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한박웃음

108호 20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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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이 잔뜩 켜지고 한글 자음이 적혀있는 모니터 앞에 남녀가 앉아있다. 둘 다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다.

매체 속 한글 쏙쏙 한글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고?
우리가 몰랐던 한글의 색다른 모습들

일반적으로 ‘한글’ 하면 기록하는 데 쓰는 문자의 기능이나
디자인이나 캘리그라피 등 예술적 요소에 활용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글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개발되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 국군들의 암호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했다.
이처럼 이번 8월호에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분야에 활용되었던
한글이 지닌 놀라운 가능성의 순간들을 포착해 소개해본다.


한글로 배우는 코딩 교육, 어떤 모습일까

스마트폰 여러 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각자 보라색, 초록색, 분홍색 화면의 애플리케이션이 실행되고 있다. 그중 가운데 핸드폰은 살짝 들려있다. ▲ ‘하랑’ 애플리케이션 (출처: 하랑)

이리저리 하얀 곡선들이 그려져 있는 바닥 위에 로봇 세 대가 놓여있다. 두 대는 다리가 4개 달린 거미처럼 생겼고 한 대는 두 개의 바퀴가 달린 자동차처럼 생겼다. ▲ 한글 블록코딩으로 제작된 로봇 (출처: 인디프로그)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처럼 번진 이후 테크 분야 인재 수요 증가와 함께 ‘조기 코딩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코딩이란 프로그램 언어의 명령문을 써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지만, 코딩을 미리 학습해둘 경우 테크 관련 직무 기술을 터득하기 쉽고, 문제 해결력, 디지털 문해력, 협동 능력, 창의성까지 기를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한글 코딩 교육 프로그램, 장난감 등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그중 ‘하랑’은 2021년 청소년 앱 개발 경진대회에서 모습을 공개한 한글형 프로그래밍 언어 기반의 코딩 교육 애플리케이션이다. ‘하랑’을 개발한 이들은 같은 고등학생 동아리 회원들이다. 코딩에 관심이 있어도 영어를 잘 몰라 어렵게 느끼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 한글로 코드를 짜고, 재미있는 게임 형식으로 코딩을 학습할 수 있는 앱을 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은 ‘하랑’은 현재 정식으로 어린이 코딩 교육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아 활용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인공지능(AI) 기업 ‘인디프로그’가 개발한 블록코딩은 창의적인 코딩이 가능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으며, 간단한 응용프로그램이나 툴로 개발된 로봇을 작동시킬 수 있다. 특히 자율주행을 포함한 모든 AI 기반 교육의 기본을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코딩할 수 있도록 개발된 프로그램이어서 코딩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기본적인 코딩 명령어가 한글로 만들어져 있어 간단한 설명만 들으면 비전공자도 직접 코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언어인 한글을 코딩 및 프로그래밍에 접목한 덕분이다. 그렇다면, 코딩 교육 프로그램 외에 한글로 이루어진 실제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는 없는 것일까.


한글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고?

페이지 상단에 ‘약속 쉬운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가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메뉴 ‘처음으로’, ‘놀이터’, ‘2048’, ‘명세’, ‘개발자’ 등이 적혀있다. 페이지 안에는 ‘약속’에 대한 소개와 쇼케이스 내용 등이 적혀있다. ▲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약속’ 홈페이지 (출처: 약속)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대부분 영어 기반이지만, 1994년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가 등장해 국내 개발자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씨앗’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씨앗’은 국내에서 개발되었으며 한글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즉 키워드가 한글로 구성되었고 문법 구조가 한국어와 비슷해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씨앗’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여전히 프로그래머들은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그중 하나인 ‘약속’은 하재승 넥슨 개발자와 퍼즐릿 정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개발자가 만든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다. 약속은 2015년 만우절에 첫 버전으로 공개되었으며, 일반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함수’에 해당하는 기능을 ‘약속’이라는 명칭으로 대체하고 한글 언어를 개발했다. 하재승 개발자는 “다른 언어와 겹치는 것도 적고, 단어의 뜻이나 발음 등이 좋아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름을 약속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프로그래밍은 영어가 독보적으로 사용되는 분야이므로 한글 프로그래밍은 우리에게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이러한 예시를 통해 한글로도 프로그래밍 언어 제작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중 암호로도 쓰인 한글

한글 자음과 모음, 받침, 숫자, 영문자를 숫자에 대입한 암호표이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자음’, ‘모음’, ‘바침’, ‘수자 믿 구점’, ‘영자’ 칸으로 나뉘어 있다. 상단에는 ‘W-K KOREAN CODE TABLE’, ‘한글 암호표’라고 적혀있다.

▲ 김우전의 ‘W-K’ 한글 암호표 (출처: 동아사이언스)

여러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글은 전쟁 중 암호로도 사용되어 놀라움을 안긴다. 독립운동가 김우전 선생이 제작한 암호 ‘W-K’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광복군이 미군과의 무전통신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암호는 영어, 일본어가 아닌 한글을 활용한 것으로, 한글을 아는 이들만이 풀 수 있던 암호였다. ‘W-K’는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과 웹툰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에 소개된 적이 있다.

김우전 선생이 만든 한글 암호표를 보면 자음은 11~24의 숫자로, 쌍자음은 25~29, 모음은 30~39, 복합모음은 40~49의 숫자로 대체된다. 받침은 0011부터 0034까지의 숫자를 썼다. 숫자와 알파벳도 0051부터 0136까지의 수로 변환된다. 예를 들어 ‘김’은 W-K 한글 암호로 ‘11390015’가 된다. 모든 숫자를 붙여서 쓰기 때문에 긴 편에 속하지만 무조건 네 자리로 끊어 읽으면 되기 때문에 헷갈릴 염려가 없었다고 한다. 작전 준비가 한창이던 때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외쳐 어렵사리 만든 암호는 실전에서 쓰이지 못한 채 비밀에 부쳐져 미국 국가기록원(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전신)에 소장돼 오다 1988년 비밀이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처럼 한글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의 생활을 더욱 이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한국전쟁의 암호로 쓰일 때도, 디지털 속 프로그래밍 언어로 사용될 때도 그랬듯 한글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또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그 가치를 꽃피울지 기대되는 바이다.

*본 기사는 매체 속 한글문화의 흐름을 반영한 기사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