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 8.

전통 음식 문화를 담은 한글 보물창고, 전통 음식 조리서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이사장

‘‘300년 전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맛보던 요리는 어떤 맛일까?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본다면 어떨까?’ 이러한 물음에 3대째 대를 이어 충실한 요리 연구를 진행해오는 단체가 있다. 바로 고조리서를 해석하여 그 속에 담긴 음식법을 발굴해 재현하고 한식의 나아갈 길을 찾는 궁중음식연구원이다. 많은 고조리서가 한글로 쓰였기에 이들에게 있어서 한글 연구는 음식 연구만큼이나 중요하다. 전통 음식 속에 담긴 한글의 의미를 찾고자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이사장을 만나보았다.

Q. 한복려 이사장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안녕하세요, 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독자 여러분. 저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한복려입니다. 지난 1971년 세워진 궁중음식연구원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평생 한국의 음식 문화를 연구하고 계승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현재 3대까지 이어진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계보는 과거 고종 황제 때 덕수궁 주방나인으로 입궁해 순종 때까지 궁중요리를 만들었던 제1대 기능보유자 한희순 상궁의 유지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2대 기능 보유자는 저의 친어머니이신 황혜성 선생님이셨으며, 방대한 궁중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정리하는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저는 지난 1970년대부터 궁중음식에 대해 전수받아, 2006년 이후 궁중음식연구원을 이끌며 연구교육, 출판, 자문, 컨설팅 등 다양한 루트로 궁중음식과 전통 문화를 알리고 있어요.

Q. 왕의 요리인 궁중요리가 지녔던 가치는 무엇일까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과거 조선 시대의 왕은 모든 백성의 모범이 돼야 했어요. 왕이 의례를 지켜나가야지만 이를 지켜보는 백성들이 잘 따른다는 개념이 존재했던 거죠. 따라서 매일 먹는 음식이라도, 조선 팔도에서 올라온 음식 하나하나를 맛볼 때마다 왕은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처럼 아래로는 백성이 왕의 모습을 따랐다면, 왕은 진상되는 음식을 살펴보며 백성과 소통했어요. 가령, 전복이 상차림에 나온다면 어느 지역에서 잡은 것인지, 그 지역의 전복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는 것이죠. 매일 나오던 식재료가 안 나온다면 해당 지역의 궁핍함과 흉작 여부까지 짐작할 수 있으므로 궁중요리는 백성과 소통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됐습니다.

<옛 책으로 본 조선의 맛과 멋>에서 강연하는 한복려 이사장 ▲ <옛 책으로 본 조선의 맛과 멋>에서 강연하는 한복려 이사장

<옛 책으로 본 조선의 맛과 멋>에서 궁중요리를 직접 조리하는 모습 ▲ <옛 책으로 본 조선의 맛과 멋>에서 궁중요리를 직접 조리하는 모습

Q. 한식 요리마다 이름이 정해진 데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대부분의 요리 이름은 공식에 알맞게 정해집니다. 바로 정보를 전달하는 공식이지요. 통상적으로 한식의 이름을 정할 때는 찌개, 찜, 조림 등의 요리 방식이 가장 뒤에 붙고 그 앞에 주재료를 표기해줍니다. 가령 김치를 넣고 끓여낸 찌개는 ‘김치찌개’ 라 부르는 방식이지요. 또, 특징적인 중요 재료가 있을 경우 첨가해 붙이기도 합니다. 돼지고기를 많이 넣은 김치찌개를 ‘돼지고기 김치찌개’ 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이와는 다르게 공식 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어원을 가진 요리들도 있습니다. 가령 신선로의 다른 이름인 ‘열구자탕’ 은 ‘입을 즐겁게 하는 탕’ 이라는 독특한 뜻을 갖고 있어요. 고기, 생선, 채소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신선로를 나타내는 특징적인 이름입니다.

한 가지 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하는 누구나 불러봤을 노래 구절에 등장하는 빈대떡의 어원도 재미있어요. 흥얼흥얼 입에 감기는 옛 노래 ‘빈대떡 신사’ 에 등장하는 빈대떡은 전통 요리 ‘빙자병’ 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최초의 한글 음식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선조들이 빙자병, 혹은 빈자병이라 불렸던 녹두지짐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적혀있고요. 빙자병은 과거 녹두반죽을 지져낸 떡과 유사한 음식이었어요. 찐 밤을 속으로 채운 뒤 반죽을 덮어 만드는 전병과 유사한 형태였죠. 하지만 400년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납작하고 볼품없으며 가난하다는 의미를 가진 ‘빈대’ 로 음이 변화했어요. 주 소비층도 서민층으로 변화했죠. 이름이 바뀌면서 잔치음식이 서민음식으로 바뀐 것이에요.

Q. 그 옛날 조리서를 만들었던 것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전통 요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요리를 직접 복원해보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때문에 과거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음식방문》과 《규합총서》, 이외 유사한 한글 조리책들 모두 커다란 가치를 지닙니다. 더불어 당시 계층별 생활상과 수준을 알 수 있는 사료로 활용할 수도 있지요.

‘~방문’ 이라 이름 지어진 조리서들이 조선시대 이후 대거 등장했는데, 이는 양반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됐고 음식이 문화로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궁에서만 조리해 먹던 다양한 음식법들이 양반들에게 퍼져나갔고, 유명한 양반가에서는 자신들만의 음식법을 만들어 남기고자 노력했던 것이지요. 반대로 다른 양반가에서 만든 음식법도 배우고 싶어 했고요. 이렇듯 음식 문화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전문 필사가에게 부탁해 책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Q. 조리서를 만들 때 왜 한문이 아닌 한글을 사용해 조리서를 만들었을까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지금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조선 시대만 해도 집안의 음식 조리는 모두 주부의 몫이었습니다. 가사 노동에서 이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죠. 따라서 조리서는 자연스레 당시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던 한글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요리 방면의 한글 기록 문화는 궁중에까지 영향을 끼쳐, 국가 행사에도 한글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궁중의 음식에 관한 내용을 적어놓은 《음식발기(飮食─記, 1868)》를 살펴보면 임금이 병을 앓다 낫게 돼 의원들에게 음식을 내렸다든지, 신하들을 초대해 어떤 음식을 먹었다든지 하는 내용이 건건이 한글로 표기돼 있어요. 이러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손쉽게 우리 음식의 역사를 알게 되고 당대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죠. 또, 이것을 그냥 보는 차원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요리를 재현하고 연구해서 현대의 요리와 융합해볼 수도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로 할 수 없겠지요.

더불어, 고조리서가 한글로 쓰인 것은 축복과도 같은 일입니다. 한문은 표의문자이기에 뜻이 다양하고 해석이 갈려 한글에 비해 오역의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마련이니까요. 한글의 편리함이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에요.

대부분 순 한글로 만들어진 고조리서 ▲ 대부분 순 한글로 만들어진 고조리서

한식 속에 담긴 한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한복려 이사장 ▲ 한식 속에 담긴 한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한복려 이사장

Q. 옛한글을 번역해 과거의 요리를 복원하는 일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고조리서를 해석할 때는 음식연구가와 한글학자간의 긴밀한 협업이 요구됩니다. 각자 전문분야가 다르다 보니 한글학자는 요리를 잘 모르고, 저희는 옛한글을 잘 모른다는 점에서 오역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최근에 발표되는 논문에서도 요리의 이름을 잘못 해석해 과일 요리를 닭 요리로 만드는 사례가 있을 정도이기에 항상 주의해야만 하는 부분이지요.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전통 음식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교수 혹은 한글학자와의 협업을 통해 고조리서 번역에 오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시 주의를 기울입니다. 특히, 《음식디미방》의 경우 1970년대 초 황혜성 선생님이 번역 작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연구가 진행돼 왔습니다. 올 초에 한글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음식문화에 대해 해설한 <옛 책으로 본 조선의 맛과 멋> 강연회도 이런 오랜 연구가 바탕에 깔려 있기에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Q. 마지막으로 전통 요리와 한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한복려 한복려 이사장 최근 몇 년 새 요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한 대중적 관심이 요리에 몰리게 됐습니다. 우리 생활과 더없이 밀접한 요리와 음식 문화가 조명 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그저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한 ‘먹방’ 은 음식 문화를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입에 우겨넣고 어떻게든 맛있다는 의미를 색다르게 표현하는 것으로는 요리에 담긴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전통은 변화하는 것이고 옛것과 새로운 것이 섞여 또 다른 한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음식 문화의 발전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는 감상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5천 년 역사의 긴 과정에서 뿌리내린 한식을 배우고, 우리 시대의 요리를 기록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음식방문》, 《규합총서》 등의 고조리서가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가 옛 요리들을 알아낼 방법이 없듯이, 지금의 요리 문화를 기록해야만 후세에 올바로 전해질 테니까요.

한복려

한복려 (사)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이자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인 한복려는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1970년대부터 어머니에게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받았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2006년 부산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 등 중요 국가 행사 때마다 만찬 메뉴 자문 역할을 담당했으며, 2004년에는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궁중 음식 자문 및 고증과 재연을 담당했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궁중음식 연구와 전수 교육은 물론 다양한 저술과 자문 등의 활동을 통해 궁중음식을 비롯한 한국의 전통 음식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