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2017. 9.

책이 머금은 진한 잉크 향기, 춘천 책과인쇄박물관, 김유정문학촌

컴퓨터의 파일을 열고 ‘인쇄’ 버튼을 누르면 ‘위잉’ 소리와 함께 프린터기 위로 순식간에 글자들이 인쇄돼 나온다. 불과 30여 년 전만해도 충무로의 인쇄소 거리에서 신문, 책자 등의 인쇄에 사용되던 활자는 컴퓨터의 등장 이후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춘천의 책과인쇄박물관에는 아직까지도 진한 잉크 냄새가 배어있는 활자 주조기, 수동 인쇄기 등이 보관된 이색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책과인쇄박물관

춘천시 신동면 금병산 자락에는 몇 해 전만 해도 찾아볼 수 없던 박물관이 생겨났다. 올해로 개관 2주년을 맞은 ‘책과인쇄박물관’이다. 이곳은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살펴보고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1300여 년 전, 신라시대 사경(寫經, 불교의 경문을 베낀 것)으로부터 출발해 긴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책과 인쇄문화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책과 인쇄에 대한 수집품이 3층 규모의 박물관에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어, 아이들에게는 새롭고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고 어른들에게는 옛 추억을 되살려준다.

전시관은 1층 인쇄 전시실, 2층의 고서 전시실, 3층의 근·현대 문학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전시물 하나하나가 흔히 볼 수 없는 자료이기에 각지에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특히 유럽의 세계적인 인쇄 관련 박물관들이 인쇄기의 작동 방식을 모니터 영상으로만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책과인쇄박물관에서는 전시하는 활자주조기, 활판인쇄기 등 대부분의 인쇄기들을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시연해볼 수 있다.

최초의 인쇄소 ‘광인사 인쇄공소’ 그대로 재현해

활자와 인쇄기계들이 들어선 1층 전시관에는 1884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인쇄소인 ‘광인사 인쇄공소’를 재현해 놓았다. 공간 전체가 납을 녹이는 냄새와 잉크 냄새로 가득 차 있는 이곳에 한국 130여 년의 인쇄사를 총망라해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전시품으로 활자를 꼽을 수 있는데, 한글, 한자, 영문으로 그리고 서체별, 크기별로 분류된 활자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활자에 압도될 지경이다. 또 주조기를 비롯해 활판 인쇄기들이 크기 별로 전시돼 있으며, 판을 짤 수 있는 조판대도 당시 그대로 재현돼 있다. 이외에도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타자기를 비롯해 에디슨이 최초로 발명한 등사기와 복사기, 컬러 인쇄용으로 사용된 초창기의 수동 오프셋 인쇄기들도 만나볼 수 있다.

▲ 납활자로 만든 청첩장 조판물

▲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활자 인쇄과정

▲ 벽면을 가득 채운 활자들

▲ 책과인쇄박물관에 전시된 인쇄기

다양한 고서와 근 · 현대 문학작품

2층의 고서 전시관에는 《훈민정음》을 비롯해 조선시대 아이들이 서당에서 배우던 《천자문》, 《명심보감》 등이 전시돼 있다. 또, 선비들이 읽던 《사서삼경》 등의 유교 서적은 물론 충효사상을 강조한 《삼강행실도》와 같은 고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최초의 의학서적인 《동의보감》 25권 전질과 고소설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원본 그대로 전시돼 있다.

▲ 2층에 전시된 《사서삼경》 등의 한글 고문서

▲ 조선 숙종 때 지어진 한글 고소설 《사씨남정기》

3층의 근 · 현대 문학 전시실에는 개화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출판된 다양한 서적들이 관람객들을 추억에 물들게 만든다. 부모 세대들이 어릴 적 부모님 몰래 보던 만화책은 물론 《선데이 서울》 등의 대중잡지도 함께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우고 발행한 1936년 8월 25일 자 <동아일보>, 국립한글박물관에도 다수 전시돼 있는 근대 딱지본 소설, 교과서에서 읽어보던 다양한 문학 작품의 당시 판본 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 박물관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 1946년 출간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초판본

30년대 한국소설의 축복, 김유정문학촌

박물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는 김유정역과 함께 김유정문학촌이 자리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병마와 싸워온 29년의 짧은 세월 동안 <금 따는 콩밭>, <봄봄> 등 30여 편의 단편소설만을 남겼지만, ‘한국소설의 축복’이라 불릴 정도로 농촌의 해학과 감동을 잘 담아낸 소설가 김유정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지난 2002년 친족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복원된 김유정 생가와 함께 김유정 이야기집, 기념전시관, 민속 공예 체험방 등 다양한 문화 체험공간이 조성돼 있다. 이를 통해 김유정이 걸어간 길과 문학세계를 시청각 전시물, 작품과 관련 서적 등으로 알아볼 수 있다. 문학촌에서 5분가량 걸어가면 경춘선 김유정역에 당도한다. 과거 이름은 신남역이었지만, 근처에 김유정 관광지가 들어선 뒤 이름을 바꾸게 됐다. 김유정역은 인물의 이름을 차용한 국내 최초 사례기도 하다.

▲ 김유정역 전경

▲ 김유정 기념관 내 전시된 책자들

▲ 대표작 《봄봄》의 장면을 연출한 동상

▲ 연도별로 정리한 김유정의 삶과 작품활동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말을 더듬어 놀림을 받곤 했지만, 과묵한 문학인으로 성장한 작가 김유정. 한국의 시골 풍경을 담아낸 담백한 작품들은 아직도 그의 고향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가을, 순박한 이야기가 그립다면 춘천을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들이 Tip

약도, 책과인쇄박물관에서 출발하여 도보로 5분 가량 이동하면 김유정 문학촌에 당도합니다.
▶ 책과인쇄박물관
  • 주소: 강원 춘천시 신동면 풍류1길 156
  • 문의: 033-264-9923
  • 이용시간: 09:00 ~ 18:0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 누리집(홈페이지): http://www.mobapkorea.com
▶ 김유정문학촌
  • 주소: 강원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0-14
  • 문의: 033-261-4650
  • 이용시간: 09:00 ~ 18:00
  • 휴무일: 매주 월요일
  • 누리집(홈페이지): http://www.kimyoujeo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