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공감
특집기사4

세종대왕 동상 제작 이야기

김영원 (조각가)

김영원 조각가 사진이다.
2006년 겨울 서울시가 세종대왕 동상 건립 계획을 발표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찬반 여론조사를 거치는 동안, 미술계와 조각계는 온통 동상 이야기로 들썩였다. 조각 학과가 개설된 대학 및 22개 조각 단체에서 50여 명의 조각가가 추천되었고, 2차 심사를 통해 최종 5명이 선정되었다. 하늘이 도운 듯 최종 당선 작가로 발표되던 2009년 4월 그 순간, 기쁨도 잠시였다. ‘내가 과연 이 대작을 성공적으로 해낼 능력이 있을까?’, ‘광화문이라는 장소가 주는 위압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중압감이 밀려와 그날부터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출품작 5점의 모형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3주간 공개 전시되었고, 이후 광장 공사 현장에서 1개월간 연장 전시를 거치며 시민 검증 과정을 받았다.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기에, 밤을 새워가며 세심하게 제작 계획을 세웠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고 우리의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 문화유산은 한글이다.’ 평소 가졌던 이 생각을 어떻게 동상에 부각할 것인지 깊이 고민했다. 한글 창제에 관한 자료를 수집·분석하며 동상에 새길 내용과 공간 디자인을 수차례 수정하고 다듬었다. 동상 좌대 상단 좌우에는 자음과 모음을 깊게 음각으로 새겼고, 좌대 앞에는 훈민정음을 새긴 큰 석판을 놓아 누구든지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또한 동상의 왼손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용자례’편을 펼쳐 든 자세를 취하게 함으로써 대왕님의 가장 큰 업적이 한글 창제임을 강조했다. 작품의 핵심 테마는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과 민본사상이었다. 대왕의 수많은 업적 중 주요 내용을 선별하여 6개의 원주(기둥)에 부조로 담아냈고, 앙부일구와 측우기 등 백성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 발명품들을 동상 전면에 배치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대왕의 용안(표정)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에 드는 표정이 나오지 않아 점토 작업이 끝날 때까지 매일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체중이 눈에 띄게 줄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몰두하자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였다. 머릿속에는 오직 ‘인자한 어버이 같으면서도 푸근하고, 기품이 넘치는 성군’의 이미지가 가득 차 있었다.
역사적 인물 조각에서는 복식 고증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조선 복식 전문가인 단국대학교 박성실 교수에게 의뢰하여 당대의 의복(바지, 저고리, 액주름, 철릭, 답호, 용포)을 복원하고, 이를 모델에게 입힌 상태에서 작업에 임했다. 넉넉하고 풍성한 인품이 우러나오도록 살집이 살짝 오른 풍채를 연출했고, 6겹에 달하는 옷의 두께감을 표현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비율은 한국인 평균보다 약간 높은 7등신으로 설정하여 조형적인 미감과 안정감을 더했다.
석고 작업 과정도 큰 난관이었다. 석고를 뜨는 과정에서 원형이 뒤틀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마침 석고 작업 전문가인 조보형 씨가 스스로 찾아와 1cm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석고 원형을 떠주었다. 또한 선열의 동상을 제작할 때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의 자문 및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역시 무사히 통과하는 행운이 따랐다.
김영원 작가가 제작한 세종대왕 동상이다.

▲ 세종대왕 동상 (사진 제공: 김영원 작가)

제작 과정에서 아쉬운 점과 에피소드도 있었다. 초기 공모 모형 제작 당시에는 시간이 부족해 복식 고증을 완벽히 하지 못하고 방송국 의상실에서 용포를 빌려 참고하기도 했다. 당시 계획에는 동상 앞 작은 연못에 유리각을 씌워 측우기, 앙부일구, 혼천의, 자격루를 함께 설치하려 했으나, 시공 과정에서 자문위원들의 권고로 연못과 자격루가 생략되었다. 좌대 또한 전체 비례에 맞춰 설계했으나, 지하 ‘세종이야기’ 전시장과 광장과의 연결 통로로 인해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추가되면서 좌대가 원래 설계보다 높고 넓어졌다.
작업실에서의 신기한 경험들도 기억에 남는다. 장마철 건물 천장의 유리 채광창 틈으로 빗물이 샜는데, 신기하게도 점토 작업대만 딱 피해서 빗물이 떨어졌다. 이를 본 동료 조력자들은 “대왕님께서 돕고 계신다”며 기뻐했다. 점토 작업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작업실 문 앞에 엄청난 수의 개미 떼가 뒤엉켜 있는 것을 보고, 작업자들이 “전생에 대왕님을 따르던 백성들이 몰려와 참배를 하는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동상의 전체적인 형태는 ‘정중동(靜中動)’의 동양적 미학을 응용했다. 우선 부동(不動)의 자세를 기본으로 삼아 중심축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게 했다. 그리고 양팔의 움직임, 양감, 표정을 통해 기운의 흐름을 유도하여 ‘멈춤과 움직임의 조화’를 도모했다. 용좌와 동상 본체 간의 비례미, 대비(콘트라스트)의 미, 용좌에 새겨진 용 부조의 현란한 움직임과 부동의 육중한 동상 체구, 발끝에서 시작해 용안으로 올라가 머무는 온화한 기운 등, 정중동의 미적 질서 속에서 조형적 해법을 찾고자 했다. 용좌에 앉아 한 팔을 벌리고 책을 펼쳐 든 자세는 한글 창제를 상징한다. 오른쪽 팔과 손은 고단한 백성을 가슴으로 따뜻하게 끌어안는 모습을, 왼손과 팔은 애민 정신의 결정체인 훈민정음 해례본 ‘용자례’ 편을 펼쳐 든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백성에 대한 사랑과 소통을 중시했던 세종대왕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이 동상을 통해 오늘날의 위정자들은 애민 정신을 되새기며 리더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고, 삶에 지친 사람들은 대왕의 풍성한 자태와 자상한 미소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염원했다. 이분법적 사고로 인한 차별과 대립, 분쟁을 극복하고 상생과 공명을 이룰 수 있는 바탕에는 우리 전통 사상인 ‘천지인 삼재(삼원) 사상’과 동양의 삼원주의 구조로 이루어진 한글이 있다. 세계 각국 대학에 개설되는 한글 학당을 통해 한글이 만국 공통어로 자연스럽게 자리매김하고, 갈등을 넘어 상생과 공명의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한글날을 맞아 간절히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