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신 세종대왕 나신 날입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와 더불어 농업, 천문학, 예술 등 여러 분야에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줄 아는 지도력을 지닌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세종국가경영연구원 박현모 원장님을 모시고 ‘소통하는 지도자’로서의 세종과 그의 업적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장님께서 세종대왕과 그의 지도력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과정에서 세종의 지도력은 어떻게 발휘되었나요?
훈민정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류사적 문화유산이라 생각합니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를 ‘어린 백성을 위하여’라고 적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자 창제를 넘어, 모든 백성이 쉽게 글을 익히고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지였습니다.
당시에도 백성을 위한 다양한 정치적 실천이 있었지만, 세종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누구나 배울 수 있는 문자를 통해 백성 스스로 깨치고 삶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복지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결국 훈민정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라는 메시지이자, 세종 정치 철학의 핵심을 담은 결정체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은 반대하는 신하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간 치밀한 ‘지식 경영’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법전 내용을 백성이 이해할 수 있게 보급하려다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때 “백성에게 법을 알지 못하게 하고 범법자를 벌주는 것은 조사모삼의 술책과 같다”고 꾸짖으며, 백성이 스스로 범죄를 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치의 도리임을 강조했습니다.
이후 훈민정음 창제 발표 직후에는 최만리를 비롯한 신하들이 사대 질서와 유교적 소양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는데요.
세종은 감정이 아닌 언어학적 지식과 논리로 대응하며, 반대파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었습니다.
나아가 약 2년 10개월에 걸친 검증 끝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완성하고, 당시 지식인들이 절대 진리로 믿던 ‘음양오행설’을 들어 한글 창제가 우주의 이치에 부합하는 문자임을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세종은 원칙과 논리, 그리고 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반대파의 의견을 설득해 나가며, 지도자로서 결단력과 지적 지도력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한글 창제 과정이나 그 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통하는 지도자’로서 세종의 모습은 어땠나요?
한글 창제 외에도 세종의 애민 정신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된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원장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