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 8.

석인 정태진 기념관과 헤이리 마을 책과 함께하는 도심 속 기념관

우리에겐 통일전망대 혹은 헤이리 예술마을로 익숙한 파주는 일제에 굴하지 않고 한글을 사랑하는 뜻을 펼친 국어학자 정태진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1942년 9월 5일, 사전 편찬 작업에 열중하던 그는 증인 소환장을 받고 함경남도 홍원경찰서로 출두한 뒤로 모진 고문과 옥살이에 시달리게 된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민족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견뎌낸 한글학자를 만나볼 수 있는 곳, 파주의 석인 정태진 기념관을 소개한다.

《조선어큰사전》 편찬과 우리말글에 바친 삶, 석인 정태진

파주시 쇠재로에 위치한 정태진 기념관은 지난 2004년 완공된 이래로 파주의 문화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기념관은 ‘ㄱ자’ 형태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이며 마당에는 꽃과 풀이 만개해 있고 건물 뒤편의 언덕으로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파주 시민들에게 정태진 기념관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도심 속 휴식 공간에 가깝다.

석인 정태진 선생은 1903년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개화에 눈을 떴던 선생은 192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 수학했다. 이 시기 한글학자 정인승을 만나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애정을 공감대로 연을 맺게 되는데, 이후 조선어학회는 물론 옥중에서까지 고통을 나누며 동고동락하게 된다. 졸업 후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자보통학교에 영어와 조선어 담당 교사로 부임했으나, 1930년대 후반 들어 조선어 교과를 폐지하는 등 일제의 만행이 심해지자 1941년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사업에 전임위원으로 참여한다.

우리말 크나큰 배에 한글의 돛을 달고  먼 바다 밖에 두루두루 다니고자 고려의 귀한 보배를 온 누리에 전하리 - 석인 정태진 선생 문학비 중 -

조선어학회 수모 사건에서 주모자로 지목돼 홍원경찰서에서 1년여간 갖은 고문과 악형을 당했고 1945년 해방이 찾아오자 동지들과 더불어 조선어학회를 재건하는 데 열을 올렸다. 특히, 미국 유학의 경험 덕에 미군정의 여러 고위 직책을 제안 받았음에도 이를 모두 거절한 채 사전 편찬에 열을 올려 마침내 1947년 한글날에 《조선어큰사전》 제1권을 편찬하게 된다. 기념관에는 이런 정태진 선생의 노력을 알아볼 수 있도록 그의 연구노트들과 친필 편지, 큰사전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석인 정태진 선생 기념관 전경 ▲ 석인 정태진 선생 기념관 전경

정태진 선생이 작성한 연구노트와 관련 서적들 ▲ 정태진 선생이 작성한 연구노트와 관련 서적들

기념관 옆 도서관에서 만나는 출판도시의 책 향기

파주시는 교보문고, 창비, 민음사 등 국내 주요 출판사들이 모인 출판단지로 유명한 탓인지 유독 도서관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기념관 좌측에는 약 24만 권의 도서를 보유한 파주중앙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도서관은 디지털 자료실, 어린이 책나라, 공부방 등 다양한 독서 편의 시설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고, 독서교실, 독서회 등 여러 문화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경기도민이면 누구나 회원 가입 후 도서를 대출받을 수 있지만, 경기도민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방문해 책을 보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과 기념관 뒤편의 언덕에는 숲속 도심공원인 후곡공원이 조성돼 있는데 체력단련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등 다양한 문화체육시설도 마련돼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파주중앙도서관 전경 ▲ 파주중앙도서관 전경

파주중앙도서관에서 독서를 즐기는 시민들 ▲ 파주중앙도서관에서 독서를 즐기는 시민들

도서관 뒤편 후곡공원 산책로 ▲ 도서관 뒤편 후곡공원 산책로

헤이리 예술마을에 숨은 옛 추억, 근현대사박물관

기념관에서 차로 20여 분 이동하면 ‘예술가들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불리는 헤이리 예술마을에 당도한다. 많은 예술인들이 참여해 창작, 전시, 공연, 축제 등을 포함한 종합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든 헤이리에는 아기자기한 집과 건물, 카페 등이 많아 서울 근교로 나들이 나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헤이리 마을의 건축물 ▲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헤이리 마을의 건축물

헤이리 예술마을 초입에는 국내 최초의 한국 근현대사박물관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는데, 뻣뻣한 검정 교복에 고무신, 오래된 영화 포스터들, 어린 시절 맛보던 간식거리 등 그 시절의 추억이 보물처럼 잠들어있다. 반세기 전 커다란 붓에 잉크를 묻혀 직접 그렸을 ‘서울 이발관’ 간판, 맞춤법이 바뀌기 전의 ‘어름(지금의 얼음)’ 간판 등도 찾아볼 수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뤄진 박물관 내부에는 7만여 점의 생활 자료가 가득한데, 60년대 이후 서울의 풍경을 통째로 옮겨 온 듯 달동네와 골목길 속 상가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그 시절 삶의 흔적까지 추억하게 만든다.

옛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 옛추억을 떠올리게 해줄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옛날 상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금촌상회 ▲ 옛날 상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금촌상회’

나들이 Tip

약도, 석인 정태진 기념관에서 출발하여 차량으로 20여 분간 이동하면 헤이리 예술마을에 도착합니다.
▶ 석인 정태진 기념관 ▶ 헤이리 예술마을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마을길 헤이리 예술마을
  • 휴무 : 월요일 대부분 휴무
  • 문의 : 031-946-8551
  • 누리집(홈페이지) : https://www.hey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