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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르면 온다?
조심스레 꺼내보는 조선의 금기어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말이 씨가 된다’처럼 우리말에는 말의 힘을 일깨우는 표현이 많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거둘 수 없기에 늘 신중해야 한다는 선조들의 생각이 담겨 있는데요. 특히 조선시대에는 질병이나 산짐승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 실제로 그것을 불러온다고 믿어 입에 올리기를 꺼렸습니다. 반대로 복이나 좋은 기운이 달아날까 봐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저마다의 이유로 쉽사리 입에 담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금기어를 소개합니다.

말로 두려움을 달래다, 화를 피하는 금기어

산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흰 수염을 기른 산신령이 호랑이와 함께 서 있는 일러스트다.

▲ ‘산군’, ‘산신령’으로 불렸던 호랑이

아궁이와 솥이 있는 부엌 안에 구렁이가 기어가고 있는 일러스트다.

▲ ‘업신(神)’이라 불렸던 구렁이

산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흰 수염을 기른 산신령이 호랑이와 함께 서 있는 일러스트다.
아궁이와 솥이 있는 부엌 안에 구렁이가 기어가고 있는 일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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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상징하는 동물 호랑이는 우리나라 건국 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와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신성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품은 동물이기도 했는데요. 산에서 내려와 민가를 습격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직접 이름으로 부르면 실제로 나타난다고 믿어 호랑이 대신 ‘산군’, ‘산신령’ 등으로 돌려 불렀습니다. 적대시하며 내쫓기보다 예를 갖춰 달래는 것이 화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여긴 것인데요. 국토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한반도에서는 특히 호랑이를 산의 주인이자 산신의 뜻을 대신하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호칭에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신성한 존재로 공경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역시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던 동물입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뱀을 직접 부르면 나타나거나 화를 입을 수 있다고 믿어 ‘긴짐승’과 같이 에둘러 불렀는데요. 특히 집 안에 사는 구렁이는 재물과 복을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 ‘업신(神)’이라고 높여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두려운 존재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고, 예를 갖춰 부르면 화를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담긴 표현입니다. 뱀도 호랑이와 같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셈입니다.
곡식과 책을 갉아 먹는 쥐가 곳간 안에 있는 일러스트다.

▲‘서생원’으로 불렸던 쥐

붉은 반점이 난 아이가 이불을 덮고 앓아누워 있고, 문밖에는 천연두를 의인화한 ‘마마’가 서 있는 일러스트다.

▲ ‘마마’, ‘큰 손님’으로 불렸던 질병, 천연두

곡식과 책을 갉아 먹는 쥐가 곳간 안에 있는 일러스트다.
붉은 반점이 난 아이가 이불을 덮고 앓아누워 있고, 문밖에는 천연두를 의인화한 ‘마마’가 서 있는 일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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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름을 돌려 부르던 동물 중 하나였습니다. 쥐를 뜻하는 한자 ‘서(鼠)’에 조선시대 과거의 소과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어지던 칭호인 ‘생원’을 붙여 ‘서생원’이라고 불렀는데요. 이는 조용히 책을 읽는 생원의 모습과 조용히 돌아다니며 곡식과 책을 갉아 먹는 쥐의 모습이 유사하다고 여긴 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농경사회가 시작되기 전에는 인간과 쥐가 지금처럼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쥐가 사람들의 곡식을 먹으면서 쥐를 꺼리게 되었고, 이후 질병까지 옮기게 되면서 이름조차 부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연두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이름조차 쉽게 입에 올리지 못했던 대표적인 금기어였습니다. 사람들은 천연두를 직접 부르는 대신 ‘마마’, ‘손님’, ‘손님마마’라고 높여 불렀습니다. 원래 마마는 대왕마마, 대비마마와 같이 임금 및 그의 가족과 관련된 명사 뒤에 붙어 존대의 뜻을 나타내는 말인데요. 그럼에도 천연두를 마마라 부른 것은 병을 일으키는 신을 함부로 자극하지 않고, 공손히 대하면 무사히 물러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수두의 경우에도 ‘작은 마마’라고 부르는 등 두려운 존재에 공손한 호칭을 사용해 화를 피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언어문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귀한 이름을 아끼다, 복을 지키는 금기어

산속에서 심마니들이 삽과 호미로 산삼을 캐고, 손에 산삼을 들어 보이고 있는 일러스트다.

▲ 삼을 캐고 있는 심마니의 모습

조선시대 기록물 『국조보감』의 한 면으로, 본문 일부에 임금의 이름을 가린 붉은 종이와 여러 인장이 찍혀 있다.

▲ 임금의 이름을 가려둔 국조보감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속에서 심마니들이 삽과 호미로 산삼을 캐고, 손에 산삼을 들어 보이고 있는 일러스트다.
조선시대 기록물 『국조보감』의 한 면으로, 본문 일부에 임금의 이름을 가린 붉은 종이와 여러 인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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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아이에게는 본이름과는 별도로 아명(兒名)을 지어 부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아명에는 ‘개똥이’, ‘쇠돌이’도 있었는데요. 이는 일부러 천하거나 흔한 이름을 붙여 귀신으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름이 귀하면 귀신이 탐을 내지만, 하찮거나 흔한 이름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이에게 액운이 오지 않게 막아, 무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산신이 허락해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약초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외치는데요. 이때 ‘심’은 산삼의 또 다른 이름으로 신(神)마음(心) 을 의미합니다. 심마니들은 입산할 때부터 부정한 말을 삼가고 예를 갖췄는데요. 산삼을 채취할 때는 땅속을 파서 끄집어낸다는 의미의 ‘캐내다’보다는, 위로 끌어올려 도드라지거나 높아지게 한다는 의미의 ‘돋우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귀한 인연을 놓치고 복이 달아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까요? 말 한마디까지 조심하며 좋은 기운을 지키고자 했던 심마니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존경과 권위를 표하기 위해 이름을 함부로 쓰지 않는 관습도 있었습니다. 이를 피휘(避諱)라고 하는데요. 문장에 선왕의 이름자나 성인이나 선조들의 이름자가 나타나는 경우 공경과 삼가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획의 일부를 생략하거나 뜻이 통하는 다른 글자로 바꿔 쓰는 언어 관습입니다. 예를 들어 세종의 이름에 쓰인 ‘도(祹)’, 정조의 이름에 쓰인 ‘산(祘)’자는 공식 문서나 관청 기록에서 피해서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피휘는 지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차산은 『삼국사기』에 ‘아단산(阿旦山)’으로 기록되었으나, 조선 건국 이후 태조 이성계의 이름에 쓰인 ‘단(旦)’자를 피하기 위해 다른 글자로 바꾸어 표기하면서 오늘날의 ‘아차산’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조선시대의 금기어를 살펴보았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삶의 안녕과 행복을 바랐던 선조들의 언어 관습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말의 힘을 중요하게 여겨왔음을 알 수 있었는데요. 이름 하나에도 두려움과 존경, 그리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금기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말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점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무심코 건네는 말 한마디에 복을 바라는 마음을 더 담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취재: 인포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