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목적을 엮는 일
꽤나 어렵다. 디자인이란 말은. 쉽게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좋은 디자인을 보면 “디자인이 예쁘다”고 한다. 아마도 디자인을 “예쁘게 만들기”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예쁘기만 한 디자인은 어떨까. 예를 들어, 읽을 생각은 없지만 예뻐서 사는 책을 떠올려보자. 이 책의 디자인은 성공한 것일까. 디자이너의 마음은 어떨까. 작가의 마음은 또 어떨까. 돈은 벌었으나 속은 헛헛할 것이다. 목적이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1년에 봄이 세 번 온다고 생각해보자. 1년 12계절인 셈이다. 매달 계절이 바뀌니 시간이 엄청 빨라졌다고 느낄 것이다. 겨울 옷을 세 번 넣었다 꺼낸다고? 생각만으로 정신이 사납다. 요즘 세상이 딱 그렇다. 빨리 바뀐다. 그만큼 판단도 빨라야 한다. 한 중학생이 등교를 거부한다 치자. 어디에 써먹을지도 모르는 걸 왜 배우냐고, 배워봤자 금세 사라질 걸 왜 배우냐고 한다. 뭐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목적을 묻는 질문은 느닷없다. 목적이 중요하긴 한 걸까. 길 가다 우연히 본 파릇파릇한 잡초가 아름다울 때가 있다. 바람에 산들거린다. 굳이 왜 거기에 피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름답다. 목적을 몰라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
하지만 디자인은 다르다. 목적에도 맞으면서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내 집을 짓는다고 치자. 건축가에게 현대적인 디자인을 요청했더니, 분홍색 유리 기와집을 가져왔다. 현대적 재해석이라며… . 더욱 전형적인 것을 요청했더니 창문 없는 새하얀색 큐브를 가져왔다.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목적을 넘어서면 이렇게 된다. 좋은 디자인은 볼록 렌즈처럼 여럿의 목적을 하나로 모은다. 집의 목적, 의뢰인의 목적, 건축가의 목적이 고루 맞아야 좋은 디자인이 된다. 말로 글로 그림으로 예쁘게 목적을 엮는 일이 디자인이다.
조그마한 한글의 넉넉한 마음씨
▲「활자의 나라 조선」도록(30쪽), 2016, 국립중앙박물관
아쉽게도 한글의 유물은 조그맣다. 그래서인지 한글과 디자인의 접점은 아담해 보이기만 했다. 만약, 500년 전 인왕산 꼭대기에 아파트만 한 바위가 있어 훈민정음 전문을 새겨놓았다면? 경복궁 지하 30m에서 수 백 평 규모의 세종의 비밀 연구실이 발견되면? 이걸 누가 어떻게 새겼는지,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지를 둘러싼 재미난 이야기가 넘쳐났을 텐데… . 로마 시내에 우뚝 솟은 트라야누스 기념비는 유럽의 글꼴 디자이너들의 성지이다. 아름다운 라틴 대문자의 원형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전의 일인데도 현대 대문자와 다를 바 없을 만큼 정교하다. 크기로 압도하는 물리적 유산이 부러웠다.
현대 디자인은 특히 1960년대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인간–컴퓨터 상호작용)의 등장과 함께 누가(주체), 왜(목적), 어떻게(방법)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을 더욱 강조하게 됐다. 이른바 ‘친절한 명확성’이다. 화면 속 아이콘을 마우스로 클릭하여 윈도우를 띄우는 행위를 사람들이 얼마나 낯설어할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쓰게 하려면 얼마나 친절해야 할지를 알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사용성, 접근성 모두 이런 맥락에서 나온 디자인의 판단 요소이다. 훈민정음은 사람이 말하고 읽고 쓰고 듣는 데 거침이 없어야 함을 밝히며 문자를 만들고, 그 원리와 용법을 예를 들어 친절히 설명했다. 그렇게 600여 년을 잘 쓰고 있다. 세종은 이미 15세기에 좋은 디자인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세종이 그렇게까지 체계적이면서도 친철하게 훈민정음을 쓴 이유는 무얼까. 더 정확하게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됐던 이유는 무얼까. 문자의 등장이 당시 백성에게 얼마나 낯선 존재였을지 하지만 얼마나 필요한 도구였을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었을 때의 감동은 정인지의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 잘 드러난다. “(이제는)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의 홰치는 소리, 개 짖는 소리도 모두 적을 수 있다”. 천 년 넘게 한자의 음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답답함을 떠올리면 뭉클하다. France를 ‘佛蘭西’(불란서)로 밖에는 못 쓰다가 '프랑스'로 쓰게 된 것이다. 더 쉽고 빠르며 정확하다. 이 후련함의 공유가 훈민정음을 창제한 목적 아니었을까. 함께 뜻을 자유로이 나누게 된 고마움이 한글의 정서 아닐까. 어원적으로 ‘고마’에는 존경이 담겨 있다는 풀이도 있다. 과학적, 체계적 설계도 대단하지만 그 바탕에 깔린 목적, 더 아래에 깔린 마음씨가 한글의 뚝심 아닐까. 그 덕분에 600여 년을 이어온 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트라야누스 기념비에 새겨진 승자의 서사보다, 훈민정음에서 묻어나는 상생의 마음씨가 더욱 커 보인다. 자연스레 서로를 위하는 홍익인간의 마음씨를 떠올린다. 어쩌면 이 존중의 징검다리가 한국 디자인 철학의 정서적 맥락일지도 모른다. 유물이 작다고 유산까지 작은 것은 아니었다.
한글이 넘은 디지털 문턱
훈민정음 반포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쓸까’에 대한 역사였다. 당연히 위기도 있었다. 특히 20세기 말에 닥친 디지털 문턱은 산업화가 진전된 국가에 유리했다. 1990년대 개발도상국 한국은 ‘유니코드 2.0’을 앞두고 대담한 승부수를 띄운다. 컴퓨터는 글자에 코드(이름표)를 붙여 기억하는데, 기업, 국가마다 사용하는 코드가 달라 호환 문제가 나타났고, 세계 모든 언어의 글자를 하나의 코드 체계로 만드는 글로벌 표준인 유니코드가 등장한다. 그런데 코드의 개수는 65,536개뿐이었다.
초기 유니코드에는 현대 한글 11,172자 중 2,350자만 배당되어 있었다. 유니코드 2.0 제정을 위해 열린 1995년 스위스 제네바 회의 등에서 한국 대표단은 현대 한글(완성자) 전체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11,172개의 코드를 연번으로 넣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코드를 재배치해 빈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이미 개발한 폰트와 소프트웨어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또한 전체 코드의 약 17%를 한글에 할당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로 비치기도 했다. 특히 수만 자의 한자를 담느라 가뜩이나 코드가 부족했던 중국과 일본이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다. 당시 한글과컴퓨터 강태진 이사는 자사 이찬진 사장을 설득해, 10만 달러(약 1억 수 천만 원)를 내고 유니코드 협회(Unicode Consortium)의 정회원으로 가입하여 표결권을 얻는다. 이윽고 1995년 유니코드 기술 위원회(UTC) 표결에서 9표 중 찬성 5표 반대 4표로, 1표 차로 아슬아슬하게 통과된다. 한글과컴퓨터의 한 표가 없었다면 찬반 4:4 동수로 부결되는 상황이었다. 이후 유니코드 협회는 ‘앞으로 한 번 부여된 코드는 재배치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그렇게 얻게 된 것이 Hangul Syllables(U+AC00–U+D7A3) 블록으로 아래 표 빨간색 영역의 상당수에 해당한다. 이후 유니코드는 이 이야기는 2015년 국립한글박물관의 기획 전시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도 다뤘다.
디지털 시대가 한글을 즐기는 법
그래서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걸까? 디자인의 관점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한글 글꼴을 적은 비용으로 좋은 것을 빠르게 많이 만드는 길이 열린 일이다. 읽기 좋은 글꼴을 제대로 만들려면 초성에 들어가는 ㄱ만 수백 개를 그려야 한다. ‘그구군국글귤’에 들어가는 ㄱ을 보면 높이가 모두 다르다. ‘느누눈눅늘뉼’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며, 중성 ㅡ의 높이가 갈수록 올라가는 패턴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ㄱ은 ‘기가개게겐겔’, ‘괴과괘궤궨궬’처럼 관련 원칙을 따라 수백 개의 모양으로 변형한다. ㄱ처럼 ㄴ, ㄷ, ㄹ, ㅁ 등 초성 19개가 변형한다. 중성 21개, 종성 27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글자가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ㄱ의 윤곽이나 비례를 고치면 파도치듯 글꼴 전체의 모양과 관계가 출렁이고, 디자이너의 몸과 마음도 출렁인다. 완성자 11,172개를 모두 만들려면 11,172개의 코드뿐 아니라, 변형 글자를 관리하기 위한 내부 코드 체계도 필요하다. 상당히 복잡한 작업이며, 이 체계를 표준화하지 않으면 서로의 기술과 지혜를 나눌 길이 막혀 협업과 공진화에 걸림돌이 된다. 디자인 효율을 높이는 자동화 스크립트나 플러그인을 배포하려 해도 코드 통일이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성형 한글의 유니코드 영역의 확보는 매우 중요했다. 지금도 한글 글꼴을 만들고, 이를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나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데 큰 덕을 보고 있다. 이것이 유사 이래 가장 풍성한 한글 글꼴을 향유하는 21세기를 맞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풍성함의 대표 사례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전용 글꼴을 만드는 문화를 들 수 있다. 또한 모바일 글꼴 시장도 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이렇게 범국민적으로 글꼴을 즐기는 분위기는 매우 드물다. 글꼴뿐 아니라 말과 글의 전환도 즐긴다. 어린왕자를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한 『애린왕자』(도서출판 이팝)를 보면 한글이 얼마나 정확하게 말의 정서를 글로 담아내는지 알 수 있다. “니 장미를 그마이 소중하게 만든 기는 니가 니 장미한테 들인 시간 때문아이가”. 이어서 전라도 버전 『에린왕자』, 제주도 버전 『두린왕자』, 강원도 버전 『언나 왕자』도 나왔다. 사람들은 시골 잡종을 시고르자브종으로 써서 고급스러워 보이고픈 욕망의 애잔함을 전하기도 하고, 뜛, 뷁, 뙇처럼 어떻게든 읽어낼 수 있을 법한 묘한 소리를 글로 지어내며 놀기도 한다. 10여 년 전부터는 한글을 회전·뒤집기·한자 대체 등의 규칙을 적용하여 표기하는 놀이도 생겼다. 대표적으로 멍멍이→댕댕이, 명작→띵작이 있고 최근에는 가수 金長훈(김장훈)을 숲튽훈으로 쓰는 밈이 돌며 아예 ‘숩튼훈’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우리가 말과 글과 글꼴을 즐기게 된 배경에는 11,172자를 모두 표기할 수 있도록 코드 체계를 만든 분들의 공도 있다. 세종이 만들고 국민이 가꿔 온 한글을 쓰며, 당연하지 않았지만 당연해진 것을 찾아 고마움을 표하는 것. 그것이 한글날의 마음씨 아닐까.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