뒤 사흘째 되던 날, 처음으로 한 공식 발언이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국왕 고유의 권한인 인사권조차 독단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신하들과 공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거였죠. 특히 스스로 낮추는 자세를 취하며, 신하들에게는 늘 “어떠한가”라고 묻는 질문법을 통해 신하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이 나와도 먼저 공감과 인정을 보인 뒤 판단하는 방식으로 신하들의 속말을 이끌었고, 모든 참석자가 한마디씩 발언하도록 하는 ‘다사리’ 방식으로 집단지성을 극대화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종은 명령이 아닌 경청과 토론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세종은 궁궐 안에 머무르지 않고 가장 낮은 직급의 관리인 수령들을 직접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노력했습니다. 가뭄이 들면 농부들을 직접 찾아가 필요한 바를 묻는 등 백성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길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대했는데요. 나아가 해시계 보급을 통해 지배층이 독점하던 시간의 개념을 공유하고, 법 지식을 쉽게 풀어 전달하려 한 점 역시 정보 독점을 깨고 소통을 확장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자유의 또 다른 이름,
한글

한글 창제 외에도 세종의 애민 정신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세종의 애민 정신은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백성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고 그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게 돕는 구체적인 정책들로 구현되었습니다. 세금 제도인 ‘공법(貢法)’을 도입할 때, 17만 명의 백성에게 찬반 의견을 묻는 대규모 여론 조사를 시행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또한, 관비(官婢)에게 130일의 출산 휴가를 주고 그 남편에게도 한 달의 휴가를 주는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펼쳤으며, 시각장애인 음악가들에게 관직을 주어 자립을 돕는 등 사회적 약자를 하늘이 낸 백성으로 존중하며 보듬었습니다.

세종은 죄수라 할지라도 감옥 안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기도 했는데요. 감옥 내 관리가 소홀해 죄수가 병들거나 굶어 죽는 일이 없도록 모든 사망 사고를 상세히 기록해 왕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항식(恒式)’을 수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죄수들이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시원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양옥(涼獄)’과 보온이 잘 되는 ‘온옥(溫獄)’을 짓고 감옥 주변에 나무를 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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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큰 문제들의 해법이 세종실록 속에 들어있다고 봅니다. 지난 25년 동안 세종실록을 연구하면서 ‘세종이라면?’ 하는 관점에서 그 해법을 제시해 오고 있습니다. 국가적 재난이나 ESG 경영 같은 현대적 난제 앞에서 ‘세종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자문하며 실천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죠. 앞으로의 목표는 ‘세종 생태계’를 조성해서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문명국가로 도약하도록 기여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도록 돕는 품위사(well-dying)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마지막 순서가 자기 묘지명을 쓰는 것이었는데요. 저는 ‘세종 같은 지도자 1만 명을 양성한 박현모 여기 잠들다’라고 썼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세종 같은 지도자가 활약하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박현모 사진이다. 책장에서 ‘세종 리더십 이야기’ 책을 꺼내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원장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한글은 ‘자유’의 다른 이름입니다. 백성들에게 문자라는 권력과 시간이라는 정보를 나누어 주어 그들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게 하려던 세종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을 통해 모든 개인이 지식과 정보를 얻고 주체적인 ‘자유인’으로 우뚝 서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600년 전 세종이 꿈꾸었던 생생지락(生生之樂)의 세상이자 우리가 이어가야 할 한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사진 제공: 세종국가경영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