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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말,
어원과 오늘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가운데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 많습니다. 그 말들의 어원을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삶과 생각, 시대의 분위기가 담겨 있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지금의 유행어가 오늘의 사회상을 비추듯, 조선시대에도 그 시대를 담아낸 말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익숙한 말속에 담긴 조선시대 말의 유래와 오늘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조선시대 사회상을 담은 말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화성원행의궤도’로, 화성에서 열린 성대한 회갑연을 묘사해 그렸다.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화성원행의궤도’로, 늘어선 행렬과 말을 탄 인물 등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화성원행의궤도’
(출처:국립중앙박물관)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화성원행의궤도’로, 화성에서 열린 성대한 회갑연을 묘사해 그렸다.
정조가 수원으로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화성원행의궤도’로, 늘어선 행렬과 말을 탄 인물 등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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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남을 놀릴 때 하는 말인 ‘얼레리꼴레리’는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얼레리꼴레리’의 표준말은 ‘알나리깔나리’인데요. ‘알나리’는 어린아이를 뜻하는 ‘알’과 벼슬아치를 뜻하는 ‘나리’가 합쳐진 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돈으로 관직을 사는 일이 적지 않았고, 그의 자제들이 어린 나이에 원님이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전(지방의 실무 공무원)들이 철없는 어린 사또를 아이 나리라고 놀림조로 부르면서 ‘알나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운율을 맞춘 ‘깔나리’가 함께 더해져 알나리깔나리가 되었고, 현재는 우리가 아는 얼레리꼴레리로 쓰이고 있습니다.

임금이 대궐 밖으로 거둥하는 것을 ‘행행하다’라고 합니다. 정조는 재위 기간에 무려 66회차의 행차를 진행한 왕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그는 부친 사도세자의 능을 방문하는 ‘능행’을 많이 했습니다. 정조는 행차 길을 오가며 백성들의 생활 형편을 살피고 억울한 사연을 듣는 등 끊임없이 민심을 살피고자 했습니다. 그는 국왕의 행차가 백성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일이라 여겼고, 이런 뜻을 담아 왕의 행차를 ‘행복한 행차’라는 의미로 ‘행행’이라 불렀습니다.
김홍도가 어영청의 소속 부대 남소영을 그린 ‘남소영도’ 그림이다. 나무가 있는 풍경 속에 조선 시대 부대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김홍도가 어영청의 소속 부대 남소영을 그린 ‘남소영도’
(출처:고려대박물관)

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어영부영’ 역시 조선 후기 사회 분위기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한때 조선의 정예부대로 꼽히던 어영청은 조선 말기에 군기가 흐트러지고 기강이 약해졌다고 하는데요. 이를 본 백성들이 “어영청은 군대도 아니다”라며 ‘어영불영’이라 비꼬았고, 시간이 흐르며 ‘어영부영’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전해져 옵니다.

또한,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아니하거나 늦게 온 사람을 이르는 ‘함흥차사’도 조선의 정치사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왕위를 물려준 뒤 함흥에 머물 때 이방원이 보낸 차사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생활양식과 문화를 담은 말

남사당놀이 ‘살판’ 공연에서 전통 복장의 연희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가운데 연희자가 공중제비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 남사당놀이 ‘살판’
(출처: 문화재청)

‘살판나다’라는 말은 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겨 생활이 좋아지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말의 시작은 조선 후기 남사당패 공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남사당패는 장터와 마을을 돌아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를 선보였던 유랑 예인 집단입니다. 남사당패의 여섯 가지 놀이 중에는 '살판'이라는 것이 있는데요. 광대가 땅에서 부리는 재주인 살판에서는 앞구르기, 뒤구르기, 공중제비 등의 묘기가 펼쳐졌습니다. 이때 ‘잘하면 살판이요, 못하면 죽을 판’이라는 말에서 살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광대의 역동적이고 신명 나는 재주로 인해 살판 공연은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살판나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부질없다’대수롭지 아니하거나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그 뿌리는 대장간에 있습니다. 쇠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불에 달구고 두드리는 과정을 ‘불질’이라 했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쇠붙이는 성질이 무르고 쉽게 휘어져 쓸모가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불질없다’라는 말이 변해 ‘부질없다’가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장인의 손길이 담긴 노동의 언어가 일상의 표현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접시 위에 담긴 생선 도루묵이다.

▲ 생선 도루묵

겨울철 생선 이름으로 유명한 ‘도루묵’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오른 선조가 ‘묵’이라는 생선을 맛보고 크게 만족해 ‘은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나 뒤 다시 맛보니 예전 같지 않자 도로 “묵이라 하라”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도루묵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애써 한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때 ‘도루묵이 됐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 설화에서 비롯됐습니다.

바치는 물건을 물리치는 일을 가리키는 ‘퇴짜’도 조선시대 상거래 관행과 연결됩니다. 당시 상인들이 궁궐이나 관아에 물품을 납품할 때 품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관리가 물건에 ‘퇴(退)’자를 찍어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여기서 퇴짜라는 말이 생겼고, 지금은 제기하는 의견 따위가 거절당하는 상황에 ‘퇴짜 맞다’와 같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속에 담긴 시대의 이야기를 살펴봤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장난처럼 주고받던 말에도 당시의 정치와 사회 분위기, 생활문화 등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말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언어는 소통의 도구를 넘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쓰는 말 역시 언젠가 또 다른 시대의 이야기가 되어 남지 않을까요? 익숙한 단어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 속에 깃든 조상들의 삶과 발자취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취재: 인포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