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해피엔딩’, ‘케이팝 데몬 헌터스’
전 세계를 매료시킨 한국 문화 속 한글
‘어쩌면 해피엔딩’, ‘케이팝 데몬 헌터스’
한국 문화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공연계와 영화계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공연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 토니어워즈에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무려 6관왕을 차지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 흥행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어쩌면 해피엔딩’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소개하고,
작품 속에 녹아든 한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쾌거,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상 수상
▲ 제78회 토니상 수상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지난 6월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극본상, 무대 디자인상, 음악상 등 무려 여섯 개 부문을 석권하며 한국 창작 뮤지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토니어워즈는 미국 연극·뮤지컬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그동안 주로 영어권 작품들이 수상해 왔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6관왕을 차지하고, 특히 작품상이나 음악상 같은 주요 부문에서는 비영어권 창작 뮤지컬이 수상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번 ‘어쩌면 해피엔딩’의 수상은 한국 뮤지컬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이토록 브로드웨이를 매료시킨 걸까요?
이 작품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구형 모델이 되어버린 인공지능 ‘헬퍼봇’들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낡은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헬퍼봇 ‘올리버’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이런 올리버에게 또 다른 헬퍼봇 ‘클레어’가 충전기를 빌리러 찾아오고, 둘은 함께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를 찾아 떠납니다.
이들은 로봇이기 때문에 스스로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제임스를 찾아 떠난 여정 속에서 점차 사랑을 느끼고, 이후 이별도 경험하는데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당황하고 서툰 헬퍼봇들을 통해 관객들은 잊고 살던 순수를 다시금 되새깁니다.
무대에 오른 한글, 따뜻한 울림이 되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이 기쁜 이유는 작품성을 인정받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작품들이 즐비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면서도 한국 뮤지컬의 정체성을 지켰다는 점이 수상의 의미를 더욱 값지게 하는데요. 그 정체성은 무대 곳곳에 등장하는 한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올리버가 분리수거를 하는 쓰레기장
▲ 낡은 아파트 속 비상 대피도
먼저, 이 작품은 소품에 들어간 문자를 영어로 바꾸지 않고 한글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올리버가 쓰레기를 정리하러 나가는 분리수거장 수거통에는 ‘Metal’ 대신 ‘금속’이라 적혀 있고, 아파트의 ‘비상 대피도’도 한글로 표기하였습니다. 분리수거장 벽면에 낙서처럼 그려진 그림 속 문구들 역시 한글로 구현돼 배경이 한국임을 드러냅니다.
▲ 영어 제목 옆 한글 제목 병기
▲ 제주도로 떠나는 터미널의 편명 표기
▲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나오는 한글
장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화면 속에서도 한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선 제목이 소개될 때 영어 제목 옆에 한글 제목이 병기되는 장면이 눈에 띕니다.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를 찾아 제주도로 떠나는 터미널에서도 편명 표기가 한글로 나타나고, 올리버와 클레어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도 화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등장합니다.
▲ 한국어 발음을 살려 ‘HwaBoon’으로 표기된 화분
▲ 올리버와 화분(HwaBoon)
이 작품에는 올리버와 클레어, 그리고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와 함께 또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가 나옵니다. 바로 ‘화분’인데요. 화분은 극 중에서 단순한 소품을 넘어서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감정이 서로의 상호작용 속에서 서서히 성장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서로를 돌보지 않으면 시들어버릴 수 있다는 유한함과 소멸 가능성을 나타내며 사랑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화분’은 작품 속에서 영어 단어로 번역되지 않고,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살려 ‘HwaBoon’으로 등장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극 중 올리버는 실제로 “HwaBoon!”이라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브로드웨이까지 공연을 보러 간 한국인 관객들에게는 유독 반가운 대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영화계, 가요계에서 연일 흥행 중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
▲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한국 창작 뮤지컬의 토니상 수상 소식에 이어, 또 다른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서 흥행 중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지난 6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만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인데요. 글로벌 영화 부문 1위는 물론, 영화 속 음악도 해외 주요 음악 차트 순위권에 오르며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4일에는 41개국 1위까지 시청 열기가 치솟았으며, 시간이 조금 지난 7월 2일까지도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재생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 높은 점수와 함께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1위를 기록 중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음악이 담긴 앨범은 미국의 ‘빌보드 200’에서 8위로 데뷔하기도 했는데요. 케이팝 가수들이 주인공이다 보니 영화계에 이어 가요계도 흥행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영화 속 반가운 한국 문화와 한글
▲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은 호랑이와 까치
▲ 한국 전통이 담긴 노리개와 무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악령 사냥꾼이자 케이팝 여성 아이돌인 ‘헌트릭스’가 저승사자 남성 아이돌 ‘사자 보이즈’와 대결하며 악령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려는 내용으로, 만화 제작은 해외 기업 소니 픽처스에서 맡았고, 한국계 캐나다 감독 매기 강과 크리스 애플한스가 공동 연출하는 등 한국계 제작진이 대거 참여한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해외 제작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문화가 잘 담겨 있습니다. 저승사자와 무당, 도깨비 등 한국 무속, 신화를 보여주는가 하면, 저승사자가 데리고 다니는 호랑이와 갓을 쓴 까치는 한국 민화에서 튀어나온 듯합니다. 또한 의상과 무기에서도 한국 전통이 잘 반영되었습니다. 한복을 재해석한 전투복, 전통 문양이 들어간 무대의상, 허리춤에 찬 노리개 등이 이목을 사로잡습니다. 전투 장면에서 이들이 휘두르는 무기인 신검, 사인검, 언월도는 한국 무당이 굿이나 제사에 쓰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국 문화가 잘 반영된 영화 속에서 한글과 한국어 가사들도 나와 반가운데요, 어떤 게 있을까요?
해외 제작사에서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제작한 영화이다 보니, 배경이 한국이지만 대사는 영어로 진행됩니다. 그렇지만 공연장 속 응원 문구, 거리의 간판, 버스정류장, 주차금지 표시 등에서 한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사 속에서도 한국어가 자주 들리는데요. 라면을 먹는 장면에서는 ‘라면’이라고 정확히 발음하기도 하고, 대사 중에 ‘가자, 가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막내’, ‘혼문’, ‘사자’ 등 한국어 단어가 대사에 그대로 사용되고, 발음 또한 정확하게 표현됩니다.
케이팝 가수들이 주인공인 만큼 계속해서 노래가 나오는데요. 노래 속 가사에도 한국어가 등장합니다. 헌트릭스가 부르는 ‘골든’에서는 ‘어두워진 앞길 속에’,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밝게 빛나는 우리’ 등이 나오고, 사자 보이즈가 부르는 ‘소다 팝’에서는 ‘너의 모든 걸 난 원해, 원해, 원해’, ‘너 말곤 모두 뻔해, 뻔해, 뻔해’ 등 다수의 한국어 가사가 그대로 들려옵니다. 이밖에 다른 노래들 속에도 한국어 가사들이 나오는가 하면, 두 그룹이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는 ‘멜로망스’의 노래 ‘사랑인가 봐’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며 익숙함과 반가움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진 출처: 넷플릭스
이렇게 공연, 영화, 음악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이런 작품들을 통해 한국 문화에 더욱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 문화와 한국어에 더욱 관심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 기사는 취재하여 작성한 내용으로, 국립한글박물관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