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3년 12월,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하늘은 어두웠지만 길거리에서 나오는 다양한 빛들이 나를 반겨주며 환영했던 것만 기억난다. 1994년 1월부터 10월까지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을 다녔는데, 처음에 낯설고도 이해되지 않던 말들이 점점 정리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술술 귀에 들어왔다. 동사·명사·형용사·문법을 배우고, 수업을 같이 들었던 사할린 동포, 재미교포, 재일교포 등 다른 동기들과도 친해지며 차츰 한국어로 말하는 용기가 생겼다. 한국사 역시 저절로 피부 속으로 스며들면서, 그렇게 가장 행복한 일 년을 보냈다. 그해 10월,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가 대학에 진학하여 한국학, 한국어를 계속 공부하려고 했지만,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 한국어 전공이 없어서 동양학과 일어, 그리고 복수전공으로 영문학을 공부했다.
2000년 여름, 학부 졸업한 이후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의 남은 과정을 마치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 가서 로스 킹(Ross King) 교수의 지도 아래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로스 킹 교수가 1999년도에 설립해 운영 중인 미국 미네소타주 콩코르디아 언어마을의 한국어 몰입 교육 프로그램 ‘숲속의 호수’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숲속의 호수는 해외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 기반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곳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어 몰입형 언어 마을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온 7세부터 18세까지의 학생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오직 한국어로만 소통하고 한국 문화를 배운다.
숲속의 호수에서 일하며 학습자가 아닌 선생님의 시선으로 한국어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어의 매력과 그에 대한 내 애정을 다시 한번 깊이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도에는 아직 한류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직전이다 보니, 숲속의 호수에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어린이의 약 90%가 입양아였다. 그들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입양 역사와 한국계 입양아들이 지닌 복잡한 정체성에 대해서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 ‘숲속의 호수’ 한국어 마을 (사진 제공: Dafna Zur)
2014년 스탠퍼드 대학교 문학 교수로 자리를 잡은 지 2년 뒤, 로스 킹 교수가 숲속의 호수 촌장을 그만두며 나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당시에는 이미 한류 열풍이 본격화하면서 방탄소년단과 케이(K)-드라마 등 다양한 케이(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온라인 언어 교육 환경도 좋아지면서 한국어를 미리 독학하는 학생들이 해마다 늘어갔다. 이 시기 다른 언어의 학습자가 줄어든 반면,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습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가장 인기 있는 언어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숲속의 호수에도 미국 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어린 학습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촌장으로 자리를 잡은 지 13년이 지난 지금, 한국어 교육의 전개와 발전, 그리고 미래를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어 교육은 이미 오랜 길을 걸어왔다. 숲속의 호수를 기준으로 보면 1999년에는 한국인이 아니거나 집안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은 학습자의 비율이 1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26년 오늘날에는 그 비율이 약 70%로 늘어났고, 7세~18세 미국 어린 학습자들이 한국어의 매력에 빠져 숲속의 호수 한국어 마을에 참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부모 중 한 명만 한국인인 어린이들의 비율이 옛날보다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이민 역사가 100년을 넘어서면서 2세, 3세대가 성장했고, 이들이 다양한 배경의 가정을 이루며 자녀를 낳으면서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도 많아졌다.
숲속의 호수를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는 여름에 집중적으로 시행하는 몰입형 교육 방식 때문도 있지만, 한국어를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언어로 바라보고 외국어 학습을 통해 세계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교육적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숲속의 호수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습자들이 함께한다. 이곳에는 ‘한국 사람이 왜 한국어를 못하느냐?’, ‘우리말은 우리끼리’와 같은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환경의 사람들이 한국어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현재를 배우고,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까지 익힌다. 이러한 점에서 이곳은 매력적인 언어 교육의 장이다. 예전에는 한국어 교육 기반이 크게 부족했지만, 설립된 지 30년이 된 숲속의 호수는 독특한 환경과 노하우로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 덕분에 이곳에서 한국어를 배운 학생들은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 놀라울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게 된다.
▲ ‘숲속의 호수’ 한국어 마을 (사진 제공: Dafna Zur)
마지막으로 한글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처럼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청소년의 주류 문화가 된 시기는 없었다. 지금이 한글 교육의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숲속의 호수를 찾아오는 어린이들을 보면 이미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관한 관심이 상당히 높다. 이 어린 학습자들이 한글을 배우고 성장한다면, 훗날 또 다른 이에게 한국과 한글을 알려주고 더 나아가 한국에 와서 살아가며 한국을 빛내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한국을 알고 싶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며, 이들이 한국에 와서 살려면 한글 학습은 필수이고 중요하다. 한국 문화에 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한글 교육으로 이어져 더 많은 세계인이 한국을 찾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