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3호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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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전시공간에 빛나는 훈민정음 아크릴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패널에는 훈민정음의 원본이 적혀있다. 첫 패널 뒤로 여러 개의 패널이 쭉 나열되어 있다. 오른쪽엔 ‘기획기사/ 상설전시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 주목할만한 유물들’이 적혀있다. 어두운 전시공간에 빛나는 훈민정음 아크릴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패널에는 훈민정음의 원본이 적혀있다. 첫 패널 뒤로 여러 개의 패널이 쭉 나열되어 있다.

기획기사 상설전시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
주목할만한 유물들

국립한글박물관의 얼굴과도 같은 상설전시실이 오랜 기간 개편 끝에 새로운 옷을 입었다.
한글의 뿌리인 『훈민정음』의 정보와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한
전시인 만큼 전시의 제목도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으로 명명했다.
총 7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전시실에는 다양한 유물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주목할만한 유물 6점을 소개한다.


한글의 원활한 보급을 위한 ‘금속 활자’

전시실 중 ‘3부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에는 금속으로 만든 활자가 있다. 한글의 보급 과정에서 인쇄술이 지속해서 발달 된 것인데, 전시된 활자는 세조(1417~1468)가 지금의 종로에 원각사(圓覺寺)라는 절을 짓고, 불경 『원각경(圓覺經)』을 간행하는 데 쓰기 위해 만든 활자다. 을유년(1465)에 만든 것이라 해서 한자 활자는 ‘을유자’라고 부르고, 한문에 우리말 설명을 달기 위해 만든 한글 활자는 을유자와 함께 사용한 것이라 해서 ‘을유한글자’, ‘을유자 병용 한글 활자’라고 부른다.

진한 청록빛으로 꾸며진 전시 진열대 안에 수십 개의 금속활자가 놓인 패널들이 전시되어 있다. 금속활자는 패널 위에 나란히 열을 맞춰 놓여있다.

금속활자가 진열된 패널의 확대본. 하얀색 패널 위에 금속활자 약 50여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전시 진열대에 『원각경』이 세워져 있다. 『원각경』은 누렇게 바랐다. 『원각경』 앞에는 금속활자가 나란히 놓인 패널이 놓여있다.

특히 한글 활자에서는 ‘옛한글’과 같이 반치음(ㅿ)이 쓰인 것, ‘옛한글’와 같이 합용병서가 쓰인 것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함께 전시 된 『원각경』에서는 다른 글자들보다 쓰임이 많은 ‘옛한글고’, ‘옛한글야’, ‘옛한글니’ 등은 두 개의 글자를 한 덩어리로 만든 연주활자도 감상할 수 있다. 참고로 이곳에는 지난 2021년 6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출토된 15세기 ‘한글 금속 활자’도 함께 전시되고 있는데 4월 3일 조사기관에 돌아가기 전까지 관람할 수 있다.


백성을 위해 만든 효자·충신·열녀 이야기

『삼강행실도언해』가 전시되어 있다. 『삼강행실도언해』는 오래되어 누렇게 바라있으며, 왼쪽에는 그림이, 오른쪽에는 한자가 적혀있다. 그림과 한자 본문 위에 한글로 해석이 적혀있다. ‘4부 쉽게 익혀’에서는 국가나 기관 차원에서 백성들을 위해 대량으로 생산한 인쇄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중 『삼강행실도언해』(15세기 말 추정)는 세종이 유교의 중요 덕목인 효(孝), 충(忠), 열(㤠)의 모범이 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고 이끌기 위해 간행한 책이다. 처음에는 한문을 읽기 어려운 백성들을 고려해 그림을 삽입한 한문본으로 간행했다.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이에 한글을 만든 후 한문본 삼강행실도 윗부분에 우리말 번역문을 추가해 삼강행실도언해를 다시 간행하기에 이른다. 그렇다 보니 당시 책들과 비교했을 때 모양이 위아래로 길쭉한 모습을 하게 됐다. 책에는 유명한 효자, 충신, 열녀이야기 총 105편이 수록돼 있다.

전자 화면에 ‘그림으로 보는 삼강행실도언해’ 문구와 호랑이, 사람 등 삼강행실도언해에 실린 그림들이 함께 비치고 있다. 『삼강행실도언해』 왼편에는 ‘그림으로 보는 삼강행실도언해’가 있다. 손으로 화면을 누르면 ▲호랑이를 잡은 효자 최루백 ▲목숨을 바친 충신 박제상 ▲절개를 지킨 도미 부인 등의 이야기 속 그림과 우리말 번역문을 함께 읽을 수 있다.

넓은 전시장 공간에 정사각형의 전시 유물 전시대가 나란히 길게 배치되어 있다. 전시대마다 서적 유물들이 하나씩 따로 전시되어 있다. 한 관람객이 지나가며 전시 유물을 관람하고 있다.


왕도 노비도 함께 사용한 한글

전시장 벽면에 빨간 편지지, 오래되어 누렇게 바란 편지지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한글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편지들은 길이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 앞엔 한글로 정갈하게 내용이 적힌 편지 한 장이 놓여있다. 한글은 흔히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사용한 글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5부 사람마다’ 전시 공간을 거닐다 보면 한글은 왕도 노비도 함께 사용했던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정조한글편지첩」(1755~1798)이 바로 증거다. 정조(1752~1800)가 큰 외숙모 여흥 민씨에게 한글로 쓴 편지 14점을 모은 편지첩은 일반 백성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한글을 사용하는 계층이 매우 넓었음을 알려준다. 편지와 더불어 다양한 지위의 사람들이 한글로 적은 편지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전시실 대형 화면을 통해 정조가 적은 편지 14점을 전부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다.

편지첩 바로 뒤편에는 혼례를 위해 준비한 물건들을 쓴 「덕온공주 혼수 물목」(1837)이 있다. 순조(1790~1834)의 왕비 순원왕후(1789~1857)가 막내딸 덕온공주(1822~1844)를 위해 한글로 작성한 물목이다. 덕온공주 혼례 당시 아버지와 형제자매 모두 세상을 떠난 후였기에 순원왕후가 하나 남은 막내딸을 위해 준비한 혼례품 목록이다. 길이 약 5m가 넘는 물목에는 장신구, 문방구, 그릇, 바느질 도구 등 온갖 생활용품들이 두루 갖춰져 있다. 유물을 통해 19세기 생활용품의 옛 한글 표기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진열장 안에 여러 가지 옛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리개, 거울 등이 보인다.

두루마리에 각종 혼례품 이름이 한글로 세로쓰기 되어있다.


한글을 통해 전해 내려온 우리의 문화

『청구영언』(1728)은 개인 문집에 실려 있거나 구전되던 가곡 노랫말 580수를 조선 후기 시조 작가 김천택이 한글로 쓴 책으로, 오늘날 가장 오래된 한글 가곡 노랫말 책인 『해동가요』(1763), 『가곡원류』(1876)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가집으로 일컬어진다. 김천택은 ‘한때 입에서 불리고 자연히 사라져 후세에 연기처럼 없어짐을 면치 못하는(발문)’ 노랫말을 한데 모으고, 구전된 노랫말의 틀린 내용을 바로 잡기도 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 노래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오랜 시간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게 하는 중요한 자료다.

전시 진열장 안에 『청구영언』이 전시되어 있다. 『청구영언』은 낡고 빛바래 있으며, 책 곳곳이 얼룩져 있다. 벽면에는 ‘나 한 칸, 달 한 칸, 바람 한 칸 맡겨 두고 『청구영언』’이 적혀있다. ▲ 『청구영언』(1728)

전시 진열장 안에 『곤전어필』이 전시되어 있다. 『곤전어필』 역시 낡고 누렇게 바래있다. 벽면에는 ‘좋은 일을 널리 알리기 좋아하는 버릇이 있어 붓과 벼루가 고생스럽되 이리 쓰니 『곤전어필』’이 적혀있다. ▲ 『곤전어필』(1794, 보물)

『곤전어필』(1794, 보물)은 정조(1752~1800)의 왕비 효의왕후(1753~1821)가 한문으로 된 ‘만석군전’, ‘곽자의전’의 우리말 번역본을 한글로 쓴 책이다. 왕후가 직접 한글로 소설을 옮겨 쓴 보기 드문 자료일 뿐만 아니라, 18세기의 우리말 특징과 궁중의 한글 서체를 확신할 수 있는 자료다. 발문에는 충성과 겸손의 본보기가 되는 만석꾼 석문, 곽자의의 이야기를 적어 내림으로 가문의 평안과 발전을 바라는 효의왕후의 뜻을 담았다.

『청구영언』과 『곤전어필』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고 싶다면 옆에 있는 화면을 활용해 보자. ‘골라서 읽는 청구영언’은 청구영언에 있는 노랫말 580수를 ‘원문 보기’, ‘주제별 보기’, ‘인물별 보기’ 등으로 즐길 수 있다. 더불어 ‘쉽게 읽는 곤전어필’은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의 원문, 현대어역, 주석 등으로 만끽할 수 있다.

천년의 문자 계획이 담긴 훈민정음. 상설전시실에서는 백성들을 생각한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며 한글의 매력과 우수성을 새롭게 깨달을 수 있다. 소중한 한글 유물들이 들려주는 저마다의 이야기에 살짝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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